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죽어야 국제사회가 움직일 것인가
“미얀마는 전쟁터가 아니다. 전쟁은 적어도 양쪽이 무기를 갖고 싸울 때 가능한 것이다. 맨몸으로 군경과 맞서는 상황을 어떻게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겠나?”
미얀마 반쿠데타 시위에 참여 중인 메코 마웅 씨의 이야기다. 그가 시위에 나간 지 두 달이 지났다. 4월6일까지 570명이 사망했고 2700여 명이 체포되었다(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 자료). 3월 초 SNS에서는 ‘얼마나 더 죽어야 유엔이 움직일 것인가?’라는 해시태그가 올라왔으나 이제 미얀마에서는 ‘우리끼리 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위자는 “왜 어떤 나라도 이 사태에 개입하지 않는가? 우리도 늘 묻는 주제다. 답은 간단하다. 미얀마를 위해 무언가를 해서 얻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3월27일 미얀마 국군의날 하루에만 114명이 사망했다. 미얀마에서는 ‘대학살의 날’로 불린다. 3월3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되었지만 실효성 있는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안보리 회원국들은 평화적 시위대를 겨냥한 폭력과 여성,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수백 명의 죽음을 강력히 규탄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뿐이었다. 앞서 3월10일 군부의 폭력적 진압에 “극도의 자제를 촉구한다”라는 의장 성명, 2월4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구금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라는 입장에서도 달라진 게 없다. 두 달간 악화일로인 미얀마 사태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국제사회가 개입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미얀마 항쟁은 2단계로 접어들었다. 시민들이 주도한 시민불복종운동(CDM)이 1단계였다면 이제 정치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4월1일 민주 진영의 임시정부 격인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가 2008년 군부가 제정한 헌법을 폐기하고 ‘연방민주주의헌장(Federal Democracy Charter)’을 선포했다.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소수민족들과 함께 민주주의연방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미얀마의 젊은 세대들은 이제 “누가 공공의 적인지 알게 되었다”라며 로힝야족 학살 때 침묵했던 것을 반성한다. 카렌족, 카친족, 아라칸, 샨족 등 무장병력을 보유한 소수민족들이 새 정부에 참여 의사를 속속 밝히고 있다. 이들을 구성원으로 CRPH의 ‘연방군’이 창설되면 군부와의 내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미얀마의 시민 저항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앞서 〈시사IN〉은 개인이 미얀마의 민주화 항쟁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살펴봤다(〈시사IN〉 제706호 ‘미얀마를 돕는 세 가지 방법’ 기사 참조). 한 독자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에 직접 송금하고 싶다며 메일을 보냈다. “장기전으로 가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죠.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요.” 한국 시민들의 행동은 연대 기금부터 온라인 인증샷, 해시태그 운동 등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본격적 개입은 또 다른 문제다. 지난 2월1일의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이후 진행된 민간인 학살에 대해 국제사회는 말잔치와 군부에 큰 타격을 주기 힘든 경제제재 말고는 한 일이 없다. 국제사회는 왜 미얀마 사태에 선뜻 움직이지 못할까.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전문가들에게 미얀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물었다. 개별 국가와 국제사회를 압박하기 위해 시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짚어봤다.
서방 연합군의 개입, R2P
“미얀마 군부는 30년 넘게 자급자족해왔는데 해외에서 규탄 성명 몇 개 발표한다고 얼마나 충격을 받겠나.” 미얀마 전문가인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는 유엔의 ‘구두 경고’나 서방국가의 경제제재가 군부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이 미얀마와 교역을 중단하고, 쿠데타에 연루된 기업과 인사를 제재했지만 군부를 막는 실질적인 조치가 되지는 못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시위 초기부터 ‘R2P (보호책임 원칙:Responsibility to Protect)’를 요구했다. R2P란 한 국가가 집단학살·전쟁범죄·인종청소·반인륜 범죄 등 4대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경우,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이다.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에 대한 서방 연합군의 무력 개입이 이 원칙에 근거했다. 꼭 군사적 개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엔 헌장은 개별 국가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엔 국제 공동체가 외교·정치·인도적 수단 등으로 민간인을 보호할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전문가들 대다수가 미얀마에 대한 R2P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군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안전보장이사회는 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결의안을 채택할 수 있다. 그러나 미얀마 사태로 소집된 세 차례 안보리에서 중국은 오히려 ‘쿠데타’ ‘군부에 대한 추가 조치’ 같은 표현을 삭제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CRPH를 정식 정부로 인정해달라는 미얀마 시민들의 요구도 유엔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4월2일 “미얀마의 정치적 화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야지 함부로 참견하거나 압박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틀 뒤인 4월4일 양곤에서 시위대는 중국이 유엔의 입을 막고 있는 형상의 가면을 쓰고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했다.
중국은 미얀마 사태에 대해 ‘내정불간섭’ 원칙을 고수한다. 이면에는 미얀마의 지정학적 위치와 미·중 관계가 놓여 있다. 동남아시아 전문가인 이재현 박사(아산정책연구원)는 “중국은 적대적인 세력이 국경 근처까지 오는 걸 허락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0년 미얀마에 2차 군부 정권이 들어서자 서방국가는 미얀마 군부에 이번처럼 경제제재를 가하며 압박했다. 1962년 쿠데타 이래 ‘버마식 사회주의’라는 고립 노선을 택한 미얀마는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태였다. 중국으로선 서방 측의 미얀마 개입을 막는 것이 자국에 유리한 전략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미얀마라는 큰 완충지대를 갖게 된 것이다. 그 뒤로 중국은 더 커졌고, ‘국경 보호’라는 지정학적 이득 때문에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미얀마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이재현 박사).” 전문가들은 최대 경제협력국인 중국이 미얀마에 대해 경제제재를 하면 어떤 조치보다 군부에 심리적·물리적으로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봤다. 중국은 미얀마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가 반인륜적 범죄 앞에서 유명무실했던 건 이번만이 아니다. 로힝야족 학살 보고서를 만든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김기남 변호사는 로힝야족 집단학살 때도 국제사회의 개입이 없었다고 말했다. “학살을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육군총사령관(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이다)을 처벌하려면 유엔 안보리가 이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방법이 유일했는데 그때도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표를 던졌다.”
안보리가 거부권에 막혀 있을 때 유엔 사무총장이 긴급 총회를 요청하거나 유엔 특사를 파견하는 등 우회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꼭 군사개입이 아니더라도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검토해서 중국과 러시아의 ‘소극적인 참여’라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양희 전 유엔 미얀마인권특별보고관(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은 “유엔 사무총장이 가지고 있는 툴 박스(도구상자)가 있는데 꽁꽁 잠겨 있다. 내년 사무총장 선거에서 재임을 바라보고 있어 상당히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6일 유엔 로힝야 사태 진상조사단원 두 명과 함께 미얀마 특별자문위원회(SAC-M)를 발족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진상조사단을 미얀마에 파견해야 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젊은 세대가 위축되지 않고 두 달 동안이나 시민 저항운동을 이끌어간다. 군부의 예상을 초월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군사력에도 상당한 하중이 걸리고 있을 텐데 그럴수록 강한 진압을 시도할 수 있다. 내전이 발생하기 전에 유엔이 중재해야 한다.”
3월31일 크리스티네 슈라너 부르게너 유엔 미얀마 특사도 내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피바다가 임박했다. 더 이상의 만행을 막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세계는 훨씬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세 번째 규탄 성명이 나온 날이었다.
아세안, 기존 원칙 깨고 협조해야
미얀마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 방글라데시·타이·중국·말레이시아·라오스·인도 등 인접 국가만 여섯이다. 그러나 이 나라들이 정부 차원에서 미얀마 시위를 지지하거나 군부를 규탄하는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3월27일 미얀마 국군의날 열병식에는 러시아·중국·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베트남·라오스·타이 등 8개국이 외교사절단을 보냈다.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시민들은 주변국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셈이다.
인접 국가들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 최근에 생겼다. 3월27일 미얀마 군부가 카렌주 지역에 공습을 가한 후 1만명 넘는 카렌족 난민이 발생했다. 타이와 인도는 이들의 입국에 난색을 표했다. 쁘라윳 짠오차 타이 총리는 “미얀마 국내 문제로 놔두라”라고 말했다. 타이 시민단체 피플임파워먼트재단(PEF) 활동가 샬리다 씨는 4월 초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위해 카렌족 난민들이 집결한 접경지대의 타이 마을인 매홍손과 매사리앵을 방문했다. “타이 정부에게 난민 캠프를 차릴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으나 동의를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돈과 음식, 안전이 부족하다.” 접경지역의 타이 영토로 피난한 카렌족은 모두 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샬리다 씨는 한국 정부를 포함한 각 국가들이 타이 정부를 설득하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인 아세안(ASEAN)은 미얀마가 가입한 유일한 지역 기구다. 그러나 핵심 원칙인 ‘내정불간섭’ 탓에 인권 보호를 위한 지역 차원의 협력이 가로막혔다. 60년간 이어진 내전과 로힝야족 집단학살 때도 아세안이 별다른 대응을 못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김형종 위원장(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은 “타이·필리핀·캄보디아·라오스와 베트남 등이 독재정권이거나 권위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미얀마 군부 제재에 앞장서기 어렵다. 시민사회가 활성화된 인도는 국내 여론이 악화되니까 결국 비판 성명을 냈다.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려운 타이·캄보디아·베트남이 아세안 내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 나라 정부들을 압박할 만한 운동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4월5일 아세안 의장국인 브루나이가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아세안 정상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얀마 군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아세안 내에서도 커진 결과다. 장준영 교수는 미얀마 사태가 아시아 민주주의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내정불간섭, 만장일치제 같은 아세안의 운영 원칙에 대해 다시 합의해볼 기회가 열렸다.” 미얀마의 시민이 승리하면 홍콩·타이·캄보디아까지 도미노처럼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대로 군부가 승리하면 아시아 내 민주주의에 ‘백래시’가 밀어닥칠 수 있다. 미얀마를 위해서는 아세안의 협조와 개입을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 유엔이 이전과는 다른 부담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군부 제재
한국 정부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전문가 대다수가 아세안과 전략적 협력관계에 있는 한국이 미얀마 군부 제재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3월12일 한국 정부는 첫 독자 제재에 나섰다. 국방·치안 분야의 교류를 중단하고, 최루탄 등 군용물자의 미얀마 수출을 금지했다. 인도적 목적의 사업을 제외하고 공적 개발협력사업(ODA) 전반을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비개입을 고수하던 과거와 달리 적극적인 외교 행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군부의 자금줄 의혹을 받는 한국 기업의 철수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미진하다. 미얀마 시민단체 ‘저스티스 포 미얀마(Justice For Myanmar)’와 국내 시민사회 단체는 미얀마 군부 카르텔 지도를 공개하며 포스코를 군부 협력기업으로 지목했다. 포스코의 자회사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가 미얀마 국영석유가스회사(MOGE)와 함께 슈웨 가스전 개발사업을 벌였다. 또 다른 자회사 포스코강판(포스코C&C)은 미얀마 군부 소유 기업인 미얀마경제홀딩스(MEHL)와 합작회사를 세워 군부에 간접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3월5일 CRPH는 포스코 최정우 회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석유와 가스전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익금이 군부의 폭정을 지속시키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주 정부가 재개할 수 있을 때까지 판매 대금 결제를 중단하고 사업을 중단해달라.”
포스코는 가스전이 민선 정부 시절에도 추진해온 사업이며 수익은 국책은행에 입금되기 때문에 군부와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포스코강판은 MEHL과 사업관계를 정리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기업 철수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권위주의 혹은 독재정권과 합작사업을 하면 안 된다’ 같은 국제규범이 확립되어 있지도 않다. 현지 교민들의 생계도 걸려 있다. 즉, 기업 처지에서는 합작 상대방이 독재정권이라고 해서 반드시 투자 자본을 철수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당 정권이 민간인 학살 같은 국제법적으로 처벌 가능성이 있는 비인도적 만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좀 다른 상황으로 봐야 한다. 이양희 특별보고관은 “한국 기업들은 2017년 로힝야 학살 사태 당시에도 계속 미얀마에서 영업활동을 펼쳤다. 지금은 쿠데타가 일어났다. 군부에게 수익을 줄 수 없다는 의견을 표명하거나 실사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로힝야 사건 때부터 군부를 추적해온 김기남 변호사는 포스코의 대주주인 국민연금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들어가 있는 기업들이 미얀마에서 군부와 결탁하거나 군부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면, 한국 시민들 역시 미얀마 상황에 대해 직간접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은 포스코와 미얀마 군부의 관계 단절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4월까지 진행해 포스코 본사에 직접 전달한다. 보이콧 운동과 비슷하다. 김형종 위원장은 미얀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유엔보다 중요한 것은 여론이라고 말했다. “투자를 철회하지 않으면 기업의 생존이 어렵겠다는 자각이 들 정도로 여론이 형성되고,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는 게 필요하다. 국민 공감대가 모여야 개별 국가와 국제사회가 움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유엔이 움직이지 않고 국가가 내정불간섭 원칙을 내세울 때, 고립된 미얀마 시민들을 범지구적 차원의 이슈로 만드는 건 국제 여론이다. 그 공감대를 이어가는 것은 시민들의 ‘작은 힘’이라는 것을 미얀마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https://myanmar.sisain.co.kr/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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