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백신 급하지 않다"는 靑 방역기획관, 정치방역 '선전포고'인가?

김명지 기자 2021. 4. 1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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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 참모진 개편과 함께 방역조치 전담 직책인 방역기획관을 신설하고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를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나흘 전인 지난 12일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백신 수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었다. 최근 일주일 하루 평균 확진자 숫자가 700명에 육박한 상황에서 긴급 소집된 회의였다.

그날 회의 직후 마련된 청와대 방역기획관 자리에 기 교수가 임명된 것을 두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사"라는 게 정치권과 의료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백신 수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코로나 백신 수급이 지연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청와대 참모로 중용했기 때문이다.

기 교수는 다른 나라들이 백신 전쟁을 벌였던 작년 11월 ‘백신은 빨리 맞는 것보다 안전성이 중요하니,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기 교수는 그 당시 '내년 3~4월이면 많은 백신이 나올 것이니 그 때 가서 좋은 백신을 골라서 선택하자'고 했다. 기 교수가 ‘그 때 가서 골라서 선택하면 된다’고 했던 ‘내년 4월’은 바로 지금이다. 백신접종 순위 세계 110위권으로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로 부터 낮은 백신 접종률로 경제회복이 뒤쳐질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 게 현재 한국의 모습이다.

인구 100명당 접종 횟수가 116회인 이스라엘은 사실상 집단 면역에 들어갔다. 한국의 인구 100명당 접종 횟수는 1.82회로 방글라데시(3.26)보다도 낮다. 한국은 여기에 3차 유행이 끝나기도 전에 4차 유행이 시작될 조짐이다. 기 교수는 올초 개학을 앞두고 "코로나는 고령층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휴교는 비과학적 대처"라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방역기획관'을 신설한 배경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는 작년 6월 정부가질병관리청을 보건복지부로부터 분리, 독립, 격상시켰다. 질병청 승격 이후 10개월이 지났지만, 정은경 질병청장은 뚜렷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복지부와 질병청이 협력 관계가 아닌 경쟁 관계로 대립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정은경 청장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 망정 '방역기획관'이라는 옥상옥 자리를 만들었다. 관가에서는 청와대가 정은경 청장의 '힘빼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상황이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가 대놓고 정치방역을 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둔 청와대가 기 교수에게 '보은 인사'를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권에 힘이 남아 있을 때 그동안 정권에 충성한 사람에게 적당한 자리를 챙겨 줬다는 것이다. 기 교수의 남편인 이재영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작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남 양산갑에 출마해 낙선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 크다. 한국에는 정부 조직 밖에서 부처 역할을 하는 조직이 넘쳐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조직인 각종 위원회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대통령·국무총리 직속 위원회는 작년 6월말 기준 82개로 현 정부 출범전(77개)보다 5개 늘었다. 이런 위원회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2016년 470억원에서 작년 900억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는 자영업비서관과 청년비서관이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방역기획관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대응 실패가 청와대에 방역 전담 직책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러니 정치권에선 방역기획관 자리가 '문 대통령 대신 욕먹는 방탄조끼 자리'라는 말도 나온다. 다음 정권에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백신 확보 실패가 도마에 올랐을 때 대통령 대신에 책임을 질 '방패막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부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닐 뿐 아니라 잘못된 해법이라는 점에서 절망적이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국민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사람을 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보신, 자기 변명에만 신경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목적으로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고 해도 전문가를 앉혔어야 했다. 기 교수는 국민 불안은 안중에도 없이, 백신확보에 무능했던 정부를 옹호하는 궤변을 늘어놨다. 기 교수가 방역 정책의 최정점에서 업무를 수행한다면, 그 무능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백신 없이는 코로나 사태를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백신 확보는 뒷전이고 '코리아는 코로나를 이긴다'는 정치 홍보 문구에만 골몰하는 게 정부 고위 인사들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코로나를 극복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저만치 뒤쳐질 것이다. 정부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대로 국민들의 몸에 코로나 바이러스 항체를 만들어 줄 백신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아야 한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실패를 줄이는 정공법을 따라야 한다. 국민의 목숨과 나라의 경제가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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