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모병제..여, 맥 못 짚는 '이남자' 구애

김상범 기자 2021. 4. 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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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패배에 설익은 대책..남성 불만 '역차별 정서'로 해석
취업 등 사회적 문제, 젠더 이슈로 치환..20대 여성은 소외

[경향신문]

‘이남자’(20대 남성)의 군복무 문제가 4·7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젊은 남성 정치인들이 군가산점 부활과 모병제 전환 등을 입에 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이남자 표심’을 확인한 여당이 구애 작전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차별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위헌으로 결론난 군가산점을 다시 도입하자는 데서 그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0대 남성들의 불만을 ‘역차별 정서’로만 얄팍하게 해석하는 등 정치권이 20대가 직면한 사회·경제 문제를 젠더 간 ‘혜택’ 여부로 협소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에선 최근 20대 남성을 겨냥한 맞춤형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전용기 의원은 지난 15일 공기업 승진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 나아가 “개헌을 해서라도 군가산점 재도입에 대한 논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남국 의원도 1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 채용 시 군 전문 경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모병제’ 카드도 나왔다. 박용진 의원은 18일 SNS를 통해 모병제 전환과 함께 전 국민이 남녀를 불문하고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남녀평등복무제’를 제안했다.

재·보선 참패 이후 여권에서는 20대 남성들의 역차별 정서에 귀 기울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던 정한도 용인시의원도 “여성 우대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역 문제를 재조명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이런 자세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국민의힘에서는 하태경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 등이 여성 채용할당제 반대와 군가산점 도입 등 20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성향에 기댄 행보를 이어왔다. 군복무 때문에 또래 여성들에 비해 사회 진출이 늦고 취업·승진에서도 불리하다는 피해의식을 자극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젊은 남성들의 불만을 대할 때마다 마치 ‘자동반사’처럼 젠더·군복무 이슈를 꺼내든다고 지적한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과대 대표된 주장들에 치중해 일자리 문제 등 근본적인 난제들을 ‘젠더 문제’로만 치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취업 등 20대의 삶을 어렵게 만든 ‘본질’이 아니라 역차별 의식 등 단편적인 ‘현상’만 보고 설익은 대책들을 나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쪽 성별만 의무를 지도록 한 병역제도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병역자원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모병제 전환과 여성복무제 도입 등은 생산적 논의가 가능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편적인 사회복무제 도입을 고민할 필요는 있지만, (박용진 의원처럼) ‘군사훈련’이 유일한 것처럼 제안한 것은 사려 깊은 방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군복무 이슈를 두고 20대 남녀의 갈등이 오랜 기간 누적된 만큼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내가 다녀왔으니 너도 가라” 식의 소모적인 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에게까지 차별로 작용할 수 있어 1999년 위헌으로 결론난 군가산점 제도를 재도입하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청년 문제의 또 다른 축인 ‘20대 여성’은 정치적인 고려 대상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보선 이후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여성이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닌 ‘기타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이 15.1%에 달했던 만큼 하나의 정치집단으로 블록화된 여성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 ‘다른 정치’에 대한 20대 여성들의 열망이 나타난 것”이라며 “그동안 ‘차선 아니면 차악’ 선택지를 강요해온 거대 양당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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