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박정림·정영채를 위한 변명
바야흐로 주식의 시대다. 국내 주식투자인구가 성인 기준으로 9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할 정도다. 그렇지만 주식 투자는 양날의 검과 같다. 엄청난 수익률로 투자자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주가 폭락기에는 사회적 문제가 된다.
그만큼 주식 직접투자는 투자자의 자기책임 의식을 전제로 한다. 주식투자에 낯선 일반인들은 그래서 투자 전문가에게 운용 책임을 넘긴다.국내 주식시장의 역사를 보더라도 초기에는 직접투자가 많았지만 주가 급등락을 거치면서 간접투자로 넘어왔다. 1953년생인 문재인 대통령조차 나이 예순이 넘어서야 펀드 투자를 처음 접했고, 주식 직접투자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2030세대의 주식투자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투자인구의 다수는 간접투자자다. 그런데 간접투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펀드시장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펀드 시장 참가자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벌어진 라임자산운용이나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 사태는 펀드시장 추락의 극단적인 사례다.
주식투자에 따르는 책임은 오롯이 투자자에게 있다. 이에 비해 펀드투자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입한 'NH-아문디 필승코리아 국내주식형 펀드'를 예로 들어보자. 문 대통령은 펀드 가입자이고, 펀드의 운용을 책임지는 곳이 NH-아문디자산운용이다. 펀드재산을 보관하고 운용행위를 감시하는 곳은 수탁기관(우리은행)이다. 대통령이 펀드 가입을 위해 방문한 농협은행은 펀드 판매사다. 이 외에 펀드의 기준가격을 정하는 일반사무관리회사(신한아이타스)와 펀드평가를 담당하는 평가회사(한국자산평가 등)도 있다.
NH-아문디자산운용 같은 자산운용회사는 투자자가 맡긴 자금을 정해진 규약에 따라 운용해야 한다. 자산운용회사가 투자자와 합의한 방식으로 투자자금을 운용하지 않아서 손실이 발생하면, 그 손해는 자산운용회사가 배상해야 한다. 운용행위에 대한 감시책임은 우리은행 같은 신탁업자에게 있다. 펀드 판매회사는 운용실적과는 무관하고, 투자자금 납입과 환매 같은 부가 업무만을 담당한다.
또 펀드 판매사는 투자자에게 정기적으로 자산운용보고서를 발송하고, 집합투자규약을 보관하고 있다. 투자자에게 수익증권을 판매하는 고객 접점이다 보니, 판매사에는 고객의 위험감수능력과 투자성향을 확인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펀드 투자자에게 판매사의 역할은 커 보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펀드 가입 과정을 봐도 농협은행 직원이 "주식·펀드 경험이 있습니까",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수준이 어느 정도입니까"라고 묻고서 수익증권을 나눠준다.
물론 얼마 전 국회에서는 사모펀드에 한해 판매사에게 자산운용사의 운용행위 감시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이 처리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펀드 판매사 본연의 역할을 운용행위 감시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가전제품 양판점이 제품의 하자를 책임지지 않는 것처럼, 펀드 판매사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와 자산운용회사를 중개하는데 있다.
금융당국은 작년 말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판매사인 KB증권의 박정림 사장에게 중징계를 결정했다. 펀드판매사의 최고경영자(CEO)로서 펀드 판매 과정에서의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물었다. 올해 3월에는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의 정영채 사장에게도 동일한 책임을 물어 '문책경고'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박정림 사장이나 정영채 사장이 펀드 판매과정에서 특정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박정림 사장은 토탈리턴스왑(TRS)을 통한 운용사와의 공모에 대한 후속 CEO로서의 책임만 있을 뿐이다. 정영채 사장의 책임은 운용사 관계자 연락처를 문자로 전한 일종의 주선인 역할 정도로 한정된다. CEO로서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CEO가 금융투자상품 판매 과정을 일일이 살펴볼 수는 없다.
펀드 판매사의 책임은 투자자를 직접 대면하기 때문에 상품에 대한 적확한 설명의무에 있다. 투자대상 자산을 고르고 운용행위를 감시하는 것은 판매사의 역할이 아니다. 하물며 펀드 판매과정에서의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CEO에게 돌리는 것은 펀드판매라는 경영의사결정을 하지 말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또 직원의 모든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CEO에게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봉건 왕조국가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박정림 사장은 국내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여성 전문경영인이다. 보험사 리스크 관리에서 시작해 은행의 자산관리 사업 전반을 두루 섭렵했다. KB금융그룹의 대표적인 차세대 리더 중 한 명이다. 정영채 사장은 국내 투자은행(IB) 1세대로 금융투자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런 전문경영인에게 펀드 판매사 최고경영자로서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억지 책임을 지우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김현동기자 citize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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