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내 근로복지기금은 일반투자자..미래에셋·유진운용 39억 배상"
미래에셋, 안전자산 투자 희망 공사에 불완전 판매
유진자산운용 작성 안내서도 펀드 가입에 영향 미쳐
법원 "객관적 설명보다 가입 유인에 방점" 책임 인정
펀드를 직접 판매한 증권사 뿐 아니라 펀드를 설정한 자산운용사의 책임도 인정됐다. 공사가 펀드에 가입할 때 중요 자료로 참고한 자산운용사 작성 상품안내서가 객관적 정보 제공보다는 투자유인에 방점을 두고 있었던 점이 고려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이 미래에셋증권과 유진자산운용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미상환 원리금의 70%인 약 39억원을 미래에셋증권과 유진자산운용이 공동해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판결에 따르면 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유진자산운용이 설정하고 미래에셋증권이 판매한 '유진 자랑 사모증권투자신탁' 3·4·5·6호에 2013년 2월부터 2013년 7월까지 4번에 걸쳐 총 142억원을 투자했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안정적인 상품을 추천해 달라"는 공사 측 기금담당자의 요청에 이 사모펀드를 추천하며 "정기예금처럼 안정적이면서 정기예금 수익률보다 높은 연 5%내지 5.6%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품은 펀드 자산의 50~55%를 국내 우량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 45~50%는 고위험 상품인 미국 생명보험증권펀드(TP펀드)에 간접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됐다.
이 사건 사모펀드가 자산의 절반가량을 투자하는 TP펀드는 2011년 영국 금융감독청이 "복잡하고 높은 위험이 있어 소매투자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내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TP펀드는 펀드 투자금으로 미국 생명보험증권을 피보험자로부터 매입해 피보험자가 사망할 때까지 보험료를 대신 납입하고, 피보험자가 사망할 경우 생명보험금을 수령해 이익을 창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피보험자가 예상보다 오래 생존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 리스크 등을 지적한 것이다.
이같은 지침 내용은 영국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지를 통해 보도됐다. 또 지침 발표 이전에 이미 미국과 한국에서 환매중단으로 투자자들이 손실을 본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공사에 펀드 가입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영국 금융감독청 지침이나 피해 사례를 알려주지 않았다. 공사 기금 담당 직원이 이 사건 펀드 상품안내서에 위험요인으로 기재된 유동성 위험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요구했지만 미래에셋증권 측은 "통상의 금융상품설명서에 포함된 내용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문제는 공사가 3·4호 두 개의 펀드에 가입한 뒤인 2013년 4월에 발생했다. TP펀드 측은 2013년 4월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 증가로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해 4월 이후 펀드의 모든 환매를 중단한다"고 유진자산운용에 통지했다. 그러나 유진자산운용은 환매중단사실을 미래에셋증권에 바로 알리지 않았고, 환매중단 사실을 몰랐던 공사가 5·6호 펀드에 추가로 가입한 뒤인 그 해 8월 미래에셋증권에 환매중단결정 사실을 통지했다.
공사 측은 미래에셋증권과 유진자산운용을 상대로 "미상환 펀드 투자 원리금 56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미래에셋증권의 책임은 인정했지만 유진자산운용은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미래에셋증권이 공사와 계약을 체결했고, 유진자산운용은 펀드를 설정했을 뿐 공사와 계약을 체결한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펀드의 위험요인 등을 알았더라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겠지만, 미래에셋증권 측의 기망으로 증권을 매수했다"며 미래에셋증권에 원금 손실분을 모두 배상하라고 밝혔다.
2심은 유진자산운용의 배상 책임도 인정하면서, 미래에셋증권과 연대해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유진자산운용과 관련해 "공사는 미래에셋증권 직원의 직접적인 설명 뿐 아니라 유진자산운용이 작성한 상품안내서도 검토한 후 투자를 결심한 것으로 보이고, 상품안내서는 상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보다 투자유인에 방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유진자산운용은 자본시장법상 '투자권유'를 했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투자자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했다.
유진자산운용이 TP펀드 측으로부터 환매중단 통보를 받고 이를 뒤늦게 미래에셋증권에 알린 것과 관련해서는 기망의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유진자산운용이 이 사건 펀드 설정 당시 TP펀드 측으로부터 '환매를 약속한다'는 취지의 확약서신을 받았고, 환매 중단 이후 TP펀드 관계자가 '확약서신을 받은 이 펀드에 대해서는 환매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답한 점, 그리고 실제로 환매 중단 선언 다음달인 5월 21일에 이 사건 1호 펀드가 투자한 일부 TP펀드 환매가 이뤄졌던 점 등을 고려하면 유진자산운용에 기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진자산운용의 공동 책임을 인정했지만 배상 금액 자체는 1심보다 낮게 산정했다. 재판부는 공사가 투자 상품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책임도 있다며, 손실분의 30%는 공사가 책임지고 나머지 70%를 피고들이 연대해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공사가 자본시장법상 영업행위 규제를 덜 받는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투자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전문투자자는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전문성, 소유자산 등에 비춰 투자에 따른 위험감수능력이 있는 투자자'여야 한다"며 "원고 투자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금융투자 의사결정을 위한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투자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근로복지기본법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로 설립됐다는 특성상 '법률에 의해 설립된 기금'이 아니므로,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금'을 운용하는 법인을 전문투자자로 정하는 유권해석을 고려해도 전문투자자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공사와 미래에셋증권, 유진자산운용 모두 상고했다. 대법원은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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