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가짜어른의 거짓위로 / 한승훈
[숨&결]
한승훈 |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4·7 재보선이 끝난 후 한창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주제 가운데 하나는 20대의 표심이다. 그동안의 선거에서 20대는 대체로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하지만 적극적으로 투표하지 않는 정치 무관심층으로 취급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세대별, 성별 투표 결과는 대단히 기이하다. 20대 남성은 압도적으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한편, 20대 여성은 거대 양당 가운데 어느 한쪽에도 결정적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가운데 주로 ‘성평등 후보’들로 구성된 ‘기타’ 정당들에 15%나 투표했다. 상황 인식도 대조적이다. 많은 20대 남성들은 현 정부가 페미니즘에 경도되어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반면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진보정당 및 여성주의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 20대 여성들은 거대 양당 모두가 젠더 이슈를 포함한 의제들에서 불평등한 구조를 극복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투표 결과나 현실 인식만 보면 이들을 같은 세대로 분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극단적인 차이다. 그러나 지배적인 정서에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상처’와 ‘분노’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21세기 이후 한국의 20대가 희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던 시절은 없었다. 경쟁은 전에 없이 심해졌지만, 부와 신분의 세습구조가 고착화되면서 그 경쟁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이 세대에게는 산업화 및 민주화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앞으로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야”라는 세계 인식이 없다. 한국에서 2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젊은 세대의 절망에 대해서 ‘꼰대’라 불리는 한 부류의 어른들은 그들의 노력 부족을 탓한다. 자신들도 젊은 시절에 가난과 어려움을 겪었는데 풍요롭고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어줬더니 무슨 배부른 푸념을 하고 있냐는 식이다. 이런 이들의 자기 인식은 ‘롤모델’이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바로 이렇게 말했다. “야들아, 내가 너희들의 롤모델이다. 그런데 왜 나를 싫어하냐?” 반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어른들은 청년들의 ‘상처’와 ‘분노’에 대해 자신들이 ‘치유’와 ‘위로’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멘토’나 ‘위로자’ 유형의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
한때 대선 후보급 유력 정치인들의 필수 코스였던 토크쇼의 제목이 <힐링캠프>였다. 지금은 반쯤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한때 많은 젊은이들에게 위로를 줬던 책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거물 정치인으로 떠오를 당시, 그는 기업가로서의 개인적인 성공만큼이나 청년들의 멘토 역을 자처하는 명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10년 전 그의 ‘청춘콘서트’에 열광했던 이들은 그가 기성세대로서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나 고맙고 울컥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해주는 어른이 좀처럼 없었으니까.
필자는 꼰대·롤모델 유형의 어른들도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지만, 치유나 위로를 주겠다고 나서는 어른들은 명백하게 해롭다고 본다. 말뿐인 공감과 위로는 현실 인식을 일그러트리고 고통을 가져오는 진짜 이유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19세기 유럽의 종교가 바로 이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유명한 ‘종교 아편론’이다. 예상컨대 이번 선거에서 주목받은 20대 남성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성차별적 정책과 발언이 쏟아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중적인 지지를 얻은 데에는 주로 백인 남성 노동자로 이루어진 지지층이 그의 혐오 발언들에서 기성정치권에서는 주지 못한 ‘위로’를 얻은 탓이 컸다. 가짜 어른들의 거짓 위로는 20대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진통제, 그것도 해로운 부작용과 의존성이 강한 마약성 진통제다. 제대로 된 치료 없이 이런 약만을 주는 이들의 목적은 지배다. 결코 구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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