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민주주의, 한국사회에 답하다
[김상돈 고려대 겸임교수]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6·25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른 국가들이 일찍이 겪지 못한 거대한 전환을 경험했다. 그 와중에서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2019년 세계 12위에서 2020년 세계 9위의 경제국으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1919년 3·1혁명(운동), 4·19 시민혁명,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6년~2017년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에 걸친 시민혁명의 민주주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했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여전히 부패와 특권의 사슬, 이념 갈등과 분단의 장벽, 신자유주의 세계화(범역적 자본주의)에 가로막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물질적 풍요와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끈 점은 분명하고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의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악마의 맷돌이 되어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한국사회를 전방위적으로 불평등하게 구조화했다. 예컨대,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공존적 삶의 해체, 골목상권을 집어 삼키는 유통 대기업의 약탈적 횡포,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2030세대, 무자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공동체 파괴와 기후 위기, 규범과 도덕의 비존재로 인한 범죄 증가, 그리고 생활고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과 고독사 등이 표상된다. 이것을 ‘이! 끔찍한 탈근대 위험사회’라고 표현하려 한다.
‘이! 끔찍한 탈근대 위험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사회문제들과 정면으로 맞대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명확한 해법이 바로 기본소득 민주주의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제공하는 인간 살림살이의 토대이자, 마중물이다. 동시에 복지사각지대와 낙인찍기가 없는 새 복지체계로 향하는 거대한 전환이다. 기본소득은 우리 모두의 몫을 모두가 함께 누리는 분배의 공정성이자, 공공성 확보의 첩경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고, 베풂이 아니라 정의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저자인 장 자크 루소가 자서전인 <고백록>에 쓴 “수중에 있는 돈은 자유의 도구지만 기를 써서 벌어야 되는 돈은 노예의 도구다”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모두를 위한 자유의 도구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서구의 본격적 논의는 기본소득의 고전적 사상가 3인방인 토마스 페인(1795년), 스펜스(1797년), 샤를리에(1848년)를 기준으로 하면 200년이 넘었다. 하지만, 한국의 기본소득은 불과 20년 안팎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했다. 2016년 1월에 시행한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시작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대중들의 폭발적 관심이 대두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발달과 4차 산업혁명으로 무려 70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소멸하고, 불안정한 고용·노동 상황의 노동자를 총칭하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99.99%가 될 것이라는 이! 끔찍한 미래공포에 대한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해법으로 기본소득이 강력히 표출됐고, 이제는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앞장서 온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의 ‘노동 없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한국 노동시장에 대한 다양한 예측들은 보다 대담하고 획기적인 탈노동 소득보장정책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와 핀란드의 기본소득 정책실험,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기본소득 실험, 미국 알래스카 주의 기본소득 도입 등 일련의 정책과 실험이 보여주듯이 기본소득 민주주의는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국민의 명령이자,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경기도를 위시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에서 청년기본수당, 농민기본수당, 예술인기본수당 등 부문별 수당과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 등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실험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시장에 풀린 재난기본소득이 꺼져가는 전통시장과 동네상권의 불씨를 되살리고, 국민들의 코로나19 극복 노력에 적지않은 보탬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몸소 체감하고 있다.
부분적 기본소득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가장 유망한 해법이다. 학자로서 기본소득을 최초로 주장한 조지 콜(Cole)도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이를 점진적으로 제도화하고 점차 확대해 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부분적(또는 소액) 기본소득일지라도 사람들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직업훈련이나 교육을 받도록 도울 수 있다. 자기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도 사용할 수 있고, 다양한 일을 하기에도 수월해질 것이다. 완전한 기본소득을 단번에 성취하는 길만이 한국사회가 당면한 ‘이! 끔찍한 탈근대 위험사회’를 고칠 만병통치약이라고 신줏단지처럼 여기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것이다.
끝으로 세계 9위 경제국과 시민혁명 민주주의 역사를 동시에 만들고 있는 대한민국이 ‘모든 국민들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제공받는 기본소득 민주주의’로의 거대한 전환 길까지도 선도해야 함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필자 김상돈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겸하고 있습니다.
[김상돈 고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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