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석박사' 국회의원 5명 중 1명이 '논문 표절 의심'

최형원 2021. 4. 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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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 의혹'은 장관 후보자 등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의 단골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과거엔 주로 학자 출신들을 위주로 논문 표절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학자 출신이 아닌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엄정한 검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연구윤리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그만큼 높아지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론 비(非)학자 출신 정치인들이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납니다. 19대 국회에서 석사 이상 학위를 보유한 국회의원은 전체의 43%였지만, 21대 국회 들어 61%로 늘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문제 해결 능력뿐만 아니라 분야별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고학력 스펙'을 갖춘 국회의원들이 그만큼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의원들은 선거 과정에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홍보하려고 학위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취득한 학위 논문에 대한 진실성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선거 때마다 곳곳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의 논문 표절 시비가 불거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KBS가 국회의원들의 학위논문을 전수 검증한 이유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정당한 노력을 들여 학위를 취득했는지, 전문성과 경륜을 갖췄다면서 왜 표절 의심 논문을 써가며 학위를 취득하려 했는지, 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대학이나 지도교수의 특혜는 없었는지 등을 오늘부터 3일에 걸쳐 집중적으로 보도합니다.

■ 21대 국내 '석박사' 의원 150명 검증…31명이 '표절 의심 정황'

21대 의원 300명 가운데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는 183명, 여기서 국내 대학에서 논문을 쓰고 석박사 학위를 받은 150명을 검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먼저 학계의 연구부정행위 조사에서 많이 쓰이는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이들의 논문을 검사해보니 모두 34건의 논문에서 20% 이상 표절 의심 정황이 발견됐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표절률 20%는 논문 취소, 학위 철회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수준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KBS는 이 가운데 해당 분야 전문성, 지도교수와의 관계, 표절 의심 신고사례 등의 기준에 따라 모두 6건을 추렸습니다.

해당 논문들을 연구윤리 분야 전문가이자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이인재 교수에게 의뢰해 정밀 분석한 결과, 전부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 '수사권 조정' 전문성 내세웠는데…"매우 심각한 표절"

KBS는 우선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의 표절 의심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 저격수로 활약했던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의 사례부터 보겠습니다.

지난해 총선에 출마하며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운 황 의원은, 석사학위 논문 역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문제를 다뤘습니다. 해방 전후 검경 관계 정립 과정을 분석했는데, 여러 차례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황 의원의 석사 논문은 여섯 달 먼저 출간된 서울대 신 모 교수의 학술지 게재 논문과 문장이나 단락 구분이 똑같았습니다.

KBS가 확인한 것만 27쪽 분량이나 됐습니다. '규정하였다'를 '정하였다'로, '실시하였다'를 '시켰다'로, '공포'를 '발포'로, 어미나 단어를 살짝 수정하는 식으로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황운하 의원은 서울대 신모 교수의 논문 중 일부를 어미나 단어만 조금씩 고쳐 베껴 쓴 것으로 나타났다.


KBS가 대학연구윤리 전문가인 이인재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에게 표절 여부 검토를 의뢰한 결과 "매우 심각한 표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혹시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교수는 "이렇게까지 긴 것을, 이분의 이 저작물을 보지 않고 이렇게까지 닮아있을 수가 없다"라고 단언했습니다.

황 의원의 지도교수는 논문지도과정 등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당시는 표절 검사 프로그램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황 의원도 일부 표절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황 의원은 "당시는 엄격한 기준으로 논문 심사를 하지 않았고, 지금 기준에서 보면 표절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석사논문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지도 교수의 지도 하에 작성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 노동 분야 전문가들도 '표절 의심'…표절률 50% 넘기도

그런가 하면 노동 현장에서 오랜 기간 노동운동을 해오며 관련 분야에서 학위를 받은 의원 가운데서도 비슷한 표절 의심 사례가 발견됐습니다.

2016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4년 전,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임 의원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공단에 취직해 27년간 노동 운동을 했습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에 진학한 이유 역시 노동 현장의 경험에 학문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임 의원은 이곳에서 <택시운송업 종사자의 최저임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썼는데, KBS가 이 논문을 확인해보니 같은 대학 같은 지도교수 밑에서 2년 전 박사학위를 받은 강 모 씨의 논문을 상당 부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강 씨가 사견(私見)이라고 밝혀놓은 부분까지 출처를 적지 않고 그대로 베꼈습니다.

임이자 의원은 같은 대학원에서 먼저 박사학위를 받은 강모 씨의 논문에서 사견을 전제로 쓴 부분까지 인용표시 없이 옮겨왔다.


표절 검사 프로그램에서는 전체의 1/3 이상이 표절로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KBS의 의뢰로 해당 논문의 표절 여부를 검토한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는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고도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다"면서 "표절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임 의원의 지도교수였던 박 모 교수를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박 교수는 "그런 것(인용 표시)을 다 하라고 이야기하는데 본인이 일일이 체크를 안 하고 그냥 빠뜨린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다만 "임 의원이 안산에서 노동조합 일을 하면서 서울까지 멀리 통학을 하면서도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임 의원은 보좌진을 통해 KBS에 "여러 논문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라며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교육부는 지난 2007년 연구윤리지침을 제정해 표절 등 연구 부정 행위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임 의원의 학위 취득은 지침 시행 이후입니다. 이런 사례는 임 의원 뿐만이 아닙니다.

1년 전 미래통합당의 노동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박대수 의원도 임 의원과 비슷합니다. 박 의원 역시 노동 운동가로 활동하던 2013년, '고령자 재취업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한국항공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2~3개의 선행 연구와 논문들을 짜깁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논문들을 그대로 베끼다 보니, 표가 없는데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는 말까지 옮겨왔습니다. 표절 검사 프로그램 분석으로는 '표절률'이 50%를 넘어섰는데, 심각한 표절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박 의원의 지도 교수는 "논문 작성 과정에 불찰이 있었던 것은 맞다"라면서도 "그 당시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별문제가 안 되었다는 사정을 참작해달라"라고 말했습니다.

박대수 의원에게도 입장을 물었습니다. 박 의원은 취재진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여러 문헌을 참고해서 논문을 작성했는데 출처 표기를 제대로 못 했다"면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의욕이 앞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최형원 기자 (roedie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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