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다리' 대기업집단 동일인 지정에..쿠팡 발목잡히나
재계 "자의적 해석..규제강화 우려"
전문가 "60여개 법제 걸린 민감사안..
50여년 된 제도 손보는 계기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될지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의장이 미국 국적인 점을 고려해 쿠팡은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될 가능성이 커졌으나 외국인에게 특혜를 준다며 형평성을 두고 정치권·시민단체의 반발이 잇따르자 공정위는 신중 모드에 돌입했다.
공정위는 오는 30일 쿠팡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쿠팡의 지난해 자산은 50억6733만달러(약 5조7000억원)로, 공시 대상 기업집단 기준인 자산 5조원을 넘어섰다. 쿠팡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수순이지만 문제는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느냐다.
쿠팡의 실질적 오너는 창업자인 김 의장이다. 공정위는 지배력을 행사하는지를 기준으로 동일인을 결정한다. 단순 지분으로만 보면 김 의장은 10.2%를 보유한 3대 주주지만 차등의결권을 가진 ‘클래스B’ 주식을 단독으로 가지고 있어 의결권은 76.6%에 달한다. 만약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과 배우자가 공시 의무 대상이 된다.
지금까지 외국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사례는 없는 만큼 애초 미국 국적인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총수 없는 대기업에 지정된 9개 기업의 미지정 사유를 보면, 한국GM과 에쓰-오일이 쿠팡과 비슷하게 ‘외국법인 지배’ 이유였다.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자회사(A.O.C)가 최대주주이지만 동일인은 에쓰-오일㈜, 한국지엠도 최대주주는 미 제너럴모터스(GM)이지만 동일인은 한국지엠㈜이다.
그러나 쿠팡이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외국인에 대해 특혜를 준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측은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법적 근거라도 있느냐”고 반발했다. 사익 편취 여부를 둘러싸고도 입장이 갈린다. 동일인 제도는 친족경영, 순환출자 등으로 얽힌 한국식 재벌 규제에 맞춘 제도로, 최근 성장한 IT기업에는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시민단체는 사익 편취를 막기 위해 쿠팡의 총수 지정이 강력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총수 없는 기업집단이더라도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에 따른 부당 지원행위 금지 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총수 없는 기업집단이 그렇지 않은 기업집단에 비해 특혜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
재계에서는 무엇보다 동일인 제도 자체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규제 강화를 우려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은 직·간접 지분율, 경영활동 및 임원 선임 등 ‘사실상 지배 여부’를 고려해 공정위가 지정한다. 재계 관계자는 “법령 등에 명확한 기준이 없고, 공정위가 자의적으로 동일인을 지정하기 때문에 기업으로는 불확실성 요소”라며 “쿠팡도 앞선 다른 외국기업처럼 처리하면 되는데, 공정위가 정무적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의장이 다른 외국 기업 사례와 달리, 동일인으로 지정돼 각종 추가 규제를 받게 되면 한·미 FTA 최혜국 대우 조항을 근거로 쿠팡이 반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경쟁법학회장)는 “동일인 문제는 세법 등 60여개 법제가 걸린 국가적으로 민감하고 큰 문제”라며 “정답이 없기 때문에 공정위도 고민이 되겠지만 이번 쿠팡 사례는 1970~80년대에 맞춘 동일인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다만 외국인이라 안 된다고 하면, 향후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일단 동일인 지정을 한 뒤 가능한 것들은 적용하고 현실적으로 유예할 것들은 해주는 후속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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