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배터리 분쟁 후 '로열티 받는 기업' 위상 생겨
"국익과 개별 회사의 장기적 이익에 모두 부합한다는 점에서 양사의 합의는 의미가 큽니다."(문재인 대통령)
4월 11일 일요일 새벽 2시 무렵부터 외신을 통해 놀라운 소식이 타전되기 시작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과 SK이노베이션(이하 SK)이 전기차 배터리 분쟁에서 합의했다는 보도였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개별 기업을 격려하는 성명을 내놓을 정도로 극적인 장면이었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4월 10일 화상회의 방식으로 만나 합의했다. 합의금은 2조 원.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서는 최대 규모다. SK가 LG에 주는 것이다. 단, LG는 소송비용으로만 1600억 원 이상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LG 출신 유영민 靑 비서실장도 중재
이번 다툼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행사하지 않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조지아주는 공화당 텃밭에서 민주당 득세로 전환하며 바이든 당선에 크게 기여한 곳이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은 SK 조지아주 공장과 일자리를 없애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고, 그렇다고 중국과 격돌하는 상황에서 영업비밀 침해를 눈감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SK는 총 2조 원의 합의금 가운데 1조 원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5000억 원씩 현금으로 낼 계획이다. 나머지 1조 원은 2023년부터 글로벌 배터리 매출액에 연동하는 로열티로 지불한다. 부담을 완화한 것이다. 로열티 지급 기한은 밝히지 않았다. 당초 LG는 3조 원, SK는 1조 원 이하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서로 1조 원씩 양보한 셈이다. LG와 SK는 이번 합의를 통해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LG가 SK 자회사 지분을 받는 방식이 거론되긴 했으나, 현실로 이뤄지진 않았다.
SK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1조 원의 부담을 지면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첫 5000억 원은 부실 사업을 매각한 것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SK는 지난달 북미지역 셰일오일 광구 지분과 설비를 매각했다. 최근 공개된 이 회사의 사업 보고서를 보면 해당 사업을 하는 'SK E&P America'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총자산 규모는 1조518억 원이었으나, 지난해 말에는 821억 원으로 1조 원 가까이 감소했다. 수천억 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상장과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으로도 현금 확보에 여유가 있다.
2023년부터 부담하는 로열티는 긍정적 시그널이다. 경쟁사가 성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SK의 지난해 배터리 부문 매출액은 1조6102억 원으로 처음 조 단위를 넘었다. 최대 50억 달러(약 5조5775억 원)를 투자할 계획인 미국 공장뿐 아니라, 헝가리 공장을 통한 유럽 진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SK 헝가리 법인(SKBH) 매출액은 2019년 17억 원에서 지난해 약 35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현재 1공장을 가동 중이며, 2공장은 내년부터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3공장도 하반기 착공에 돌입한다.
두 업체 '초격차 벌리기' 나서야
LG는 이번 합의로 글로벌 시장에서 로열티를 받는 기술 기업으로 위상을 떨치게 됐다. 이는 향후 사업 확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올해 받는 5000억 원도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현대자동차 코나 화재로 발생한 리콜 비용을 5500억 원이나 부담해야 한다. 나머지 1조5000억 원가량은 중국 난징(南京), 미국 미시간, 폴란드 브로츠와프 등에 자리한 해외 공장 등 투자 확대에 활용할 수 있다. 모회사 LG화학도 최근 1조2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이를 합하면 초대형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이미 LG는 미국에 2025년까지 5조 원 이상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최소 2개 이상 짓기로 했다.이제 LG와 SK는 글로벌 사업자들과의 기술 및 양산 능력 경쟁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중국 CATL이 수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LG는 2위다. 삼성SDI와 SK는 최근 5~6위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에 일본과 중국 기업이 포진해 있다. 또한 테슬라, 폭스바겐 같은 세계적인 전기차업체들 역시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당장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위기는 다가오고 있다.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자국 중심의 전기차 배터리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지금, 한국 배터리업체들은 글로벌 시장 선두주자로서 '초격차 벌리기'에 집중해야 한다.
김동훈 비즈니스워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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