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특허권 일시 유예를" 미·영에 쏟아지는 국제사회 압박

김윤나영 기자 2021. 4. 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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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 상원의원·각국 전직 정상
바이든 대통령에 공개 편지
영국 가디언도 존슨 총리에
“특허 면제 차단은 자해 행위”
‘백신 싹쓸이’ 세계 경제 타격

미국과 영국이 앞장서서 코로나19 백신 특허권을 일시 유예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미국과 영국 제약회사의 코로나19 백신을 다른 나라들에도 골고루 배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등 미국 진보 성향 상원의원 10명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코로나19 백신 특허권 일시 유예를 촉구했다. 이들은 “전염병을 빨리 끝내고 미국인과 전 세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려면 (특허권을 보호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어야 한다”면서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특허 면제를 지원해 제약사의 이익보다 사람들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계 지도자와 노벨상 수상자 등 저명인사들도 지난 15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을 끝내기 위해 특허권 잠정 중단은 불가피하다”고 촉구했다. 이 편지에는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등 175명이 이름을 올렸다. 브라운 전 총리는 “오는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둔 지금이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라고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특허 면제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8일(현지시간) “세계는 코로나19 백신 특허 면제가 필요한데, 영국은 왜 가로막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영국 정부가 특허 면제를 차단하는 것은 무모한 자해행위”라고 비판했다.

특허권을 일시 면제하면 전 세계 다른 백신 공장에서도 특정 제약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복제약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다. 백신 개발사에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각 제약사들이 백신의 ‘레시피’를 공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백신 물량 부족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지적했다. 네이처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미국이 다친 군인 치료를 위해 항생제 페니실린을 모든 제약사가 협력해 생산하도록 한 전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자들이 속도전을 주문하는 이유는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다. 가디언은 “전 세계 모든 인구에 빨리 접종하지 않으면 변이 바이러스 등장으로 현 백신이 1년 이내에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국들이 물량을 선점한 지금 상태라면 2024년까지 저소득 국가에는 백신을 보급할 수 없다. 백신을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대유행은 길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부국들이 ‘백신 민족주의’를 추구할수록 세계 경제도 타격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백신 부족으로 세계 경제 회복이 늦어지면 미국도 결국 손해를 볼 것”이라면서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미국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올해만 1조3000억달러(1453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는 지난해 10월 WTO에 코로나19 백신 특허권 유예를 제안했다. 저소득 국가 100개국이 이 제안에 찬성했으나 미국, 영국, 유럽은 반대했다. 영국은 옥스퍼드대학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을 지원했다. 미국은 공적 자금을 들여 모더나 백신을 개발했고,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화이자 백신도 미국에서 개발됐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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