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폭파' 꼬리잡힌 러시아 비밀공작, 외교관 추방전 번져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18명 추방
"우크라이나 무기공급 막으려 공작"
당시 불가리아 무기상 이듬해 독살
러, 부인..체코 외교관 20명 맞추방
러 공작원, 영국 독살 용의자와 동일
미 "나발니 사망땐 러 책임 물을 것"
러시아 정보기관의 해외 공작 여부 등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18일 체코 주재 자국 외교관 추방에 대한 보복으로 모스크바 주재 체코 외교관 20명을 추방했다. 러시아는 체코가 도발적인 “반러시아 조처들”을 실행해 워싱턴의 환심을 사려 한다고 비난했다.
체코는 전날 러시아 정보기관 공작원 2명이 2014년 2명의 사망자를 낸 브르베티체 군수품 창고 폭발 사고에 연관됐다며, 그 보복으로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18명을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체코가 발표한 폭발 사고에 연관된 러시아 공작원들이 2018년 자국에서 일어난 솔즈베리 독살 사건을 일으킨 이들과 동일 인물이며, 경찰이 이들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체코와 영국이 지목하는 문제의 인물들은 알렉산드르 페트로프(41)와 루슬란 보시로프(43)다. 두 나라는 “이들의 본명은 알렉산드르 미시킨, 아나톨리 체피가이며,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부 정보총국(GRU) 소속의 공작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본명을 사용해 2018년 영국에 입국해, 영국으로 망명한 정보총국의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을 독살하려다 중태에 빠트린 혐의를 받고 있다.
서방 소식통들은 체코 폭발 사건에 러시아 정보총국의 29155부대가 관여됐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이 부대가 전 유럽에 걸쳐 치명적인 비밀공작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15~20명의 공작원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모스크바 인근 스호드냐에 비밀 본부를 두고, 스위스와 접경한 프랑스 동남지역까지 위장 세포망을 운영한다고 알려졌다.
체코 사건은 애초 우발적인 사고로 평가됐다. 하지만 체코 방첩기관들은 지난해 문제의 미시킨과 체피가가 위조여권을 사용해 폭발 전 체코에 입국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들은 2014년 1월11일 입국해 5일간 체류한 뒤 폭발 당일 출국했다. 그들은 군수품 창고에 이메일을 보내 방문을 예약했고, 근처 호텔도 예약했다. 이들이 창고 방문을 위해 보낸 여권의 사진을 대조한 결과, 미시킨과 체피가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당시 체코 군수품 공장에는 불가리아 무기상인 에밀리안 게브레프에게 전달될 무기들이 선적되고 있었다. 게브레프는 우크라이나군에 무기를 공급하던 무기상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무기가 공급되는 것을 막으려고, 미시킨 등에게 폭파 공작 지령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게브레프도 2015년 5월 소피아에서 저녁을 먹으러 가다가 독살됐다. 불가리아 검찰은 3명의 러시아 정보총국 공작원이 게브레프의 사무실 인근 호텔에서 숙박했다고 주장했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게브레프 독살도 정보총국 29155부대가 관여했다고 추측한다.
체코 폭발과 영국 독살 사건의 용의자들은 18일 러시아 텔레비전에 페트로프와 보시로프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독살이 일어난 솔즈베리에는 명소인 123m 첨탑을 관광하러 갔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탐사저널 웹사이트 <벨링캣>은 용의자인 미시킨의 할머니가 이웃들에게 “손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악수하는 사진을 자랑했다”고 보도했다. <벨링캣>은 체코 폭발 사건으로 받은 훈장이라고 추정했다.
러시아의 또 다른 독극물 공격 희생자인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도 수감 중 건강이 악화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시엔엔>(CNN)에 “만약 나발니가 죽는다면 그에 따른 결과들이 있을 것”이라며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발니는 독일에서 회복한 뒤 러시아로 귀국해 지난 2월 횡령 혐의 등으로 다시 수감됐다. 측근들은 “나발니가 단식투쟁에 따른 건강 악화로 심장마비의 위험이 있으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 15일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혐의 등과 관련해 러시아 외교관 10명 추방 및 러시아 채권 구매 금지, 16개 기관과 16명의 개인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은 3월2일에도 나발니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처를 발표했다.
러시아도 내전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접경 지역에 병력을 늘려, 내전 재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또 17일 우크라이나 외교관 1명을 기밀 입수 혐의로 추방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는 대응 조처를 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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