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이겨낸 빛 바랜 유산, 근대·초기 산업화시대 증언하다

강구열 2021. 4. 1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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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광화문에서 보다' 전시회
역사박물관·문화재청 공동으로 주최
등록문화재 제도 도입 20년 맞아 기념
50년 넘는 근대·현대 초기 유산 대상
서양의사 수술 집도·올림픽 첫 참가 등
당시 사회상 엿볼 수 있는 사료 가치
서양의학 도입 초기인 1904년 수술 장면을 촬영한 ‘에비슨의 수술장면 유리건판 필름’. 서양인 의사 두 명이 수술을 집도하고 있고, 한국인 간호사와 학생이 보조를 맡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문화재청 공동주최의 전시회 ‘등록문화재, 광화문에서 보다’ 전시품은 관람객의 심미안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을 가진 건 아니다. 길고 긴 세월을 살아낸 문화재 특유의 아우라를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50년이 넘은 근·현대기의 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등록문화재는 그저 오래되어 낡은 물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시회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등록문화재는 한국 근대화 과정의 가장 뚜렷한 흔적이다. 서양문화의 본격적인 수입과 자기화, 기계화와 표준화, 국제사회 진출 등 전통시대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거대한 변화의 산물이다. 등록문화재를 통해 근대화, 산업화 초기 한국의 발전 방향,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 도입 후 20년이 되었음을 기념하는 자리다.

◆의학, 외래문화의 도입과 전통의 쇄신

1904년 촬영된 사진 한 장. 서양인 2명이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두 사람 주변에서 수술을 보조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탕건을 쓰고 수술용 가위를 건네고 있는 학생이 특히 눈길을 끈다. 박서양, 1908년 세브란스의학교를 1회로 졸업한 인물이다. 훗날 만주에서 병원을 개업했고,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는가 하면 독립군들의 치료도 도맡았다.

서양의학의 도입은 근대화로 인한 가장 뚜렷한 변화 중 하나였다.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인 제중원이 1885년 개원했고, 알렌, 에비슨, 분쉬 등 서양인 의사들이 입국해 의학을 가르치며 인력을 양성했다. 알렌이 작성한 진단서, 분쉬의 외과도구,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에서 간호인 양성을 목적으로 간행한 간호교과서 등이 등록문화재에 올라 있다.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한편 전통의학 체계를 쇄신하는 시도도 전개됐다. 외래문화 수입에 따른 거센 변화의 와중에 전통을 계승, 발전하려는 노력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한의사 김영훈이 작성한 처방전, 진료부, 환자 통계표 등이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김영훈의 기록은 “전통의학 및 국민보건의료 실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손병희, 이상재 등 유명 인사들의 진료 기록이 포함되었다는 점” 등으로 가치가 크다.
1882년 간행된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 평안도 사투리와 구어체가 포함되어 있다.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의 합작품으로 평안도 사투리와 구어체까지 동원해 번역한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 영국 문학 작품을 번역해 전통 회화로 그린 삽화를 넣어 출간한 번역문학의 효시 ‘천로역정’ 등은 서양문화의 수입과 전통의 결합을 보여주는 산물이다.

◆신생 대한민국을 국제사회에 알린 올림픽

해방 이후 한국의 당면 과제 중 하나는 국제사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긴 했으나 신생국 대한민국을 각인시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들이 있었다.

이원순의 여행증명서는 1947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정부 수립 이전이라 직접 타이핑을 한 “세계사적으로 희귀한 개인여권”으로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올림픽 참가를 승인받은 것은 거의 유일한 사례이며 신생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증거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4회 런던올림픽 후원권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한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발행된 최초의 복권이다. 1등 상금은 100만원. 당시 쌀 한 가마 값이 83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1948년 14회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선수단이 가져간 깃발이다. 아직 정식 국호가 정해지지 않았던 때라 ‘조선올림픽대표단’이라 쓰여 있다.
런던올림픽은 이렇게 우리나라가 ‘KOREA’란 이름으로 참여한 첫 올림픽이 되었다.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는 당시 한국선수단이 가져간 깃발로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이때는 국호가 정식으로 정해지지 않아 ‘조선올림픽 대표’라는 명칭이 사용됐다.

‘아리랑 드레스’는 처음으로 세계 미인대회(미스 유니버스)에 참가한 오현주(3회 미스코리아 진)가 입었던 옷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가 한복과 서양식 드레스를 절충, 융합해 제작했다. 캘리포니아 롱비치 퍼레이드와 대회장에 입장하며 입었던 이 드레스는 대회에서 의상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됐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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