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낙하산' 막아야 제2의 LH 사태 막는다
(시사저널=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사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는 쓰나미와 같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4·7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의 오세훈·박형준 후보가 엄청난 표차로 여당 후보들을 누르고 당선된 결과를 LH 투기 사건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어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여당은 LH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분리하거나 조직을 해체하는 개혁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LH가 수행해 온 공공택지 및 주택 공급 기능을 다른 기관으로 이전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사업 수행 과정에서 누적된 LH의 부채 126조6800억원을 처리하는 방안도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2의 LH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개혁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부채 525조…계속 증가 추세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은 시장경제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사회간접시설을 구축·운영하고, 국민들에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들이다. 2021년 현재 350개의 공공기관이 지정돼 있으며, 36개 공기업과 96개 준정부기관, 그리고 218개 기타 공공기관이 있다. 일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수입으로 운영되는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 인천공항공사 등은 시장형 공기업으로서 국민의 일상생활 및 기업활동과 밀접히 관계를 맺는다. 이 밖에도 준정부 및 기타 공공기관들이 정부의 다양한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정책집행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가지고 있는 부채 규모는 매우 크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2020년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공공기관 총부채는 525.1조원 규모에 이르며 전년도에 비해 21.4조원 증가했다. 공공기관 부채는 직접적으로는 해당 공공기관의 채무지만, 정부가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는 채무다. 결국, 공공기관의 채무는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공공기관들이 이렇게 대규모 부채를 가지게 된 데는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의 공약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데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시절 보금자리주택 건설, 해외자원 개발, 4대강 사업 등 주요 국책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공기업이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수도, 전기, 가스, 철도 등 공공요금을 억제하면서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판매해 부채가 누적됐다. 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 경영상 꼭 필요하지 않거나, 사업성이 크지 않은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적자를 초래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공공기관을 통해 집행됐다. 많은 갈등을 빚었던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가 바로 그 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공공기관이 자회사들을 설립했는데, 이 자회사들도 앞으로 공공기관의 재정관리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 자명하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공기관 정책이 큰 폭으로 변동했다는 점도 공공기관의 부실 경영과 부패의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공공기관은 공공성과 효율성이란 두 가지 상호 모순된 목적을 추구하는 경제주체다. 시장경제가 필요로 하는 공공 서비스를 창출함과 동시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같이 상충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매우 섬세한 정책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공기관의 운영 방향이 한쪽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크게 휘둘리게 됨에 따라 사업 수행에 혼선이 생기고, 경제성도 잃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부문 개혁을 시도했던 김대중 정부에서는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시장경쟁 제도를 도입하고 민영화를 추구했다. 한국전력공사로부터 5개 발전 공기업을 분리·설립해 향후 이 발전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러한 시장경쟁 체제 도입과 민영화 정책을 중단하고 공기업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5개 발전 공기업은 민영화되지도 않고, 한국전력으로 재통합되지도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또다시 공공성보다는 경영 효율을 강조하면서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추진했고,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개혁을 추진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공공기관의 정책 목표는 사회적 가치라는 공공성으로 다시 회귀했다. 이렇게 급격한 방향 선회를 지속한다면 공공성도 효율성도 다 잃을 수밖에 없다.
정권 교체될 때마다 흔들리는 공공기관
그렇다면 어떻게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공공기관 고유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350개 공공기관이 각각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경영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성과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이 자율과 책임경영에 필요한 경영 능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회의적이다. 특히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감사를 포함한 이사진이 해당 기관에 필요한 경영 능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영향력으로 임명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들이 경영 능력과 전문성을 결여한 채 공공기관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캠프 인사, 코드 인사, 청와대 인사 등과 같이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임용되면서 이 같은 문제는 과거 정부에 비해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 심화됐다. 이렇게 되면 차기 정부에서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구태의 악습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임원추천위원회와 같이 공공기관장과 이사진을 공정하게 선임하기 위한 임명 절차는 이미 잘 구비돼 있다. 핵심은 정권이 부당한 개입을 하지 않고 적법 절차에 따라 전문성 있는 적임자를 인선하는가에 달려 있다. 대통령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추천된 사람 가운데 공공기관장을 임명하는 것은 공공기관 개혁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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