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팀장] '22년 병상 생활' 부자의 죽음..'재활난민국'의 현실
[KBS 대전]
[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성용희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 들고 나오셨나요?
[기자]
네, 몸이 너무 말라 앙상한 뼈가 다 드러난 채 병실에 누워 있는 한 남성.
22년 넘는 투병생활 끝에 생을 마감하기 약 1년 전의 故 유영호 씨 모습입니다.
오늘은 산업재해로 장기간 여러 병원을 떠돌며 입원치료를 받던 이 40대 아들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두 부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앵커]
22년 넘게, 그것도 여러 병원을 옮겨 다면서 치료를 받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안 가는데요.
[기자]
네, 유영호 씨가 사고를 당한 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7년 11월이었습니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유 씨는 대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추락사고를 당했습니다.
장과 대동맥이 파열돼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사지 마비 장애를 입었습니다.
장기 입원 치료가 불가피했는데요.
유 씨는 포항과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수년씩 치료를 받다가 여동생이 있는 천안으로 와서도 병원 2곳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2019년 7월 결국 유 씨는 자신을 돌봐주던 아버지와 함께 천안의 한 병원 병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앵커]
앞서 부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했는데, 기약 없는 병원 신세를 결국 버티지 못했던 건가요?
[기자]
유족 측의 주장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는 입원 중이던 병원 측의 강제 퇴원 조치였습니다.
수차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유 씨와 함께 22년 넘게 병상 생활을 함께한 유 씨 아버지는 당시 2년가량 입원해 있던 천안의 한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엿새 만에 당시 76살이던 고령의 아버지는 40대 아들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해 숨지게 한 뒤 자신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 씨 아버지가 남긴 유서를 한 번 보시죠.
"병원 직원들에게 협박을 당해 너무 힘들어서 제 아들하고 이렇게 편히 갑니다."
"병원 관계자와 충청남도 직원들을 처벌해 달라."
이렇게 적었습니다.
[앵커]
병원의 강제 퇴원 조치가 유 씨 부자에게는 막다른 길에 내몰린 것처럼 절망적으로 다가왔다는 얘기군요.
[기자]
맞습니다.
유족들은 병원 측이 옮길 병원을 알아볼 시간도 주지 않고 수시로 병실에 찾아와 당장 나가라고 환자와 보호자를 압박했다고 말합니다.
또 병원 측이 퇴원 통보 며칠 뒤 일방적으로 퇴원 절차를 끝냈고, 유 씨와 함께 5인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을 모두 다른 병실로 옮긴 뒤 유 씨 병상 주변에 이렇게 통제선을 설치했다고 호소했습니다.
결국, 이런 압박에 못 이겨 부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일반적으로 병원이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하거나 퇴원을 요구할 수 없잖아요?
병원 측 입장이 궁금한데요.
[기자]
네, 의료법 제15조 1항을 내용을 보시죠.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해당 병원은 유 씨 아버지가 유 씨를 돌보면서 의료진에게 막말과 욕설을 지속해서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의료법 제12조 3항을 보시죠.
"누구든지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의료인 등을 폭행 협박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병원 측은 이 조항을 근거로 유 씨 아버지의 막말과 욕설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고요.
유 씨가 위급한 상태가 아닌, 보존적 치료만 필요한 환자라고 판단해 유 씨 측에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족 측에 퇴원을 독촉했고 병실을 폐쇄했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양측이 맞서고 있는데 현재 이 사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기자]
네,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해 최근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충청남도가 실시한 조사에서 유 씨 아버지가 의료진에게 욕설하고 병원 내에서 소리를 지른 사실이 확인됐다며, 병원의 강제 퇴원 조치를 정당한 진료거부행위로 봤습니다.
그리고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유족 측은 당시에 간호사가 수액을 환자복에 흘리는 등 실수를 반복해 시정을 요구한 적은 있지만, 욕설이나 폭언을 한 적 없다는 입장인데요.
유족이 항소를 제기해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앵커]
최종적인 법원 판결을 기다려봐야겠지만, 벌어진 일들만 보자면 유 씨가 한 곳에서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현실, 이것도 이번 사건의 한 원인이 됐던 것 같아요.
[기자]
네, 맞습니다.
유족들은 22년 넘는 병실 생활 동안 유 씨의 단순 치료보다는 재활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재활치료를 받을 곳이 없어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또 해당 병원에서 강제 퇴원 통보를 받은 뒤 알아본 산재전문병원에서는 입원하려면 한 달가량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른 건데요.
이런 처지에 놓인 환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재활난민국'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유 씨처럼 산재를 겪은 환자들이 전문적인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전문병원은 전국적으로 10곳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또 원활한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간과 인력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재활치료는 수가가 낮다 보니 대학병원조차 지원을 축소하거나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도 문제인데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재활치료 현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해 보입니다.
성용희 기자 (hee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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