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암호화폐 특별단속 선언..창구선 "구체 지침 없어 혼란"
금융사들에 1차점검 강화 요구
은행들 정부에 "가이드라인 달라"
당국 법근거 없이 나서기 곤란
"합법-불법 선 그어주는 법 없어
단속해도 실효성 낮을 것"
정부가 암호화폐(가상자산)를 이용한 사기 등 불법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6월까지 범정부 차원의 특별 단속을 한다. 암호화폐 거래규모가 급증함에 따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칼을 빼 들었지만, 큰 틀에서 암호화폐 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는 여전히 소홀하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19일 국무조정실은 보도자료를 내어 “정부는 최근 가상자산 가격 상승을 이용한 자금세탁, 사기 등 불법행위 가능성이 커져 4~6월을 범정부 차원의 특별 단속 기간으로 정하고 관계기관 합동으로 불법행위 등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거래 뒤 현금화할 때 금융회사가 1차 점검을 강화하도록 했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를 하려면 실명이 확인된 은행계좌를 등록해야 하는데, 해당 은행이 의심스러운 출금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라는 것이다. 금융정보분석원도 자금 거래를 들여다보면서 가상자산 관련 불법 의심거래가 발생하면 신속히 분석해 수사기관과 국세청에 통보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외국환거래법 등 관계 법령 위반 여부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현재 시중 은행들은 외국인 등이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 자금을 외국으로 송금한다고 의심될 경우 자체적으로 송금을 제한하고 있다. 특정금융정보법의 자금세탁 방지 의무에 따른 조처다. 기재부와 금감원은 원화 송금 과정에서 증빙서류를 허위로 낸다든지, 대리송금을 해 금융실명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없는지 등을 점검할 방침이다.
이밖에 경찰은 가상자산 관련 불법 다단계, 투자사기, 해킹 등 금융범죄를 집중 단속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이용약관을 직권조사해 불공정 약관이 발견되면 시정 조처할 계획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가상자산 관련 불법정보 유통 단속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가상자산 관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한 집중단속 방침은 일부 불법행위 대응에 초점을 맞췄을 뿐, 업계에서 요구하는 전반적인 규제 방안 마련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당장 은행들은 암호화폐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외화 송금을 ‘자금세탁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제한하고 있지만 의심거래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창구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는 은행들의 요구에도 금융당국은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지침 마련에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암호화폐 거래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암호화폐 시황을 안내하는 코인마켓캡 사이트를 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국내 13개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오가는 거래대금은 27조원에 이른다. 이날 유가증권 시장의 거래대금(15조1722억원)의 두 배 가까운 규모다.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가 자금세탁 방지 측면에서만 이뤄질 뿐 시세조종, 내부자거래, 허위공시 등 여러 불공정거래를 처벌할 근거가 미비하다고 지적한다. 증권이나 파생상품 거래는 자본시장법을 통해 규율을 하는 만큼, 이미 증권시장 규모를 뛰어넘은 암호화폐 업계도 종합적인 법규가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가상자산 사업자들에게 어디까지 합법이고 어디부터 불법인지 선을 그어주는 법이 있어야 가장자산 사업자들도 합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고 동시에 이용자들도 보호할 수 있다”며 “그런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불법행위를 단속한다 해도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가상자산 거래를 통한 차익에 소득세(세율 22%)를 부과할 방침이다. 세법상에서는 가상자산을 ‘자산’으로 인정하면서도, 시장 관리에는 손을 놓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은행법이나 자본시장법처럼 ‘가상자산법’을 만들 경우 자칫 가상자산을 양성화하는 메시지를 줘 자산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염려해 제도 마련에 소극적이라고 해석한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이날도 “가상자산의 가치는 누구도 담보할 수 없고 투기성이 매우 높으므로 자기 책임 하에 신중하게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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