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는 이순신과 왜구의 역사박물관"
연대봉 아래에 활주로가, 외양포엔 터미널이
“5월8일, 기운을 북돋우고 마음으로 힘을 합해 곧 천성, 가덕, 부산 등지로 향해 적의 배를 무찌르고자 생각했다. 그러나 왜선이 정박하고 있는 곳들은 지세가 (바닷물이) 좁고 얕아서 판옥선과 같은 큰 배가 싸우기에는 매우 어렵다.” (이순신, 1592년 5월10일 옥포 전투 보고서)
가덕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특히 가덕도 역사에는 군사와 전쟁, 이순신, 왜구(일본 해적), 일제의 자취가 깊이 배어 있다. 그러나 가덕도 신공항이 지어진다면 역사 유적은 상당 부분 파괴될 것으로 보인다. 신공항 건설로 훼손될 대표적 역사 유적은 △고려 때 설치된 연대봉 봉화대, △조선의 군사기지 천성진성, △일제의 군사시설 외양포의 포진지와 일본군 마을, △대항마을과 새바지의 일본군 인공동굴 등이다.
국내 최대급 신석기 무덤과 거주지
가덕도의 인류 역사는 신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부산신항이 들어선 장항마을에선 유골 48구와 움집터 150곳이 나왔다.(위 지도의 ❶) 신석기 무덤과 거주지로는 국내 최대급이다. 신공항이 들어서는 외양포에서도 조개무지가 나왔다.❷ 천성동 두문마을엔 부산에서 유일한 고인돌이 있고,❸ 성북동에선 가야 무덤과 목항아리가 다수 발견됐다.❹ 천성동과 성북동은 가덕도 북쪽 지역으로, 부산신항과 가덕도 신공항 주변 개발 예정지다.
<한겨레21>과 함께 4월8~9일 가덕도 역사 유적을 둘러본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가덕도는 부산과 진해, 대마도(쓰시마섬)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고, 바다 물산이 풍부하다. 작은 섬이지만 신석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가 다양하게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가덕도는 왜구에 맞선 군사시설로 역사에 등장했다. 1302년 <고려사>를 보면, 충렬왕은 원나라에 “군관들과 군인들을 합포(마산), 가덕, 동래(부산), 울주(울산), 죽림(고성), 거제, 각산(사천), 내례량(순천), 탐라(제주) 등지에 배치했다. 봉수대를 설치하고 배와 군사들을 비밀리에 갖춰 오로지 왜적을 방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❺
가덕도에 봉화대를 설치한 이유는, 원과 고려의 일본 정벌 실패 이후 왜구가 급성장해 고려와 중국의 해안 주민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봉화대는 현재의 연대봉과 매봉에 설치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봉 바로 옆으로 신공항 활주로가 들어선다. 부산시는 활주로 남쪽 국수봉만 깎는다고 밝혔으나, 국제공항 규모를 고려하면 결국 연대봉도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16세기 가덕도는 왜구의 소굴로 전락해 조선의 골치를 썩였다. 1508년 왜구는 가덕도에서 불법무역을 하다 조선인 9명을 살해하는 가덕도왜변을 일으켰다. 1510년 삼포왜란 때는 왜구가 가덕도를 군사기지로 활용했다. 1512년 조선-왜구의 임신조약에선 ‘대마도주가 보내지 않았는데, 가덕도 근처에 정박하는 배는 모두 왜적으로 여긴다’는 조항이 들어갈 정도였다.
매립되는 외양포에는 일본군 포진지가
결국 1544년 사량진왜변이 일어나자 조선은 왜구의 소굴이던 가덕도 동북쪽에 가덕진,❻ 서쪽에 천성진을 설치하고 군사를 배치했다.❼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은 가덕도에 8차례 이상 출전해 왜군과 싸웠다. 그러나 결국 가덕도는 왜군에 넘어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점령됐다. 이때의 유적이 가덕도 북쪽 눌차왜성이다.❽
애초 천성진성은 둘레가 848m였으나 현재 3분의 2 정도 남아 있다.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에 다시 동쪽으로 작은 직사각형이 덧붙여진 구조로 돼 있다. 성 안에는 본관(아사)과 숙소(객사), 무기고, 창고 등 11개 건물이 있었다. 여기엔 장병 220명과 거북선(전투선) 1척, 병선 1척, 소형선 2척 등이 갖춰졌다. 최근 발굴에선 조선 후기 갑옷과 투구가 발견됐다. 천성진성은 부산시의 계획상 신공항 여객터미널 바로 북쪽이어서 공항 관련 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황평우 소장은 “천성진성은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이순신도 활약했고,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잘 보존해서 야외 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항동의 외양포와 그 뒷산인 국수봉은 대부분 신공항 부지에 포함돼 활주로와 화물터미널 등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바다와 저지대 매립을 위해 국수봉은 깎이고, 외양포는 매립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외양포엔 20세기 초 일본군의 포진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❾ 일제는 러일전쟁 와중인 1905년 5월 외양포에 진해만요새사령부와 포병대대를 설치했다. 러시아 발트함대가 진해만 쪽으로 접근하면 이를 격퇴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러일전쟁 이후에도 포병대는 그대로 남아 170~180명 규모의 병력이 포 10문을 보유했다. 현재 외양포의 포진지에는 포자리(포좌) 6곳과 무기고 2곳, 근무자 숙소 등이 있다. 주변엔 20여 채의 일본군 관사와 사무실 건물도 있는데, 해방 뒤 여기 주민들이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수봉 쪽으로는 화약고와 3개 관측소, 산악 보루가 남아 있다.
“20세기 초 일본 군사기지 모습 그대로”
활주로와 관제시설이 들어설 대항과 새바지엔 인공동굴 10여 개가 있다.❿ 인공동굴은 보통 수십m부터 100m 이상까지 다양한데,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한반도 상륙에 대비한 시설이다. 주로 관측소와 포진지로 쓰였다. 황평우 소장은 “외양포의 포진지는 국내에서 드문 러일전쟁의 유적지로, 20세기 초 일본군 군사기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대 전체가 보존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가덕도는 섬 전체를 군사 역사 야외 박물관으로 만들어도 좋을 곳이다. 역사학계가 나서서 신공항 사업의 재검토를 요구해야 한다.”
가덕도(부산)=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표지이야기-가덕도에는 상괭이가 산다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참고 문헌
서치상·김윤정·류미리, ‘천성진성의 현황과 문화재적 가치’, 2016
남윤순·김기수, ‘가덕도 외양포 일대 일본 군사시설에 관한 고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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