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586, 프랑스 68세대 따라가나?

한겨레21 2021. 4. 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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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뒤 집권했지만 땅에 떨어진 사회당의 도덕성.. 청년들은 '부패와 무능'에 등 돌려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총파업을 벌이는 노동자와 학생들. 이른바 ‘68혁명’ 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이 14년 동안 집권했지만, 부패와 무능 등으로 인해 청년들에게 외면받고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EPA 연합뉴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했다. 거의 대부분이다. 20대 여성의 경우 오 후보(40.9%)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44%)에게 미세하게 높은 비율로 투표했다(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런 유사한 수치를 프랑스에서 종종 본 적 있다.

14년 집권 뒤 군소정당으로 몰락

2017년 프랑스 대선 과정에서 나온 한 여론조사에서 25~34살 여론 지지도를 보면 우리가 어떻게 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좌파인 장뤼크 멜랑숑은 24%, 중도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23% 그리고 극우파인 마린 르펜이 30%가 나왔다. 이 선거에서 좌파는 대통령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했고, 극우보다는 차라리 중도가 낫다는 흐름 속에 마크롱이 대통령이 됐다. 2002년 총리를 지낸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이 결선투표에 가지 못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좌파는 눈물을 머금고 극우파 대통령을 피하기 위해 전형적인 보수인 자크 시라크에게 투표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은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하나하나의 투표를 보면 그때마다 여러 주제와 상황이 있지만, 좀 큰 시선으로 본다면 68혁명과 이른바 ‘68세대’의 부패로 인한 몰락과 관계가 있다. 68혁명은 20세기 후반부를 관통하는 매우 큰 사건이다.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처럼, 이들이 윗세대를 뚫고 매우 빠르게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본다면, 1970년대 군소후보 중 한 명에 불과한 프랑수아 미테랑이 1981년 드디어 대통령이 되고, 사회당이 군소정당을 벗어나 집권세력이 된다. 프랑스 좌파의 전성기였다. 7년 중임제, 미테랑은 14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했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암으로 사망한다. 좌파가 아름답던 시대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추억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장 폴 뒤부아의 소설 <프랑스적인 삶>은 2005년 프랑스 사회를 강타했다. 소설 구성이 좀 특이하다. 샤를 드골에서 자크 시라크까지, 대통령 임기별로 각 장이 구성됐다. 고등학생으로 68혁명에 참가한 주인공이 대학에서 자신들을 두려워하는 교수들 덕분에 쉽게 쉽게 인생을 풀어가는 장면은 68세대가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1992년 미테랑 정권의 전형적인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총리가 된 피에르 베레고부아가 부패 스캔들로 총리에서 물러난 후 권총 자살을 했다. 14년에 걸친 집권은 사회당의 도덕성을 땅바닥에 떨어지게 했지만, 그 흐름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계파별로 지독한 갈등만을 보여줬다. 이후 사회당은 한 번 더 집권했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의 무능과 실패로 이제는 더 이상 결선투표에도 나가지 못하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지금 내가 본 민주당의 모습은 미테랑 집권이 마무리되는 시점의 프랑스 사회당과 아주 비슷하다. 68세대가 집권하고 부패하고, 청년들은 그들에게 진저리를 내면서 그들에게 투표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 돼갔다. 프랑스의 68세대가 14년에 걸쳐서 만든 변화를 한국의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는 4년 만에 만들어냈다. 압축 성장하듯이 ‘압축 부패’를 한 것일까? 뭐든 한국의 속도는 빠르다. 경제 위기, 특히 고용 위기가 오면서 청년들은 무능과 부패라는 이미지를 가진 프랑스 사회당을 철저히 외면하게 된다.

‘극우 청년’ 등장은 시간문제

우리 진보 진영은 프랑스 사회당의 몰락과 완전히 똑같은데, 보수 쪽 구도가 조금 다르다. 유럽은 68세대의 부패와 함께 청년 극우파가 등장했고, 우파 정당 일부가 극우파 정당으로 분화해서 나갔다. 청년의 10~15%는 극우파 정당에 투표한다. 개별적으로는 아직 집권할 정도는 아니지만, 유럽 의회에서는 이미 제1당이다. 좌파가 주류였던 청년들이 우파와 극우파로 분화하면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현실화됐다. 현재 고용 위기와 주거 위기 같은 청년 경제의 위기가 더 강화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극우 청년이 등장하는 건 시간문제다.

한국의 많은 정치학자가 미국식 양당 구도를 주로 염두에 두고 분석한다. 유럽의 경우는 68혁명을 계기로 전성기를 맞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점차 위기를 맞고 그 자리를 극우파 정당이 채우는 좀 다른 유형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당이 맞은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우파와 극우파에 68세대가 밀려나는 1990년대 이후의 유럽식 흐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90년대 사회당 이론가들도 이게 그렇게 큰 변화일 줄 몰랐다. 인종주의 성향의 극우가 등장하면, 정상적인 보수 정도만 돼도 훨씬 더 합리적이고 건전해 보인다. 그 흐름에서 좌파는 완전 왼쪽으로 밀려 집권과는 아주 거리가 먼 소수파 정당이 된다.

민주당 집권,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번 보궐선거의 투표 결과만 보면 흔히 얘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엎어진 운동장’에 가깝다. 민주당 쪽 이론가들은 이걸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는 듯하지만, 나는 20년 넘게 거의 회복하지 못하고 청년들이 더는 선택하지 않는 프랑스 사회당의 몰락을 다시 보는 것 같다. 미테랑 이후 보수 쪽에서 자크 시라크가 2회, 니콜라 사르코지가 1회 연속 집권하기 직전의 프랑스 사회당 모습과 지금의 한국 민주당 모습이 정말 너무너무 닮았다.

프랑스 사회당의 68세대는 변화하는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고, 다음번에는 자신들에게 다시 정권이 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냥 버텼다. 아마 살아서 나는 프랑스 사회당의 집권을 보지 못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지금 민주당을 보면서 이번 생에 한국 민주당의 집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비대위를 꾸려야 할 비상한 상황이라면 정말로 비상하게 움직여야 한다. 청년 보수 정도가 아니라 청년 극우가 등장할 사회경제적 조건을 이미 민주당 정권이 완벽히 만들어놓았다. 지금처럼 하면 운동장이 진짜 엎어진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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