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면과 철조망 ④] "북한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왔습니다"
(시사저널=박유성 탈북 유튜버·영화감독)
(정리=오종탁 기자)
분단 후 76년이 흘렀다. 한 사람이 태어나 노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앞서 숱한 위기 혹은 기회를 지났지만, 한반도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일각에선 "이제 변화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통일에 더 이상 목맬 필요 없다"는 회의론까지 제기한다. 정말 그럴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권력구조가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사이 북한 사람들은 참 많이 변했다. 시장 원리를 체득한 가운데 체제에 불만을 느끼는 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각성에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남한으로부터 전해진 소식, 문화 등도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증언해 주고 있는 탈북민들은 "남한이 변하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코 통일불가론을 주장할 만큼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남한에 정착한 뒤 남북 간 가교 역할에 앞장서온 탈북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2021년 현재 북한 사람들의 삶과 문화, 추구하는 가치 등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북한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온 남자.' 주변에 저를 소개할 때 쓰는 수식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북한과 북한 주민, 탈북민 등에 대한 이미지는 어둡고 무겁습니다. 3만5000여 명에 이르는 탈북민 중 상당수가 남한 사회에 완연히 섞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특히 저처럼 젊은 탈북민은 남한에 정착해 더욱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가치관이 장년층 이상보다 빨리 바뀌는데도, 남한에서 나고 자란 또래와의 거리감은 없어지지 않거든요.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남한에서 보내야 하기에 막막할 따름이죠. 현실을 극복하기 쉽지 않겠지만 저라도 다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요. 이웃이나 친구들과 편안하고 재미있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부정적 시선에 탈북 사실 숨기는 학생들
사실 저도 청소년기였던 2008년 남한 사회로 넘어와 한동안 탈북민이란 사실을 숨기고 지냈습니다. 북한 사람도 북한 정권처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두려웠어요.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탈북민들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어요. 북한 정권과 탈북민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주변의 많은 탈북민 학생이 고통받는 걸 지켜보며 '탈북 사실을 무조건 숨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1년 대학(동국대 영화영상학과)에 입학했을 때가 기억나네요. 당연히 동기, 선후배 등 어느 누구에게도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과사무실에서 학생증 수령 확인 서명을 하려고 보니 제 이름 옆에 '북한이탈주민특별전형'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이미 서명한 동기들은 내가 탈북민인 걸 알았겠구나' '이제 평범한 대학 생활은 물 건너간 건가' 등 별생각이 다 들더군요. 일단 펜으로 북한이탈주민특별전형 글자를 빡빡 지운 뒤 먼저 서명하고 간 동기들을 찾아갔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죠. 3학년쯤 돼서야 북한에서 왔다고 조심스레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제가 탈북민인 걸 몰랐던 학과 선배가 어느 날 "뭐야, 북한 공작원처럼 입고 왔네. 간첩이야?"라고 농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순간 기분이 나빠서 "간첩은 아니고 북한에서 온 건 맞아요"라고 쏘아붙였죠. 제가 북한 출신인 걸 전혀 몰랐던 선배는 당황했어요. 기강이 엄격한 학과여서 자칫 큰 갈등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다행히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며 오해가 풀렸고, 그 선배와는 돈독해졌습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해 그때 일을 떠올리며 웃음 지어요.
수세적이고 예민했던 제가 바뀌어간 계기는 이런 소통이었습니다. 많은 남한 사람, 특히 또래 세대와 적극적으로 만나고 대화했어요. 질문을 받으면 이전처럼 숨기기보다 가감 없이 대답하려 노력했습니다. 자연스레 자존감과 자신감이 생겼고,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하는 자기검열에서 벗어났어요. 마음속에서 계속 커가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밖으로 꺼내 터뜨리면 콩알만큼 작아져요. 아니, 다 증발해 버립니다. 저의 경험을 탈북민 후배들에게 기회 닿을 때마다 전하고 있습니다.
"숨기지 않고 터놓으니 두려움 사라졌다"
2017년에는 저의 탈북을 소재로 한 영화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까지 발표했어요. 남북 청년 문화교류 기행에서 친해진 탈북민 친구 1명, 남한 출신 친구 2명과 의기투합해 만든 다큐멘터리입니다. 14박15일간 친구들과 북·중 접경지와 중국 내륙, 메콩강을 거쳐 태국으로 향하며 촬영했죠. 저와 어머니가 밟았던 탈북 루트 그대로입니다. 일반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까다롭고 고된 여정이었어요. 북한 사람들이 생사를 걸고 탈출하는 이유와 그 과정을 생생하게 알리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달려 나갔습니다.
앞서 남한에서 사람들에게 탈북 과정을 이야기하면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죽을 고비를 넘겼겠지'라며 동정하거나 아예 믿지 않고 허풍으로 여기기도 하죠. 백문이 불여일견, 영화를 통해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이가 영화를 봐 줬고 제52회 휴스턴국제영화제 브론즈 어워드 수상, 제7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 등 성과도 냈습니다. 사람이 막다른 상황에 몰리면 무모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고 탈출할 수 있다는, 탈북의 본질이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아 뿌듯했어요.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탈북민 스스로도 기억을 왜곡하며 산다는 점입니다.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에서 나와 두만강을 넘고 중국 옌지로 갔을 때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다 신기했습니다. 폐쇄적인 곳에 갇혀 살다가 처음 자유의 땅을 밟아서입니다. 당장 나가서 아무 사람이나 붙들고 말을 걸고 싶고 길거리 음식도 사먹고 싶었으나, 탈출 성공을 위해선 참아야 했어요.
옌지에서 베이징으로, 쿤밍으로, 태국으로, 목적지인 대한민국으로 가기까지 함께한 탈북민들과 숱한 위협에 직면했어요. 중국 공안이나 라오스·미얀마 국경수비대 등에 잡히면 곧장 북한행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떠나왔는데, 절대로 돌아갈 수 없었죠. '조금만 더' 하면서 한국행의 희망을 부여잡았습니다. 불안함과 설렘이 극단적으로 맞부딪치는 현장이었죠. 이때 탈북 브로커들은 탈북민들의 심리 상태를 교묘하게 이용해 정해진 비용 외의 추가금을 벌어들였습니다.
브로커들, '악어' 공포 이용해 돈 착취
예를 들면 메콩강을 건너던 당시 브로커들이 '물속에 악어가 산다'고 하더라고요. 수많은 메콩강 지류를 지나며 매번 같은 말을 했어요. 그러다 '악어가 피 냄새를 맡고 올 수 있으니 생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수하라'고 협박하는 등 갖은 이유를 대며 돈을 뜯어냈습니다. 가냘픈 쪽배를 타고 물살이 센 메콩강을 지나는 동안 탈북민들의 공포심과 오해는 계속 커졌어요. 실제로 악어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영화 촬영을 위해 메콩강에 갔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메콩강에는 애초에 악어가 살지 않았고, 살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어요. 친구들에게 "악어가 100% 있다. 똑똑히 봤다"며 호언장담했던 저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곰곰이 회상해 보니 실체 없는 공포로 조작된 기억임을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큰 울림을 느꼈어요. 탈북에 대한 오해와 편견, 북한 체제와 자유 세상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공포심 등이 바로 '메콩강 악어'인 거예요. 그 악어는 메콩강이 아닌 우리네 맘속에 헤엄치며 삽니다. 불신과 견제, 갈등을 먹으며 점점 더 자라나고 있어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겹쳐서 보는 것만큼은 꼭 없어져야 할 악어라고 생각합니다. 탈북 직후부터 남한에 나름대로 적응한 지금까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현실이에요. 북한 정권이 국제사회를 향해 도발을 감행하면 제 유튜브 영상에 댓글로 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극혐(극도로 혐오)'이라는 비난을 받고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체제가 좋아서 따르는 게 결코 아닙니다. 태어나 보니 북한이었고, 어쩔 수 없이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요. 북한 정권의 결정과 아무런 관계없는 선량한 북한 주민과 탈북민을 따뜻하게 바라봐주시면 좋겠어요.
'말랑말랑'한 소재로 구독자 사로잡는 2030 탈북민
"남자~ 남자~ 북한 남자~ 좋아요와 구독 반갑소~."
박유성씨(31)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북한남자'에 들어가면 나오는 로고송이다. 날개를 단 박씨가 춤추고 노래하며 '좋아요'와 '구독'을 부탁한다.
정치, 군사 등 딱딱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씨는 "연애, 음식, 술 문화 등 북한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다뤄보면 재미있겠다 싶더라"며 "워낙 '센' 이야기를 하는 탈북 유튜버가 많아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젊은 층이 공감할 만한 '말랑말랑'한 콘텐츠 위주로 다루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북한남자세끼'(먹방), 'BUK대면데이트'(패러디) 등의 코너도 도입했다. 톡톡 튀는 박씨의 모습에 많은 구독자가 호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구독자가 12만6000명을 넘어섰다. '의외로 남한보다 북한이 좋은 점 톱5' '북한에서 배웠던 남한과 탈북 후 보게 된 남한의 엄청난 차이점' 등 영상은 조회 수 100만여 회를 기록했다.
유튜브 세상에선 박씨처럼 북한 관련 소재를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2030세대 탈북민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탈북민 강나라씨(25·'놀새나라TV')와 허준씨(30·'허준'), 강은정씨(35·'강은정 텔레비죤') 등은 개성 넘치는 시각·표현으로 북한 이슈를 다뤄 각각 28만여 명, 25만여 명, 10만여 명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이들은 북한에 머무를 당시부터 남한의 문화나 유행을 거의 실시간으로 즐겼다. 이전 세대보다 남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빠를 수밖에 없다. 남한 드라마·영화·음악 등은 중국에서 이동식 메모리 저장장치(USB)에 담겨 속속 북한으로 전달된다. 드라마의 경우 본방송 2주 정도 후면 볼 수 있었다고 탈북민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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