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탈출은 '낭만이 아닌 현실'..오래 준비하고, 미리 경험해보자

이호준 기자 2021. 4. 19. 22: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귀농·귀촌 결심 전 알아야 할 것

[경향신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기가 다가오고,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운 삶을 계획하는 이들이 늘면서 귀농·귀촌에 대한 정책 지원도 확대되고 있다. 충남 논산에 정착해 꽃비원을 운영하며 농사와 카페운영 등을 병행하고 있는 정광하씨가 2018년 직접 농사지은 배를 둘러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베이비붐 세대 은퇴 시기 맞물려
도시민 41% “귀농·귀촌 의향”
‘자연 속 건강한 생활 위해’ 첫손
최장 6개월 농촌서 살아보기 등
정부·지자체의 지원 정책 다양
장단점 따진 뒤 실행해야 ‘성공’

서울에 사는 김희원씨(51)는 요즘 틈날 때마다 KTX를 타고 고향인 경주를 방문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한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지만 은퇴 후 귀촌할 지역을 물색하다 그래도 잘 아는 경주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으면서다. 김씨는 “아내도 생각이 같아서 나중에 아이들은 독립시키고 부부끼리 내려가서 지낼 계획”이라면서 “집 지을 땅을 찾고 있는데 은퇴자 수요가 몰려서 괜찮은 구옥이나 땅은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고 말했다.

■ 베이비붐 은퇴에 ‘저밀도사회’ 관심

급등한 집값에 도심 코로나19 방역 피로까지 겹치면서 도시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김씨처럼 은퇴 후 귀촌해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은 물론 아예 귀농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이들도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가 맞물리면서 귀농·귀촌에 대한 정책 지원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귀농·귀촌을 결정하기 전 심사숙고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낮은 주거비와 여유로운 자연환경에서 오는 만족도가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직장과 교육, 편의시설 등 여전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 더 많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농촌경제연구원의 ‘2020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귀농·귀촌 의향을 묻는 설문에 도시민 응답자 41.4%가 ‘향후 귀농·귀촌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1년 전에 비해 6.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귀농·귀촌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나이가 많을수록,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농촌 거주 경험이 있거나 가족 중에 농업인이 있는 경우, 자영업 종사자일 경우 상대적으로 높았다.

귀농·귀촌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43.2%)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20.5%)가 2위에 올랐다. ‘땅값이 도시보다 싸므로 넓은 주택을 가질 수 있어서’나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을 피해 저밀도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라는 응답도 새로 등장했다.

■‘일단 반년만 살아보세요’

정부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귀농·귀촌 잠재수요층이 확대되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저밀도사회에 대한 도시민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지원 정책을 마련 중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귀농·귀촌 정책은 농촌 지역으로 전입해 농사를 전업으로 정착하는 귀농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연금이나 금융소득 등 별도의 주수입원이 있어 영농을 전업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은퇴자 등의 귀촌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이에 맞는 다양한 지원 방안을 개발 중이다. 과거 영농기술 중심의 정보 대신 지역 일자리나 교육, 생활정보 등으로 정보의 방향이 전환되고, 정보 제공방식도 교육이나 박람회가 아닌 직접 체험형으로 변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경우 귀농·귀촌 실행 전 농촌에 장기간 거주하며 일자리, 생활을 체험하고 지역 주민과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체 89개 시·군에서 약 500가구를 지원할 계획으로, 참가자에게는 최장 6개월간 관심지역에서 살아볼 수 있도록 주거를 제공한다. 지역특화 사업에 대한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고, 연수비로 월 3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일례로 귀촌형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나주 명하쪽빛마을은 마을 특색을 살린 쪽 염색, 쪽 베기·치유(족욕) 체험을 지원하고, 귀농형인 김제시 수류산골마을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농지 거래 기초 법률지식과 농가주택 신축 방법, 소득작물 선정 방법, 용접교육 등 실제 귀농 과정에서 필요한 노하우를 교육한다.

■ 오래 준비해야 실패율 낮다

정부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귀농·귀촌에 대한 도시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편으로는 실제 농촌에서 살아보면서 실제 귀농·귀촌이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해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정착 실패율을 낮추고자 하는 취지도 작용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지난 2월 내놓은 ‘2020년 귀농·귀촌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정착에 성공한 귀농자들의 경우 정착지역 탐색과 자금조달, 귀농체험 등 귀농을 준비하는 데만 평균 25.8개월 시간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귀촌의 경우 이보다는 짧지만 역시 17.7개월의 준비 기간이 소요됐다.

터전을 송두리째 바꾸는 만큼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무엇보다 귀농·귀촌의 장단점을 분명하게 인지한 뒤, 준비를 시작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예컨대 생활비의 경우 귀농 전 월평균 269만원(귀농가구 대상)에서 귀농 후 184만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귀촌가구도 260만원에서 205만원으로 20% 넘게 줄어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귀농인 10명 중 7명이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응답할 정도로 자연환경에서 오는 만족감도 크다.

하지만 의료·교육·문화 서비스의 부족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농어촌 40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농어업인 복지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보건의료와 복지 서비스, 기초생활기반 및 경제활동 여건 부문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크게 나타났다”면서 “귀농 계획 시 일자리·주택·자녀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