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일본에 마스크 보내자' 내가 제안..욕먹어도 밀걸 그랬다"

신은별 2021. 4. 1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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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수상록' 내..본격 대권 행보 
참여정부 때 문 대통령 회고
"잘 경청하지만 짠 분이었다
대통령과 나는 줄곧 협력 관계"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총리 후보자였던 2019년 12월 31일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출근하며 웃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에세이집을 냈다. 제목은 '수상록'. 본인의 이름으로 책을 냈다는 건 '대선주자 정세균' 행보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의미다. 그는 대권 도전을 위해 16일 공직을 떠났다.

책에는 '지금까지의 정세균'과 '앞으로의 정세균'이 비교적 솔직하게 담겨 있다. 국무총리가 되기 전 내려 했으나, 지난해 1월 총리직을 수락하면서 출간이 미뤄졌다고 한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취임 후 일주일 만에 발생한 코로나19로 '방역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임기 내내 맡았다. '노란 잠바 아저씨'라고 불리는 이유다. 사진은 16일 중대본 회의에서의 모습. 뉴스1

"총리, 어렵게 수용했는데… 코로나에 발목 잡힐 줄은"

국회의장 출신으로서 총리직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책에 담았다. '어쩌다 국무총리' 편에서 정 전 총리는 이렇게 회상했다. "(문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제의를 받았다. '입법부 위상을 감안할 때 수용하기 어렵다' 등의 이유로 거절하며 정중하게 다른 분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일이 아주 급박하게 돌아갔다. 고심 끝에 '나라를 위해 내가 소용된다면 자리의 높낮이를 따지지 않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 아니겠나'라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아쉬움도 고스란히 적었다. "제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경제 활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적극 행정을 해야겠다, 정부가 먼저 과감하게 규제를 혁신하자, 경제 살리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자, 기업 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데 사활을 걸어야겠다.' (…) '소통과 대화로 사회 통합을 이뤄내자,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마음을 경청하고 서로 대화하는 모델을 만들어야겠다.' 그러나 취임 후 일주일도 안 되어 첫 번째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 코로나에 발목이 잡히리라고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두 가지 일을 제대로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41차 목요대화에서 발언하는 모습. 정 전 총리는 1년여간 목요대화를 통해 각계각층 인사와 소통했다. 뉴시스

"총리 제안, 항상 먹히진 않아… 욕 바가지로 먹기도"

'마스크 대란' 당시 일본에 마스크를 보내자고 제안했다가 비난을 크게 받았던 일화도 정 전 총리는 공개했다. 지난해 4월 한국일보는 '정 총리가 일본에 마스크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보도했다. 총리실에서 팩트를 취재한 것이었지만, 청와대는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 마스크 수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왜 일본에 마스크를 주느냐'는 여론의 거센 반발에 한발 물러선 것이었다.

정 전 총리는 '당시 그러한 논의가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제안이었다'고 책에서 분명히 말한다. "총리 제안이 항상 먹히는 건 아니다. 제안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고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당시 미국과 일본에 마스크를 보내자는 제안도 했다. 두 나라 모두 마스크 부족 때문에 엄청 고생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네티즌들이 무슨 일본에 마스크를 보내냐면서 저를 공격했다. 반대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총리가 정부에 부담을 줄 수는 없으니까 결국 일본에 마스크를 지원하는 건 철회하고 말았다."

다시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일화임에도, 책에 고스란히 담으며 정 전 총리는 이렇게 덧붙였다. "인도적인 것을 통해 국가 간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면 굉장히 가성비가 높은 방법이다. 외교적으로 매우 좋은 제스처였는데 아쉽다. 그때 욕을 먹더라도 밀걸 하는 생각도 든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해 8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집중호우 긴급점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간

“문재인 대통령과는 줄곧 협력 관계”

문 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정 전 총리는 "본래 정치인들은 다 경쟁 관계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나는 경쟁 관계보다는 줄곧 협력 관계였다"라고 썼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할 때 정 전 총리는 여당 원내대표를,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할 때 정 전 총리는 여당 의장(대표)을 맡고 있었다.

"문재인 수석과 문재인 비서실장은 잘 경청해줬다. 당시 문 대통령은 경청은 잘하지만 짠 분이었다. 희망을 걸고 전화했지만 실망을 체험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 사사로운 배려나 정치적인 결정은 잘 안 하는 스타일이었다. 공무에 철저했다."


"정치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

'대선주자 정세균'으로서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미래 세대가 지금 우리 세대보다 더 잘사는 나라, 이것이 정세균의 정치다."

'정치인 정세균'이 생각하는 정치의 바람직한 방법론도 적었다. "'나를 따르라'라는 방식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잘 듣고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모습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독단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추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같이 참여하고 같이 토론하면서 결론을 도출하고, 그렇게 도출된 결론을 존중한다. 그런 자세로 그동안 정치를 해왔던 것 같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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