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EYE] 억대 연봉 100만 명, 지금은 '승자독식' 시대
울산시 인구만큼의 억대 연봉자
전체 근로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 2015년 전체 근로자의 3.4%에서 2019년에는 4.4%로 올랐다. 올해 기준으론 100명 중 5명이 억대 연봉 근로자가 될 듯하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가 뇌리에 각인된 일반 국민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테지만, 실제로 그렇게 늘고 있다.
억대 연봉 느는 동안, 대구시 인구만큼 양질 일자리 사라져
고용이 18만 명 늘었으니 잘한 거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실을 살펴보면 대략 200만 개의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에서 '나쁜 일자리'로 대체됐다. 억대 연봉자가 울산시 인구만큼 생기는 동안, 역설적으로 대구시 인구만큼의 열악한 일자리가 양산된 것이다.
생존자·승자 10%의 독식, 선한 정책의 악한 결과
소득주도성장이 기대했던 이상적인 목표는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 전반의 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촉진하면, 이로 인해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세수가 늘어 고용 증가와 복지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었을 테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겨난 '저녁이 있는 삶'을, 소득이 늘어난 많은 국민이 여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면, 말 그대로 '행복국가'가 생겨날 법하다.
현실은 안타깝게도 반대로 갔다. 급속한 임금 인상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면서 좋은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살아남은 10%의 기득권 근로자들은 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의 동시 수혜를 받아 저녁이 있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반면, 90%의 열악한 일자리 근로자들은 해고 위협에다 초과근무 감소로 소득까지 정체되거나 줄어서 저녁의 여유시간을 즐길 돈이 없다.
결과적으로 노동 친화적인 정책이 '소득양극화 심화'라는 노동 적대적 결과를 초래한 이유는 인간의 이기심이 작용하는 냉혹한 현실을 가벼이 보고 이상론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선한 이상에 가려진 냉혹한 현실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당장 한 푼을 아끼는 게 생존의 조건인 마당에, 임금을 높이고 근로시간을 줄이면 정부 주장대로 장기적으로 소비가 늘어 매출이 증가할 거라며,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착한 기업이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집값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기에, 두 다리 편하게 뻗고 누울 곳만 있으면 만족한다며, 자산증식의 꿈을 접고 국가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에 평생 기꺼이 살아가며 행복해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입지 조건이 안 맞고 효율이 떨어진다지만, 위험한 원자력 발전소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에 태양열, 풍력, 조력 발전소를 많이 지으라며, 두 세 배 비싼 전기요금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될까.
내 자식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바람직하다며 특목고 대신 일반고를 보내는 부모들이 얼마나 될까. 청문회 때마다 평준화 교육을 지지한다는 지도층 자녀의 특목고 진입을 위한 위장전입은 왜 그리도 많을까.
이기심을 인정하는 '보상제도'가 실효성 있는 정책
당국자들이 만약 정책 부작용이 순기능보다 많았다는 걸 몰랐다면 그것은 무능한 정부라는 증거이며, 알면서도 그랬다면 그것은 선동적 포퓰리즘이다.
명분과 실속이 다 좋은 정책이라면 여느 정권이 마다했겠는가. 선한 허울의 이면에 현실성의 결여와 부작용이 도사린 걸 알았기에 섣불리 하지 않았을 터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글로벌 주요 20개국 중 두 번째로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택, 원전, 금융정책, 소비진작 쿠폰 등이 대표적인 불안 요인으로 꼽혔다. 이는 현실을 도외시한 이념 지향적 정책에 대한 냉혹한 평가다.
인간이 알아서 선하게 행동할 거라는 믿음은 치기어린 낙관론이며, 경험적 실패 사례가 역사에 가득 쌓여 있다. 선한 의도로 포장된 비현실적 정책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속으로는 따르기 싫은데 겉으로는 반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반발과 저항에 부딪히고 시스템적으로 실패의 경로에 접어들게 된다. 좋은 정책은 적절한 보상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기업이 고용을 많이 하면 각종 부담금을 깎아준다든지, 건물주가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면 세금 감면을 해주는 것 등이 그 예이다. 부자 동네에 대한 특혜 논란을 피하려고 아예 재건축을 막기보다는 여러 경로로 이익을 환수하며 재건축을 허용해야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 누군가 지금도 하고 있다고 반발할지 모른다. 하지만 예상되는 보상에 비해 치러야 할 대가를 너무 징벌적으로 가혹하게 책정하다 보니 실제로는 작동이 안 된다. 보상과 규제가 상식적으로 조화를 이룬 정책의 기술이 너무나 아쉽다.
(사진=연합뉴스)
고철종(논설위원) 기자sbskc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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