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병상 생활' 부자의 죽음..'재활난민' 현실은?

성용희 입력 2021. 4. 19. 16:53 수정 2021. 4. 1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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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너무 말라 앙상한 뼈가 다 드러난 채 병실에 누워 있는 한 남성, 22년 넘는 투병생활 끝에 생을 마감하기 약 1년 전의 故 유영호 씨 모습입니다.

산업재해로 장기간 여러 병원을 떠돌며 입원치료를 받던 유 씨는 2019년 7월, 충남 천안의 한 병원 병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병원에서 강제 퇴원 조치를 통보받은 지 엿새 만이었습니다.

■ 20여 년 전 추락사고...아버지와 아들, 극단적 선택으로 병실에서 숨져

유 씨가 사고를 당한 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7년 11월이었습니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유 씨는 대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추락사고를 당했습니다. 장과 대동맥이 파열돼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사지 마비 장애를 입고 장기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사고 이후 유 씨는 포항과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수년씩 치료를 받다가 여동생이 있는 충남 천안으로 와서도 두곳의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유씨는 2019년 7월 결국 자신을 돌봐주던 아버지와 함께 천안의 한 병원 병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 유족 측 "병실 폐쇄 등 퇴원 압박에 스스로 목숨 끊어"

유족 측의 주장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는 입원 중이던 병원 측의 강제 퇴원 조치였습니다.

수차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유 씨와 함께 22년 넘게 병상 생활을 함께 한 유 씨 아버지는 당시 2년가량 입원해 있던 천안의 한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엿새 만에 당시 76살이던 고령의 아버지는 40대 아들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해 숨지게 한 뒤, 자신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 씨 아버지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남긴 유서에 "병원 직원들에게 협박을 당해 너무 힘들어서 제 아들하고 이렇게 편히 갑니다", "병원 관계자와 충청남도 직원들을 처벌해 달라"고 적었습니다.

유 씨 아버지가 남긴 유서


유족들은 병원 측이 옮길 병원을 알아볼 시간도 주지 않고 수시로 병실에 찾아와, 당장 나가라고 환자와 보호자를 압박했다고 말합니다.

또 병원 측이 퇴원 통보 며칠 뒤 일방적으로 퇴원 절차를 끝냈고, 유 씨와 함께 5인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을 모두 다른 병실로 옮긴 뒤 유 씨 병상 주변에 통제선을 설치하는 등 압박에 못 이겨 부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제선이 설치된 故 유영호 씨 병실


■ 병원 측 "의료진에게 막말과 욕설 지속...진료 거부 사유"

일반적으로 병원이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하거나 퇴원을 요구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의료법 제15조 1항을 보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해당 병원은 유 씨 아버지가 유 씨를 돌보면서 의료진에게 막말과 욕설을 지속해서 했다고 주장했습니다.의료법 제12조 3항에는 "누구든지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의료인 등을 폭행 협박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병원 측은 이 조항을 근거로 유 씨 아버지의 막말과 욕설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또 유 씨가 위급한 상태가 아닌, 보존적 치료만 필요한 환자라고 판단해 유 씨 측에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퇴원을 독촉했고 병실을 폐쇄했다고 밝혔습니다.


■ 1심 법원 "정당한 진료 거부 행위"...유족 측 욕설이나 폭언 없었다며 항소

이에 대해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충청남도가 한 조사에서 유 씨 아버지가 의료진에게 욕설하고 병원 내에서 소리를 지른 사실이 확인됐다며, 병원의 강제 퇴원 조치를 정당한 진료거부행위로 봤습니다.

그리고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유족 측은 당시에 간호사가 수액을 환자복에 흘리는 등 실수를 반복해 시정을 요구한 적은 있지만, 욕설이나 폭언을 한 적 없다고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 재활 위해 여러 병원 전전...국내 재활치료 현실 점검 필요

최종적인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잘못 했다고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릅니다.그러나 벌어진 일들만 보자면 유 씨가 한 곳에서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현실이 이 사건의 원인 중의 하나였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유족들은 22년 넘는 병실 생활 동안 유 씨의 단순 치료보다는 재활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재활치료를 받을 곳이 없어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또 해당 병원에서 강제 퇴원 통보를 받은 뒤 알아본 산재전문병원에서는 입원하려면 한 달가량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른 겁니다. 이런 처지에 놓인 환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재활난민국'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유 씨처럼 산재를 겪은 환자들이 전문적인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전문병원은 전국에 10곳에 불과합니다.

또 원활한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간과 인력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재활치료는 수가가 낮다 보니 대학병원조차 지원을 축소하거나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재활치료 현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해 보입니다.

성용희 기자 (hee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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