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공시가 '무신불립' 비극

박정민 기자 2021. 4. 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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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사이에 공시가격 상승률은 두 자릿수 넘게 뛰어올랐고, 오른 만큼 세금을 내야 할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무능한 정부 탓에 세금 오른 것도 화가 나지만, 더 큰 문제는 왜 공시가격이 이렇게 올랐는지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비밀유지 각서까지 받아가며 공시가격 산정 실무자들의 입을 막은 정부가 도대체 어떻게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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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경제부 차장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사이에 공시가격 상승률은 두 자릿수 넘게 뛰어올랐고, 오른 만큼 세금을 내야 할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법투기 의혹이나 정부·여당 인사들의 ‘내로남불’ 식 전셋값 인상 행태에 속이 쓰린 국민은 또다시 세금 폭탄에 속이 문드러질 상황이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노래 부르지만, 정책이 단 한 번도 제대로 효과를 나타낸 적이 없다. 오히려 시장 안정보다는 집값을 계속 뛰게 만들어 세수를 확보하려는 게 본래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결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불신’이란 단어로 압축된다. 공시가격 현실화도 마찬가지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뛰어오른 시세에 대해 정부는 집주인에게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공시가격을 대폭 인상시켰다. 공시가격은 과세 기준이다. ‘공정 과세’가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해 1주택 서민들은 때아닌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 실패한 정책의 대가를 국민이 치르는 셈이다.

무능한 정부 탓에 세금 오른 것도 화가 나지만, 더 큰 문제는 왜 공시가격이 이렇게 올랐는지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깜깜이’ 공시가격 산정 역시 정부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고 있다. 지난해 실거래가격이 12억6000만 원이었던 서울 서초동 소재 한 아파트의 올해 공시가격은 15억3800만 원으로 나왔다. 현실화율이 122%로, 공시가격이 시세를 역전한 사례다. 어떻게 이런 액수가 나왔냐는 질문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다 말해주기 어렵다”며 이해 못 할 변명만 늘어놨다. 국토부는 또 “한국부동산원 조사원들이 일일이 아파트를 전수조사해 객관적으로 도출한 산정액”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조사원 1인당 맡은 아파트는 무려 2만6956가구로, 144일(휴일 제외할 경우 97일가량) 동안 이를 일일이 다 확인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위치, 층수, 방향, 조망권, 소음 여부를 하나하나 따져 조사했다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조사 과정이 어땠는지, 조사에 대한 심사는 어떻게 했는지 일절 말하지 않는다. 비밀유지 각서까지 받아가며 공시가격 산정 실무자들의 입을 막은 정부가 도대체 어떻게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공시가격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세금을 더 걷는 행위는 사실 ‘세금은 법률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를 거스른다. 혈세를 걷는 기준을 마구잡이로 올리면서 이 같은 기준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려줄 수 없다고 버티는 정부를 국민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처럼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정부는 존재하기 어렵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국민에게 세금 폭탄으로 떠넘기다가 무너진 왕조·정권은 역사 속에 부지기수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내로남불 행태에 대해 유권자는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통해 ‘1차 경고’를 보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책 기조를 유지한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은 정부의 정책에 국민은 더욱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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