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빠가 됐다 - 조기현 [이오진의 내 인생의 책 ②]
[경향신문]
나의 할머니는 오래 아팠다. 20년 가까이 침대에 누워 있다 가셨다. 나는 부모님과 간병인인 중국동포 아주머니와 한집에 살았는데, 부모님, 간병인 아주머니, 세 명의 고모가 돌아가며 할머니를 보살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와 자식들이 힘을 합해 할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를 쓰고 데뷔를 하여 작가가 되었다.
할머니는 40대에 중풍을 앓고 여생을 몸이 불편한 채로 사셨다. 그 와중에도 찬물에 청바지를 빨았다고, 엄마는 할머니를 추억하며 여러 번 말했다. 할아버지가 당뇨로 쓰러졌을 때도 할아버지를 간병한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늘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우리 딸”이라고 말해 주셨다. 나는 “난 딸이 아니고 손녀”라고 할머니의 말을 고쳤다. 언어는 부족했지만 할머니가 하는 모든 말은 ‘하늘에서 내려온’ 말들이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와중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뿐인’ 사람들이 되었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청년 조기현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보낸 9년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제 삶을 꾸리는 스무 살 어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자, 누군가에게 계속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삶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롭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기억을 회피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무례하게 침범하는 연민을 탁탁 쳐낸 후 앞으로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글로 써낸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 노인을 부양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시에는 더 이상 마을이 없다. 조기현에게는 아버지를 함께 부양할 가족도, 협조적인 국가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자 작가가 되는 길을 택했다. 나는 그에게 ‘효심’이 아니라 ‘작가의 태도’를 배웠다.
이오진 |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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