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쉬면 20만원 내야" 택배·마트 배송기사가 아파도 못 쉬는 이유
'기사책임' 명시 '불공정 계약' 하기도
"마트·물류사가 비상시 대체인력 고용해야"
이틀을 쉬면, 사흘간 애써 일한 일당이 날아간다. 울산의 물류업체 소속으로 6년째 홈플러스 배송기사로 일하는 최아무개(40)씨가 부상을 당했을 때도 마음 편히 쉬기 어려운 이유다. 그는 올해 1월 허리통증으로 6주간 치료를 받았다. 무거운 물품을 지속해서 나른 게 원인이었다. 치료 뒤 복귀해 한 달간 근무를 했는데, 그달 월급은 없는 셈 쳐야 했다. 최씨가 일하지 못한 기간에 대체 기사를 쓴 비용인 ‘용차비’가 그에게 청구됐기 때문이다. 하루 15만원씩(영업일 기준) 30일치 450만원이었다. 유류비와 각종 비용을 제하기 전 기준으로 한달에 300만∼350만원을 받는 그에겐 크나큰 금액이다. 이 때문에 최씨는 최대한 허리통증을 참고 견뎠다. 하지만 통증이 심해지면서 일을 놓아야 했고, 일을 쉰 기간 ‘벌금’처럼 청구된 금액을 보니 막막했다. 그런 그에게 또다시 불운이 찾아왔다. 지난달 중순 배송차량을 운전하다 중앙선을 넘어오는 차량 탓에 교통사고로 입원한 것이다. 그렇게 입원한 지 한달이 되어간다. 수백만원의 용차비 추가 청구서는 어김없이 날아들 예정이다.
1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택배·마트 배송기사들은 하루 최소 15만원 이상의 용차비 부담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하고 있다. 용차비는 기사가 하루를 쉬면, 이를 대체할 기사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개인 사정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기사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금액으로 통한다. 상당수 물류사와 택배 대리점들은 용차비를 부담해주지 않는다. 기사들이 직접 고용된 게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계약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와 마트산업노조 등을 통해 취합한 결과, 용차비 금액은 일반적으로 일당의 1.5배 이상이었다. 택배기사 ㄴ씨(33)는 “택배 물품 1개 배송당 기사에게 떨어지는 수수료가 800원이면, 용차비를 계산할 때는 개당 1200~1400원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250개 물량을 배송한다고 가정하면, 개당 1200원으로 계산한 하루 용차비는 30만원에 달한다. 마트 배송기사도 비슷하다. 허영호 마트산업노조 조직국장은 “마트 배송 기사는 하루 용차비가 적으면 15만원, 많으면 20만원이 넘는다. 대부분 일당보다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용차비는 지방으로 갈수록 부담이 더 커지기도 한다. 대도시는 대체 기사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아 일당의 1.5∼2배 수준이지만, 소도시에선 기사를 못 구해 이보다 훨씬 비싸지기도 한다.
배송을 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해 기사 일을 그만두려 할 때도 ‘용차비’는 발목을 잡는다. 수도권의 한 지역 한진택배 대리점 소속으로 일했던 ㄴ씨가 이런 경우다. 그는 9개월 남짓 일을 하다 올해 초 산재를 입었다. 과도한 물량을 맡아 처리하다 보니, 허리 이상으로 한쪽 다리에 마비가 왔다. 하지만 대리점에서는 ㄴ씨가 일을 그만둬야 할 사정을 얘기하니 “후임자를 구해오라”고 했다. ㄴ씨가 후임자를 구하지 못하자 대리점은 한달치 용차비를 그에게 청구했다. ㄴ씨의 문제 제기로 금액은 줄었지만, 결국 일을 그만두며 수십만원의 용차비를 부담했다.
대개 택배·마트 배송 기사들의 계약서엔 용차비가 명시돼 있지 않으나, 업계에서 “오랜 관행”으로 통용된다. 다만 일부 택배사나 물류사 계약서엔 이를 배송기사에게 전가하는 명시적 조항을 둔 사례조차 있다.
최근 <한겨레>가 입수한 배송기사와 택배 대리점·물류사 간 계약서에도 이런 조항이 담겼다. 마트에 배송인력을 제공하는 물류사인 ㄷ사는 기사와 계약하며 ‘을(배송기사)의 일시적 사유로 인하여 갑(물류사)이 대체기사를 투입 시 모든 비용을 책임진다’는 조항을 넣었다. 또 다른 물류사 ㅈ사는 마트 배송기사와 맺은 계약서에 ‘대체차량 용역료는 을(배송기사)의 수수료지급 시 상계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서울의 한 택배 영업소에서는 ‘계약해지 시 하루 내 후임자를 선정하여 투입하여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을(택배기사)은 갑(영업소)에 모든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전문가들은 용차비 관행이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지적한다. 조혜진 서비스연맹법률원 변호사는 “(배송기사는)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지만 업무를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이 자유롭지 않다. 배송기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면, 사용자(회사)가 쉬어야 할 사유가 있는 기사로부터 돈을 받아서 대체 일용직 기사 인건비를 충당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한) 중간착취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택배사·대형마트에서 비상시 대체할 직영 기사들을 고용해 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성욱 택배노조 씨제이(CJ)대한통운 본부장은 “원청 회사(택배사)가 상시로 비상 대체 인원들을 고용하고 있다가, 기사들이 불가피하게 일을 못 하는 경우에 대체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용 신다은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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