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계의 골칫거리 극우 성향 그린 의원, '아메리카 퍼스트 코커스' 설립 계획 논란
[경향신문]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기 전 쏟아낸 각종 음모론과 극단적인 주장이 문제가 돼 상임위원회에서 퇴출된 마조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의원이 이번에는 ‘앵글로 색슨 전통’을 운운하며 보수 의원 단체를 만들려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그린 의원의 백인 우월주의를 앞세운 의원 단체 설립 계획이 알려지자 공화당 지도부는 “공화당은 모든 미국인의 정당”이라면서 서둘러 선을 그었고, 그린 의원 측은 실제 추진된 적이 없는 외부의 아이디어였다고 말을 바꿨다.
미국의 유료 회원제 인터넷 매체 펀치볼 뉴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그린 의원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퍼스트 코커스’ 결정이 준비되고 있다면서 7쪽 분량의 문건을 공개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승리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함께 선거 구호로 사용한 단어였으며, 반이민, 외교적 고립주의, 관세를 앞세운 무역전쟁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집약한 용어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정치적·정책적 지향점이 같은 의원들끼리 코커스를 구성할 수 있다. 코커스는 법안이나 결의안을 채택할 권한은 없지만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연대해 각종 법안 및 예산 심의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그린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이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부와 기업, 언론을 장악한 사탄을 숭배하고, 소아성애를 일삼는 무리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극우 음모론인 큐어넌(QAnon) 신봉자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린 의원이 추진한다는 아메리카 퍼스트 코커스 설립 취지 문건이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를 표방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었다. 이 문건은 아메리카 퍼스트 코커스가 ‘앵글로 색슨의 정치 전통’을 신봉한다면서 대규모 이민에 대해 “독특한 문화와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미국의 장래에 대한 장기적인 존재론적 위협”을 가져온다고 기술했다. 미국의 전통을 영국에서 건너온 백인에 두고 이 전통과 문화를 지키겠다고 천명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문건은 인프라 건설과 관련해 유럽 건축 양식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봉쇄 조치의 중단을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선거 부정을 주장하며 공격한 우편투표 폐지도 주장했다.
CNN방송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린 의원의 대변인인 닉 다이어는 이 문건이 공개된 직후 낸 성명에서 그린 의원이 코커스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메리카 퍼스트 코커스 설립 계획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인종주의적이고 극우적인 표현과 음모론으로 가득한 설립 계획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다른 공화당 의원들은 서둘러 선을 긋고 나섰다. 캐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17일 아메리카 퍼스트 코커스를 직접 거론하지 않은채 “공화당은 링컨의 당이자 모든 미국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당이지 이민 배척주의자의 개 호루라기(은밀히 사람을 조종하는 행위) 당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화당 하원 서열 3위인 리즈 체니 의원도 그린 의원의 코커스 설립 계획에 관해 트위터에 “공화당원들은 모두를 위한 동등한 기회와 자유, 정의를 믿는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관용과 품위, 도덕적 용기를 가르친다”면서 “인종주의와 이민 배척주의, 반유대주의는 악이다”라고 썼다.
공화당 지도부를 비롯해 다수의 의원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자 그린 의원 측은 해당 문건이 실제 추진된 적이 없는 의원실 외부의 아디이어 초안에 불과하다고 말을 바꿨다. 닉 다이어는 18일 CNN에 “그린 의원은 아무 것도 출범시키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면서 “문건은 초기 제안으로서 아무 것도 동의되거나 승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린 의원이 문건의 표현들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린 의원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해당 문건이 실무진 차원의 제안서로서 자신은 읽어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린 의원은 언론이 거짓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면서 인종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미국인들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린 의원의 극우적이고 음모론을 지지하는 행태는 논란을 양산해 왔다. 조지아주 14구가 지역구인 그린 의원은 지난해 8월 공화당 당내 경선에서 경쟁자를 따돌리고 본선에 진출할 당시부터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흑인과 유대인, 무슬림을 공격하는 혐오 발언을 서슴치 않고, 미 연방수사국(FBI)이 ‘국내 테러리즘’ 위협을 제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 큐어논 음모론을 공개 지지한 이력 때문이었다. 중도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은 극우 성향의 그린 의원이 당선되면 공화당이 극우집단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그의 출마를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를 ‘미래의 공화당 스타’라고 치켜세웠다.
· [김재중의 워싱턴 리포트]혐오발언 일삼는 극우 후보를 어이할꼬?…미 공화당의 고민
그린 의원은 지난 1월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 진출한 뒤로도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근거 없는 선거부정 주장에 적극 동조했고, 바이든 대통령 취임 바로 다음날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특히 그린 의원이 큐어논을 지지한 것에 더해 9·11테러, 고교 총격 사건 등 미국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사건들에 대해 음모론을 펼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가중시켰다. 9·11테러 당시 국방부 청사를 공격한 것은 납치된 민간 여객기가 아니라 미사일 같은 발사체였고,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교 총격 사건은 총기 규제론자들이 일으킨 자작극이라는 취지의 주장에 동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린 의원은 예산위원회와 교육·노동위원회에 배정됐는데 민주당은 극우 음모론을 일삼는 그린 의원을 예산과 교육 등 중요한 정책을 다루는 상임위에 참여시켜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린 의원을 해당 상임위에서 배제시키라는 요구를 공화당 지도부가 수용하지 않자 민주당은 그를 상임위에서 배제시키는 방안을 표결에 부쳐 관철시켰다. 공화당 의원 11명도 그린 의원의 상임위 활동 배제에 동조했으며,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그를 ‘공화당의 암’이라고 비난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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