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징병제 불붙인 남녀평등복무제..與 권인숙도 찬성
여성 징병제, 1999년 군가산점 위헌 계기
대표적 여성학자들도 여성 징병제 주장
일각선 "여성 징병제, 남성들 피해의식"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차기 대권 도전에 나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남녀평등복무제를 언급하면서 여성 징병제 논쟁에 다시 불이 붙는 모양새다.
박 의원은 최근 발간한 저서에서 "지원 자원을 중심으로 군대를 유지하되 온 국민이 남녀불문 40~100일 정도의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혼합 병역제도인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면서 "모병제와 남녀평등복무제를 기반으로 최첨단 무기체계와 전투수행능력 예비군의 양성을 축으로 하는 정예강군 육성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무병제를 유지하되 의무복무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청년세대의 경력 단절 충격을 줄이고 사회적 에너지 낭비도 막을 수 있다"며 "여성의 군복무를 통해 의무복무기간은 대폭 줄이되 병역 대상은 넓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박 의원이 20대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해 선심성 제안을 내놨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여성 징병 가능성과 남성 군 복무 부담 완화를 제시한 이번 제안은 여권 운동과 국방 정책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이 나온다.
여성 징병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부터다.
헌재가 군 가산점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린 후 이에 대응해 일부 남성들은 여성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일부 남성들은 남자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여자의 경우 지원에 의해 복무할 수 있도록 규정한 병역법 제3조 제1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1999년 12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후 2018년 8월까지 13차례에 걸쳐 유사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여성 징병제를 주장하는 것은 남성만이 아니다. 일부 여성들도 군대 내 양성평등과 군대 문화 개선을 이유로 여성 징병제를 주장해왔다.
2003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봄호에 '여자도 군대 보내라!―양성 평등한 군대를 위하여'라는 주장이 실렸다. 2005년 7월19일에는 '안보! 남성만의 영역인가?'라는 국회토론회에서 김화숙 재향군인회 여성회 회장이 여성의 국방의 의무를 주장했다.
대표적인 여성운동 학자들도 여성 징병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여성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명지대 교수 시절 '징병제의 여성참여 : 이스라엘과 스웨덴의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이스라엘이나 스웨덴을 보면 징병제를 통해서든 아니든 군에서의 여성 수 증가와 역할의 확대는 당연한 경향성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정책의 방향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군대가 있는 한 여성의 입장에서 군대는 외면하는 것이 최선인 조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권 의원은 또 "이스라엘과 스웨덴은 국가적 당면과제가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징병제의 경험이 해당자들에게 긍정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역할을 다양화하고 이후의 전문성과 연결시키면서 사회적 의미를 키우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사회의 징병제 또한 내용적 변화가 가능하고 기존의 남성 중심의 피해의식을 극복하는 다양한 설계도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전문가인 양현아 서울대 법대 교수도 '병역법 제3조 제1항 등에 관한 헌법소원을 통해 본 남성만의 병역의무제도'라는 논문에서 "만약 여성에게도 보편적인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제도가 마련돼 상당한 숫자의 여성이 사병으로서 복무하게 된다면 그것은 의무로서 수행하는 남성 군인들의 복무 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병역의무를 성별 간 분담하는 효과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또 "군대를 둘러싼 물질적, 정치적, 제도적, 이념적인 남성독점주의와 군대제도에서의 여성의 타자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여성은 그동안 남성 징병제에 대해 발언할 성원권(membership)도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해체만이 건전한 재구성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반면 여성 징병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여성 징병제 주장 자체에 여성 인권 운동에 대한 남성들의 반감과 역차별 피해의식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여성 징병제 주장은 '왜 남자만 군대를 가느냐' '왜 군대 다녀온 남자들에게 보상을 해주지 않느냐' 등 피해의식을 감추기 위한 포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엘리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소장은 '여성의 군 참여 논쟁: 영미 페미니스트들의 평등 프레임과 탈군사화 프레임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여성들의 군 참여에 관한 논쟁은 지원제이든 징병제이든 꼼꼼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여성들의 군 진출은 마치 성평등의 완성인양 가시화되지만 성차별을 야기하는 군 구조와 문화는 보이지 않은 채 개인이 자기계발을 통해 극복해야 할 문제로 남겨진다"고 비판했다.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성 징병제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여성 참여 확대를 위한 국방 개혁: 한국·노르웨이·스웨덴 사례를 중심으로' 논문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남녀 간의 갈등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군대가 위험하고 힘든 곳이며 누구나 피해야 할 혐오의 대상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라며 "결국 남성과 여성이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듯이 군대라는 혐오의 대상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남녀 간의 갈등이다.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은 박주민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성평등 하향평준화'"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여성의 군 참여 확대 및 역할 강화가 인구 감소와 군 복무 기간 단축 등 안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사회가 여성의 군 참여 확대와 역할 강화를 검토할 때 무엇을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와 정해민 육군 대위는 '병역의무 보편화 정책에 관한 시론적 연구: 대체복무와 여성징병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정부가 병역자원 부족을 이유로 여성 징병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여성 징병은 양성평등의 차원에서 여성계가 자발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여성 징병을 시행할 수 없다면 남성 군복무자에 대한 우대 정책을 재시행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병역의무를 보편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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