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옆단지 살아요', 확산되는 근거리 주거가 저출산 해결책? [부동산360]
프라이버시 지키면서, 일상 공유하는 현대판 대가족
일본은 근거주거를 저출산 대책으로 적극 지원
상식타파의 시대다. 고정관념은 설 땅을 잃었다. 그때는 맞아도 지금은 틀린 경우가 너무 많다. 코로나19 사태가 깨버린 익숙한 생각과 행동이 특히 그렇다. 시대변화는 인구변화가 촉발하는 경우가 많다. 인구(사람)가 변했으니 풍경이 같을 리 없다. 최근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놀랄만한 인구변화를 감안할 때 향후 한국사회의 변화 기조는 더 넓고 깊을 수밖에 없다.
연령 구조의 변화는 일상생활의 질적 전환을 불러온다. 1~2인가구가 늘어났으니 1~2인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이 많이 필요하다는 차원의 양적 변화 뿐 아니라, 사람들의 속내도 바꿔 놓는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가족에 대한 생각도 변한다. 사람들은 그저 달라진 여건에 맞춰 행동할 뿐인데, 생활문화, 주거문화가 달라진다.
현대 가족은 진화한다. 방향은 양쪽으로 진행된다. ‘가족해체’란 원심력과 ‘가족연대’라는 구심력이 동시에 공존한다. 정확히는 가족 해체가 일반적이지만 그에 맞선 반발 기제로 가족 연대의 새로운 혁신 실험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원운동을 하는 물체에서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원심력과 중심에서 잡아당기는 구심력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처럼, 가족 해체와 가족 연대는 ‘각자도생 사회’의 생존법이라는 점에서 우리사회에 동시에 나타난다.
물론 결과는 다르다. 가족 해체는 젊은층들의 저출산으로 인한 빠른 인구 감소로 구체화한다. 0.84명(2020년)의 압도적 세계 꼴찌로 기록된 출산율 현상이다. 그런데 한편에선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출산을 지원하는 가족연대라는 신풍경이 나타난다.
분화한 청년세대(2차가족)는 ‘결혼→출산→양육’ 과정에서 기존 가족과 연대를 강화한다. 아직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에서 열악한 영역으로 남아 있는 양육 제도의 한계를 양가 부모(1차 가족)가 도와주는 혈연적 협력체계의 구축이다. 일종의 역할·기능적인 대가족화다. 현대판 달라진 대가족주의의 출현이다. 가족연대가 숨통을 안 터줬다면 세계 최저 출산율 수치는 한층 낮아졌을 터다.
구체척인 사례는 점점 늘어난다. 결혼과 함께 분가한 후 자녀출산을 계기로 조부모와 함께 살거나 근처로 이사하는 경우다. 대부분 맞벌이로 시간 여유도 없고 지갑 사정도 넉넉하지 못한 경우다. 이들은 부모 도움이 없다면 양육은커녕 출산조차 힘들다. 경제력을 갖춰 사설 양육 기관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젊은 부부라고 해도 부모를 찾는 경우가 많다. 언론에 수시로 등장하는 각종 영유아 시설의 사건 사고를 지켜보며 믿고 맡길만한 대상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족연대의 대가족화는 생활 방식을 바꾼다. 당장 사는 집을 둘러싼 달라진 욕구에 맞는 구조·입지가 점점 더 인기를 끈다. 가족연대를 실현해줄 새로운 주거 스타일이 등장한다. 대체적인 방향은 대가족의 상호성을 지원해줄 근거(近居)방식으로 수렴된다.
예전 대가족은 한 지붕 아래 뭉쳐 살았다. 동거(同居)형태다. 반면 현대판 가족연대는 동거보다 ‘근거’를 선호한다. 방을 통한 제한적인 세대분리에서 집을 나눈 원천적인 거주 분리, 즉 ‘근거형 주거스타일’(이후 근거주거)이다. 공동양육을 위해 젊은 부부세대와 부모세대가 근처에 모여 사는 것이다. 장점은 함께 사는 불편함이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젊은세대나 부모세대 중 상당수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한다.
근거주거는 이웃나라 일본에서 2000년 이후 본격화했다. 한국보다 앞서 인구병·저성장·재정난의 삼중고를 겪어온 사회답게 스스로 잘 살아내려는 몸부림이 트렌드로 정착했다. 일본에선 근거주거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현역자녀에게 부모의 육아지원을 통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하고 부모의 노후불안을 옆에서 지켜봐 안정감을 높이는 주거유형이라고 인식된다. 은퇴부모는 손주세대와 교류가 늘며 그들의 삶 속에 녹아들뿐 아니라 본인의 생활 편리도 향상된다고 평가한다. 결국 근거주거가 노후복지와 육아복지 모두를 실현한 장점이 많은 주거 유형이라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근거주거를 ‘주거는 다르나 일상왕래가 가능한 범위에 사는 것’으로 정의한다. 종류는 크게 부모·자녀의 2세대형과 부모·자녀·손주의 3세대형으로 구분된다. 결혼 후 분가한 자녀가 출산을 계기로 부모의 집 근처에 옮겨오거나, 반대로 고령부모가 자녀의 집 인근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근처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가까이 산다는 것은 대개 교통수단(자전거·자가용·공공교통)이 전제된 30분 안팎으로 정리된다. 도보로는 1시간까지도 포괄한다. 서로 왕래하기 쉽지만, 일정 부분 거리감이 보장된 절충적인 거리감이다. 당연히 함께 식사하는 기회가 많아져 ‘국이 식지 않는 거리’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유력한 건 15분 정도다. 15분의 거리면 따뜻한 동반취식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근거보다 짧은 거리감은 인거(隣居)로 부른다. 같은 동이나 동일단지에 사는 경우다. 인거는 단독주택일 때 훗날 이를 쪼개 별도건물로 나눠살 수 있어 매력적이다.
근거주거에 대한 선호는 통계로 확인된다. 주지하듯 일본의 고령부모·기혼자녀의 동거비율은 급감했다. 1980년 52.5%에서 2016년 11.4%로 줄었다(국민생활기초조사). 또 다른 조사에서는 1997년 동거(31.3%), 별거(34.2%), 근거(26.7%)였던 게 2015년 각각 18.7%, 33.2%, 42.9%로 늘었다(출생동향기본조사). 즉 별거는 큰 차이가 없으나, 동거감소·근거증가는 확연한 트렌드다.
근거는 자녀주도로 추정되나, 실은 부모의향도 반영된다. 고령자의 근거의향도 높은데, 1993년 20.7%에서 2018년 28.3%로 커졌다. 근거 중에서도 도보 5분 정도(11.0%→6.6%)는 낮아진 반면 편도 15분~1시간(7.9%→14.7%)은 높아졌다(주택생활종합조사). 같은 맥락에서 독립형 분리주택의 만족도는 93.7%인데 일체형 동거주택은 66.3%로 낮다(2018년·헤벨하우스조사).
재미난 통계도 있다. 2013년 자료로 근거주거 비율은 친가가 외가보다 더 높다. 외가부모(14.5%)보다 친가부모(17.3%)의 근거가 다소 많다(내각부). 반면 조부모 성별로 근거희망을 쪼개면 결과는 또 엇갈린다. 60대 남성은 12.4%인데 비해 여성은 25.4%다(2015년·국민생활여론조사). 결국 모든 통계의 방향은 근거주거 선호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이미 근거주거는 소리 소문없이 퍼진 상태다. 양육지원의 최후버팀목이자 핵심안전판으로 부모 소환은 일상사다. 반면 정책지원은커녕 실태조사조차 변변찮다. 방향을 바꿀 때다. 일본사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할 이유다. 일본에서는 근거, 즉 ‘딱 좋은 거리감으로 나눠 사는 삶’은 향후의 핵심적인 주거형태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근거주거는 인구정책의 지향점인 출산문제와 직결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도 적극 고려할 만하다. 일본은 근거주거를 위한 보조금을 주는 지자체가 많다. 도쿄 스미다구는 직선거리 1㎞ 이내의 근거일 때 신축주택 50만엔, 중고주택 30만엔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근거주거 지원을 위한 할인제도도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취급하는 UR도시기구는 근거주거 할인(近居割)을 제도화했다. 부모·자녀세대가 같은 단지거나 2㎞ 이내의 임대주택에 살 때는 물론 두집 중 한집이 신규로 입주하면 임대료의 5%를 깎아주는 방식이다.
양육세대는 미성년자 자녀(임신포함)가 있고, 부모세대는 60세(만)를 넘기면 해당된다. 중개수수료·갱신료·감사료(礼金) 없이 주택을 소개해주는 도쿄도주택공급공사도 근거희망자에게 비슷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안심등록제도를 만들어 근거주거 수요자를 우선해 소개해주는 제도다. 근거주거 기준도 확대해 2㎞에서 5㎞까지 대상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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