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 마리스 얀손스, 최고 무기는 솔직함이었다

문학수 선임기자 2021. 4. 1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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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세상 떠난 지휘계의 거장
열정적 음악과 삶 담긴 평전 나와
"출간 동의 얻기까지 5~6년 걸려"

[경향신문]

2019년 타계한 지휘 거장 마리스 얀손스. 그의 삶과 음악을 담은 <마리스 얀손스 평전>이 출간됐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확신이 설 때까지 단원들을 연습시키고 또 연습시켰다. “난 아직도 확신이 안 생겨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공연장 음향 조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투어 중 진행되는 짧은 리허설에서도 “공연장의 특징을 일일이 체크”했다. 피츠버그 심포니의 비올라 주자 폴 실버에 따르면 “(그는)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하려 했기 때문에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여러 곳을 빠르게 수리하려는 기계공처럼” 보였고, 그러다가 음악회가 시작되면 “온전히 음악가”로 되돌아왔다. 이처럼 그는 ‘충분해’라고 확신해야 지휘대에 올랐으며 실제 연주에서는 단원들을 확 풀어줬다.

하지만 완벽주의보다 더 강력한 그의 미덕이 있었다. 폴 실버가 증언하듯이 “그의 미소는 묘했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지휘대에서 오케스트라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면, (단원들은) 곧 그와 함께 멋진 경험을 하게 되리라는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최고의 미덕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미덕은 솔직함이었다. 리허설 도중 원하던 사운드에 마침내 도달했을 때 그는 ‘브라보!’를 외치며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그를 기록한 책이 말하듯 “(그의) 가장 큰 미덕은 기술, 지식, 구조와 음향에 대한 통찰이 아니라 솔직함이었다. 그는 친절하고 경험이 풍부하고 영리하고 고집 센 전술가였지만 절대 교활하지 않았다. 마에스트로의 가면 뒤에 자신을 숨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2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지휘의 거장 마리스 얀손스(1943~2019)의 삶과 음악을 담은 <마리스 얀손스 평전>(풍월당)이 나왔다. 저자 마르쿠스 틸은 <뮌히너 메르쿠어>의 편집인, <오페라 세계>의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해온 비평가다. 그는 얀손스가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뮌헨에 왔던 2003년 처음 만났으며, 이후 오케스트라 투어에 동행하거나 개인적 만남을 수차례 가지면서 이 책을 썼노라고 밝혔다.

책은 모두 33개 장으로 이뤄졌다. 스물여덟 살 지휘자가 베를린 라디오심포니(현재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를 이끌고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리허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71년 9월, 얀손스가 카라얀 콩쿠르에 참가했을 당시 상황이다. 어두운 색깔의 목폴라를 입은 ‘애송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쟁쟁한 단원들’에게 꼬투리를 잡는다. “여기가 가장 중요해요. 이 세 마디가 잘 어우러지면 그다음부턴 다 잘될 겁니다. 절대 빨라져선 안 됩니다.”

33개 챕터는 얀손스가 거쳐간 주요 오케스트라들을 축으로 삼아 전개된다. 그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에서 거장 므라빈스키의 부지휘자(조수)로 일하다가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1979~2000),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1997~2004), 네덜란드의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2004~2015), 독일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2003~2019) 등을 이끌었다. 저자의 평가에 따르자면 “얀손스의 경력은 거의 일직선”이었으며, “다소 뒤떨어지는 오케스트라를 일류로 키워냈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둘씩이나 책임”졌다.

450쪽 넘는 책에 얀손스의 삶과 음악적 가치관, 생전 그와 연주했던 이들의 기억 등이 빼곡하다. 물론 전편을 관통하는 화두는 ‘완벽주의’와 ‘솔직함’이다. 원제인 ‘음악에 바친 열정적인 삶’은 한국어판에서 부제로 사용됐다. 저자는 얀손스가 처음 이 책의 출간을 반대했고, 그를 설득해 동의를 얻는 데 5~6년이나 걸렸다고 밝히고 있다. 이 또한 얀손스의 성품을 짐작하게 한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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