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그래서 늦는 것들

남상훈 2021. 4. 1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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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야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혹은 한자리에서 잊히기나 하는지요
날리는 저 꽃잎들 다 겨울의 유서인데요
 
그런 어떤 소멸만이 꽃을 피우나 봐요
사랑을 완성하는 것 물그림자에 비친
언제나 한발 늦고 마는
깨진 마음이듯이
 
철들고 물드는 건 아파 아름다워요
울음에서 울음으로
서로 젖는 매미들
제 몸을 벗은 날개로 영원 속으로 날아가요
 
폐허가 축조하는 눈부신 빛의 궁전
눈물에서 열매로
그늘에서 무늬로
계절이 깊어갈수록 훨훨
가벼워지네요
찬란한 꽃잎들이 분분하게 떨어집니다.

민들레 꽃씨들도 허공으로 흩어지는 순간을 보면 왜 그리 슬픔이 앞서는지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소멸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7년 만에 세상 밖으로 쏟아지듯 나온 매미가

한여름 내내 울어대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매미들은 긴긴 시간 기다렸다가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것도 잠시,

곧 생을 마감하고 영원 속으로 날아갑니다.

계절이 깊어갈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철들고 물드는 걸 바라보는 건 아픈 일입니다.

아마도 아파서, 슬퍼서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소멸 직전 눈물을 열매로, 그늘을 무늬로 낳으면서 사랑은 완성되는 것,

이런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요?

박미산 시인, 그림=림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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