[곽금주의공감산책] 봄의 두 얼굴

남상훈 2021. 4. 1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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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 햇살에 들뜸도 잠시
중국發 미세먼지에 되레 우울
대기오염, 코로나보다 더 재앙
환경보호 노력 무엇보다 절실

코로나로 인해 계속되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어 또 한 번의 봄이 왔다. 마스크로 인한 답답함도 어느덧 익숙해져 화창한 봄빛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아 두근거리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세먼지로 답답한 하늘과 함께 나른한 봄날이 도리어 우울해지기도 한다. 감정의 기폭이 심해지는 거다.

지구상 대부분의 생물은 24시간 주기에 맞춰 생활할 수 있도록 적응하였고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생물들은 계절 변화에도 적절하게 반응한다. 인간의 경우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칼로리 섭취량 같은 생리적 특징들이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가을, 겨울 즈음에 음식 섭취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인간의 백혈구 및 지방세포와 관련 있는 유전자들의 발현 수준이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또한 계절에 따라 특정 행동들이 나타나는 시기가 정해지기도 한다. 예컨대 수정이나 임신은 겨울과 봄에, 죽음은 겨울에, 자살은 봄과 여름에 제일 많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계절 변화와 기분 변화와는 관련성이 크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는 계절 변화에 따른 생체시계, 세로토닌 수치, 멜라토닌 분비 등이 달라져 나타나는 질환이다. 대부분의 경우 계절성 정서장애는 겨울에 나타난다. 겨울에 나타나는 계절성 정서장애는 부족한 햇빛으로 인해 멜라토닌 분비 정도가 달라지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소수 사람들에게는 봄이나 여름에도 나타난다. 봄이나 여름에 우울해지는 사람들의 특성은 겨울의 싸늘함에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도 생기는데, 봄이나 여름이 되면 도리어 다운되고 우울해지는 데에 있다. 이를 역-계절성 정서장애(reverse 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한다. 전체 계절성 정서장애 건수 중 10분의 1도 안 되게 나타나는 매우 드문 정서장애다. 봄이나 여름의 역-계절성 정서장애의 경우는 울증뿐 아니라 도리어 조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즉 비정상적으로 지나치게 기분이 고양된다.

봄은 정서 장애뿐 아니라 자살과도 관련이 있는 계절이다. 28개국의 통계자료를 살펴본 결과 봄에 자살사망 건수가 가장 높다고 보고되었다. 어떤 연구들에서는 성별 차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남성의 자살사망 건수는 봄에 가장 높고 여성의 자살사망 건수는 봄과 가을에 가장 높다고 한다. 자살사망뿐만 아니라 자살시도 또한 계절에 따라 그 빈도가 달라진다. 자살시도도 봄에 제일 많이 일어난다. 그중에서 여성 자살시도가 계절의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한다. 봄이 막 시작할 때가 아니라 봄 중후반쯤에 자살시도 빈도가 가장 높고 자살로 인한 사망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 많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더 좋은 날씨가 겨울의 침체와 우울을 극복해주고 자신의 기분을 더 좋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날씨와 관련된 요인 중 어느 것도 긍정적인 정서를 예측해주지 못한다는 연구도 있다. 오히려 좋은 날씨에 신체활동을 늘리는 것이 좋은 기분과 분명한 상관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원에서 90분 동안 산책하는 것은 반추하고 되뇌는 사고 과정을 줄여주고 더 건강한 뇌 활동을 보인다고 한다. 비슷하게도, 또 다른 연구는 며칠 동안 모든 것들을 차단시키고 하이킹을 시킨 결과 창의성 부분이 50% 증가한다는 결과도 있다. 한편 햇빛은 인지능력과도 관련이 있다. 주의집중력 유지 검사나 상위 인지능력의 조절력을 측정하는 실행기능 검사에서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계절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6월 중순에 가장 반응이 높게 나타났고, 12월 중순에 가장 반응이 낮았다. 매일매일 일조시간이 길어지는 동안(동지에서 하지 사이)에는 이 부위의 뇌활동이 점점 더 활발해지다가 매일매일 일조시간이 짧아지는 동안에는(하지에서 동지 사이)에는 뇌활동이 점차 감소한다는 것이다.

햇빛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공기의 질이다. 미세먼지 등으로 공기가 나빠질 경우 인간 심리가 받는 영향은 크다. 쥐를 데리고 한 실험에서 미로찾기와 같은 학습과 기억 테스트 결과 공기 오염에 노출된 쥐들이 과제의 수행정도가 더 낮았다. 또한 깨끗한 공기에 노출된 쥐들보다 우울과 불안 수준이 높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아동의 지능은 공기 질과 관련성이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뉴욕시 근처 아동 6만4000명의 지능을 분석하였다. 공기가 좋은 환경에 있는 경우 아동들의 IQ가 높아지고 이후 학업 성취도 높아졌으며, 이는 추후의 잠재적 수입도 높일 수 있다고 예측되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중국 학생 2만명의 수학과 언어 능력을 4년 동안 조사하였다. 그 결과 학생들의 인지적 능력에 공기오염이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공기오염은 보이지 않은 살인자라는 세계보건기구(WHO) 경고와 같이 화창한 봄날이 가져오는 미세먼지, 황사의 공기오염이 걱정스럽다. 그 언젠가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될 수 있는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경각심은 요즈음 무뎌진 것 같다.

2021년의 봄도 여느 때와 같이 햇살은 화창하다. 그러나 이처럼 화창한 햇빛을 마음껏 누리기에 봄이라는 계절은 너무나 상반된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코로나19보다도 어쩌면 더 오래 지속될지도 모르는 환경 악화를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지는 봄날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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