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농촌에 '인권' 하러 가는 사람들 / 정민석

한겨레 2021. 4. 1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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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민석 l 인권재단 사람 사무처장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민을 위해 조성된 긴급 의료비 지원사업이 종료되었다. 만 2년 동안 진행된 이 사업 덕분에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힌 보호외국인은 물론, 병원에 갈 시간도 없이 농촌에 고립되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일부가 비용 걱정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시아의 친구들’ ‘지구인의 정류장’과 같은 인권단체들이 있었기에 치료가 필요한 이주민들을 발굴할 수 있었고, 인권활동가들은 이들과 병원에 동행하고, 통역을 지원하고, 때로 이들이 있는 현장에 찾아가 상담을 진행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 결과보고서엔 병원과 약국에서 결제한 카드 전표가 빼곡하다.

우리는 ‘참으면 큰 병 된다’ ‘아프면 병원부터 가보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에선 개인이 처한 근무환경과 일하는 업종에 따라 병원 가는 것도 눈치 봐야 하고, 아프다는 말도 쉽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국인도 그런데 이주민들에겐 더없이 힘든 일이다. 의사소통도 어렵고, 한국어로 되어 있는 의약품 설명서는 읽을 수도 없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안정하게 일하고 있는 상황에선 고용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들을 주로 상담하는 ‘지구인의 정류장’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이주민 인권단체다. 오랫동안 노동 상담을 진행했고, 인권재단 사람으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은 이후에는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만난 이주노동자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정말 글로벌, 다문화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동상에 걸려도 어떤 연고를 바를지 몰라 무조건 참고 견디거나, 난소암 때문에 만삭의 임신부처럼 배가 불러와도 수술보다 일터에서 잘릴까봐 걱정을 먼저 한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몸이 아파도 변변한 진료도 받지 못한 채 비닐하우스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속헹씨와 같은 사건은 어쩌면 당연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예견된 비극이었을지 모른다.

이주민들도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2년 전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이주민 건강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필요한 제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직장 가입이 아니라 지역 가입을 해야 하고, 월 12만원이 넘는 평균보험료 이상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보험료 체납이 반복되면 체류 자격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최근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한(미충족 의료) 이유가 비용이 부담 돼서(54.1%), 시간이 없어서(37.4%), 의료진과 의사소통이 어려워서(27.9%), 어디서 진료받을지 몰라서(17.7%)라고 조사되었다. 즉 비싼 보험료를 납부하면서도 돈 걱정부터 해야 하고, 병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을 해야 하며, 병원에 가서도 자신의 건강 상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병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다른 업종보다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건강검진 경험이 가장 적었다.(최근 2년 이내 건강검진율이 평균 60.6%인 데 반해 농어업 종사자는 18.4%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제2차 이주 인권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농축산업 사업장의 건강보험 직장가입 확대를 권고하는 등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국가가 나서서 하지 않는 활동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 노동인권버스’를 운영하며 소외된 농촌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난다. 비닐하우스 숙소를 돌아보고, 노동상담을 하고, 모국어로 적힌 의약품 키트를 전달한다. 택시를 타고 20분은 들어가야 사람을 겨우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소외된 지역에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인권재단 사람은 찾아가는 노동인권버스가 멈추지 않고 농촌 지역에 갈 수 있게 지속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이 농촌에 ‘인권’ 하러 가는 사람들의 든든한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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