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전공 설계로 학생들 위한 '퍼스트 무버' 되겠다"

한겨레 2021. 4. 19. 18: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최초 전면 자유전공제 시행한
덕성여대 김진우 총장 인터뷰
'전면 자유전공제' 도입 1년
교수·재학생·졸업생 참여하는
수평적인 공론장 마련해
입학 뒤 진로 설계 보장하고
제1전공·제2전공으로 학습권 지켜
"덕성의 교육 르네상스 재현할 것"
김진우 덕성여대 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퍼스트 무버’라는 말이 있다. 앞에서 이끄는 사람을 이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팔로어’는 많아도 ‘무버’는 잘 없다. 모두에게 익숙한 물결의 방향을 바꾸고 새 물꼬를 트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덕성여자대학교가 수도권 대학 최초로 ‘전면 자유전공제’를 도입했다. 계열 간 벽을 허물고 2020학년도 신입생부터 이 제도를 적용했다. 그동안 몇몇 대학이 ‘자유전공학부’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자유전공제를 시도해왔는데, 덕성여대는 대학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진우 총장의 결단이 있었다. 학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대학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한몫했다. 신입생을 인문사회계열, 이공계열, 예술계열 등 계열별로 통합 선발한다. 입학 시 주전공이 정해져 있고 복수전공이나 전과조차 자유롭지 않은 대학들과는 다른 행보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덕성여대의 ‘퍼스트 무버’로 나선 김 총장과 만나 ‘전면 자유전공제’ 도입 1년을 돌아봤다. 아래는 김 총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전면 자유전공제’는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에 뿌리를 둔다. 미국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같은 재학생 1000~1500명 수준의 명문 대학들이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 인문교양학부)를 중심으로 학부 교육을 진행한다.

“덕성여대가 자유전공제를 전면 실시한 것은 2020년이지만 이미 반세기 전부터 자유전공제를 중심으로 한 자유교육을 지향해왔다. 1969년 국내 최초로 다양한 분야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소규모 자유교육 세미나를 신설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필수 교양과목으로 이어져왔다.

과거 대학 정원 자율화 시대에 타 대학과 달리 정원을 늘리지 않고 1000~1500명 규모를 유지한 이유도 전인교육 중심의 자유교육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덕성여대는 학칙 2조 ‘교육목적’에도 자유교육 정신을 명시한 유일한 대학이기도 하다.”

―한국 학생들은 중학생 때부터 ‘자유학기제’ 등을 통해 진로를 고민하고 입시를 거치며 전공을 결정한다. 한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 입학과 동시에 길을 잃는다. 대학 차원에서 학생들의 ‘니즈’를 파악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고교 때부터 학업 외 활동이 활발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자유전공제를 통해 대학 1~2학년에게 자신의 분야를 충분히 탐색할 기회를 부여한다.

이는 자아 및 진로 탐색·설계가 청소년기에 끝나서는 안 되며 성인이 된 뒤에도 열린 경험을 통해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교육적 신념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교와 학원 생활 등으로 자신의 자아와 진로 탐색에 있어 더 제한적인 현실에 처해 있다. 대학에 들어온 뒤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고 여러 학문 분야를 탐색해 자신의 인생 설계를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 경험을 보장하기 위해 대학 차원에서 전면 자유전공제를 도입한 것이다.”

차미리사 기념관 모습. 독립유공자인 차미리사 선생은 덕성학원을 설립했다. 덕성여대 제공

―전면 자유전공제를 통해 총 1369개의 전공 선택 조합이 가능해졌다고?

“학생들은 학과가 아닌 인문사회계열, 이공계열, 예술계열로 입학해 1년간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다. 2학년 진입 시 제1전공으로 (계열별 각각) 22개, 10개, 5개의 전공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제2전공은 계열의 벽을 넘어 대학 내 모든 37개 전공에서 선택하게 된다.

제1전공과 제2전공을 조합하면 계열별로 각각 814개, 370개, 185개의 전공선택 조합이 생긴다.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의 학문을 자유롭게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학생들 각자의 ‘생애 각본’에 부합하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제1전공과 제2전공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전공은 학생이 입학 시에 들어왔던 계열 안에서 선택하는 전공이고, 제2전공은 그 계열의 벽을 넘어서 선택하는 것이다. 한데 제1전공과 제2전공의 차이점은 단어의 차이일 뿐 전공 심화 과정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등록금 책정, 졸업 시 학위 부여 등 현재의 행정적 제도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제1전공과 제2전공으로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제1전공과 제2전공은 행정적 처리 절차 이외에는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우리 학교 신입생들은 1년 평균 5개 정도의 분야를 경험하게 된다. 20학번 기준으로 평균 전공 탐색 과목이 4.6개다. 계열의 벽을 넘어 복수전공을 취득한다는 것은 융·복합능력 강화를 위해 중요한 조건을 마련한다.

덕성여대에서 2개 전공을 신청하는 비율이 19학번 20%에서 20학번 63%로 급증했는데, 이는 자유전공제를 통해 학생들의 학문 다양성 경험에 기반한 융·복합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진우 덕성여대 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학교 차원에서 전공 선택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수, 재학생, 졸업생 모두가 둘러앉을 수 있는 수평적 테이블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전공 선택 시 ‘쏠림 현상’은 없었는지?

“우리 학교가 도입한 ‘전면 자유전공제’를 통해 신입생 전원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3개의 계열(인문사회계열, 이공계열, 예술계열) 중 하나로 입학해 1년간 전공탐색과목과 교양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학생들은 2학년 진학 시 제1전공을 자신의 소속계열에서, 제2전공을 계열 구분 없이 선택한다.

전공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선택한 전공은 각각 전체의 17%, 15% 수준이었다. 예비대학을 운영하고 대규모 전공박람회를 두 차례 진행했다. 사전 전공 선택 시뮬레이션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가감 없이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신입생 때부터 학교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다하고 온라인 전공 박람회, 맞춤 전공 상담, 전공 데이(Day) 등 ‘전공 선택 디딤돌’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전공의 교수, 재학생, 졸업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전공 교수와 온라인을 통해 일대일로 상담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일부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차선을 고려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경우에도 제2전공 선택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이 선택한 전공에서의 수업권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큰 혼란 없이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흔히들 자유전공제를 도입하면 기초학문 등 소위 ‘돈 안 되는’ 학문이 도태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학문 다양성 수호의 측면에서 자유전공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수요도 아주 낮은 경우, 매우 제한적으로 타 전공과의 연계·융합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본다. 한데 자유전공제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학문 다양성의 보존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실제 자유교육을 실시하는 세계의 명문 대학들이 이러한 학문 다양성 보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택 학생이 적은 전공의 존속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폐강 기준을 대폭 완화해 소수 강의도 개설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마련했다.”

―행정고시 합격 뒤 대통령비서실을 비롯한 정부 부처, 대학 등에서 사회정책과 사회복지 분야 전문가로 일해왔다. 이러한 경험이 교육 수요자 중심의 정책 추진에 원동력이 된 듯하다. 창학 101주년을 맞이해 향후 학교 운영에 대한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월례 학생 간담회를 열고 지역사회와 사회적기업을 연결하는 릴레이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대학이 맞이할 새로운 100년의 첫 발걸음이 ‘전면 자유전공제’였다면 앞으로는 덕성여대가 교육중심대학으로서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그랜드 플랜’(Grand Plan)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학생들이 학문과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나가는 과정에서 창의융합적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학내 문화와 학풍을 조성해, 좀 더 체계적으로 강소대학으로서의 진면모를 갖추어나갈 예정이다.

자주, 자립, 자각의 창학 이념을 21세기 버전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중흥, 제2의 교육 르네상스’를 재현해나가려고 한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