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양곤을 향해 치켜든 세 손가락 / 전종휘
[편집국에서]
전종휘|사회에디터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게 어느덧 3년이 다 돼가는군요. 2018년 7월 양곤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창을 사이에 두고 나눈 작별 인사가 끝이었습니다. 저희는 미얀마 취재를 마치고 육로로 타이로 가기 위해 접경 지역인 미야와디까지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당시 <한겨레>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육로로 가장 멀리 떨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출발해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현장을 찾아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평화원정대’ 기획을 진행했죠. 저는 원정대장이었고, 묘 선생님은 미얀마 현지 안내를 맡아주셨습니다.
아, 선생님 성이 묘씨가 아닌 건 잘 압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가족이 대물림하는 성씨가 따로 없고 오로지 이름만 쓴다죠. 이름을 짓는 몇가지 습속이 있는데,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한텐 ‘묘’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어주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준 게 기억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2월1일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권력을 접수하자마자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과 윈 민 미얀마 대통령 등을 구금했다고 발표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대변인 이름도 묘 뉸이군요. 끝을 모르는 미얀마 군부의 폭력이 혹여 묘 선생님한테도 미칠까봐 두려워 이 글에선 선생님 이름 대신 ‘묘 선생님’이라 부르는 걸 양해하시길….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위대는 물론 어린이한테까지 군대와 경찰이 총격을 서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선생님께 보낸 안부 문자에 답장은커녕 20일 지나도록 읽은 표시가 없어 처음엔 크게 걱정했습니다. 뒤늦게 유혈 진압 소식이 외부로 나가는 걸 막기 위해 군부가 인터넷망을 차단했다는 걸 떠올린 뒤에야 마음을 아주 조금 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정치가 안정을 찾고 “나는 잘 있다”는 선생님의 답신을 받기 전까진 온전히 안심할 수 없을 듯합니다.
3년 전 평화원정대에 차별과 폭력 피해를 호소하던 다른 미얀마인들의 안부도 걱정됩니다. “불교가 국교이고 인구의 90%가 불교도인데도 왜 여성한테는 승려의 자격(비구계)을 주지 않느냐”며 성차별 문제를 호소한 여성 수도자들의 형형한 눈빛이 떠오릅니다. 이런 이들을 현지에선 ‘난’이라 부른다죠. 미얀마에선 처음으로 2014년 공개적인 결혼식을 올린 게이 커플은 별 탈 없겠지요? 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첫 과녁으로 삼는 폭력의 손길에서 벗어났길 바랍니다.
남자들도 입는 긴 치마 ‘론지’를 멋들어지게 걸치고 양곤 시내를 활보하던 청년들은 안녕한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황토팩을 한 듯 타나카 나무줄기를 빻아 그 즙을 얼굴에 바른 채 손님을 맞던 휴대전화 유심 판매점 직원도 잘 있겠죠? 며칠 전 그 타나카를 얼굴에 바른 채 이마 위에 “미얀마를 구하자”(SAVE MYANMAR)라는 글귀를 쓴 여성의 외신 사진을 보며 평화를 염원하는 미얀마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의 학살을 바라보는 국제사회는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유엔은 개입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임시정부 격인 연방의회대표위원회와 소수종족 무장단체가 뭉쳐 정부군에 맞서는 내전 상황으로 치달으며 인명 피해가 훨씬 더 커지는 상황도 우려됩니다.
한국인들이 미얀마 사태가 평화롭게 마무리되길 바라는 데는 두 나라가 20세기에 겪은 공통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얀마가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1962년 네 윈 군부가 이끄는 군사 쿠데타를 겪으며 민주주의가 지체된 것처럼 한국도 1945년 해방 뒤 1961년 박정희 군부의 쿠데타에 이은 군사독재를 18년간 겪었습니다. 1979년 찾아온 ‘서울의 봄’이 전두환 신군부의 12·12, 5·17 군사 쿠데타로 무위로 돌아갔듯 미얀마는 1988년 그 유명한 ‘8888’ 항쟁을 벌였으나 소 마웅이 이끄는 두번째 쿠데타에 짓밟혔죠. 1980년 학살을 겪은 광주시민들은 쿠데타에 반대하고 미얀마인들의 민주주의 시위를 지지하는 ‘미얀마 광주연대’를 만들어 주말마다 집회를 열고 시인들은 시를 써 읊고 있습니다.
미얀마가 나라 이름(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처럼 공화국의 이름을 되찾길, 미얀마인들의 삶에 평화가 내려앉길 바라며 저도 세 손가락을 힘차게 들겠습니다.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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