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모든 것'과 결별할 수 있을까
[유영구 북한연구자]
조선로동당은 지난 2월 8일~11일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한 지 한 달여 만의 일이었다.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 시기 당 앞에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당규약 26조). 제8기 제2차 전원회의는 제8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이행과업을 다루는 정치행사였다.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역사적으로 당대회 못지않게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서만 해도 2013년의 3월 전원회의(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 2018년 4월의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 2019년 12월의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정면돌파전) 등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노동당은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여러 현안 및 과제들과 씨름하겠다는 신호를 전 인민들에게 보내기 위해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아마 5년 뒤에도 1월 초에 제9차 당대회를 개최하고 한 달 만에 제9기 제2차 전원회의를 열 개연성은 있다. 김정은시대의 '국가운영의 제도화'는 당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대회 개최년도의 첫 3개월은 5개년계획의 첫해 목표를 조정하기 위해 분주할 수밖에 없다.
김두일 당 경제비서의 해임을 둘러싼 해석
제8차 당대회에서 당비서 겸 경제부장으로 임명되어 주목을 받은 김두일은 제2차 전원회의에서 전격 해임되었다. 그의 직책을 오수용 제2경제위원장(군수담당)이 다시 맡았다. 전광석화 같은 인사변동은 내외의 관심을 끌었다. 조용원 당 조직비서는 전원회의에서 김두일 당비서를 세워놓은 채 비판했다. <로동신문>이 이런 사진을 게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경제담당 비서의 전격 해임은 노동당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것은 고위 당간부들에게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것을 촉구하는 자극제가 됐을 것이다.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진행 과정을 보면 당-국가체제인 북한이 최고위층을 포함한 잦은 인사 조치로 체질 개선 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은 '숙청'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반당반혁명 종파사건 등)를 제외하고는 최고위층의 인사 조치가 잦은 나라는 아니었다. '과거의 눈'으로 북한을 분석해서는 빗나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모든 것이 '경제' 때문이다.
당 수뇌부는 김두일 당비서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전현철 당중앙위원회 경제정책실장(내각 부총리 겸임)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국가계획상의 문제라면 박정근 국가계획위원장(내각 부총리 겸임)이 책임질 일이 있었겠는데 그의 신상에 변동은 없었다. 김두일 당비서를 제외하고는 경제 분야에서 새롭게 부상한 인물들이 모두 제 자리를 지켰다.
김두일의 해임에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개년계획의 첫해 계획의 여러 문제점을 방임한 데 따른 총체적인 책임이 그에게 지워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평안남도 당위원회에서 장기간 근무한 간부였다. 이를 감안하면 그가 당비서가 되었는데도 평남지역에 뭔가 유리한 행동을 했다는 신소(伸訴)가 올라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중앙은 경제의 내각 주도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본위주의'와의 싸움에 나섰는데 그가 이런 정책에 역행하는 행동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갑작스런 개최나 김두일 당비서의 해임에 묶어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재편성을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한' 경제의 과녁이 선명해지고 있다.
북한의 당‧국가‧군대는 거대한 '시스템 경영' 하에 놓여 있고 모든 현안들은 당의 정치행사에서 다뤄진다. 제8기 제2차 전원회의는 새로운 노선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중대한 사항들을 다루었다.
"온 나라 인민이 지켜보고 있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는 김정은 총비서의 보고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하여》에 대한 결정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또한 결정서 《전사회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더욱 강도높이 벌릴 데 대하여》가 채택됐다.
앞의 것은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의 실행에 관한 것이었다. 뒤의 것은 당‧국가‧사회의 규율을 강화하고 인민대중의 법규준수, 특히 반(反)사회주의‧비(非)사회주의적 행동에 대한 투쟁을 규정한 것이었다.
‧
뒤의 것은 '경제관리의 개선' 과정에서 전 사회적으로 사회주의적 성격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과 연관이 있다. 외견상으로는 2020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관련해 사회문화적 측면이 강한 듯이 보이지만 시장 활동의 조정 등의 경제적 측면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김 총비서는 전원회의를 시작하면서 5개년계획의 첫해에 '실제적인 변화', '실질적인 전진'을 가져올 '실천‧혁신의 무기'를 당조직들과 당원들에게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나 '실질'은 실리주의를 실생활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지금 온 나라 인민들은 당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사업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와 전진을 위한 작전도이자 설계도인 5개년계획의 첫해 계획이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이렇게 전했던 것이다. 계획의 첫해에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코로나19, 자연재해의 3중고에서 계속 허덕인다거나 자력갱생으로는 북한경제를 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외부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북한은 아예 다른 지점에 서서 사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기관지 <로동신문>은 지난 2월 24일자 사설에서 "과업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애로가 제기되면 국경 밖을 넘보거나 위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생산, 연구, 개발 단위를 찾아가 긴밀한 협조 밑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내적인 힘, 즉 내부의 발전 동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산‧연구‧개발 단위를 앞세운 자력갱생'은 북한경제에서 산학연 협동을 중시하고 있음을 다시 일깨워준다. '국경 밖을 넘보거나 위만 쳐다보는' 행위는 지탄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모든 것'과의 결별
김 총비서는 "새로운 5개년계획은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모든 것과 결별하고 새 출발을 할 것을 요구"한다고 전원회의에서 밝혔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익숙한 것'과 결별하기는 쉽지 않다. 전 사회적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쉬울지 모른다.
<로동신문>의 위 사설은 "작업반이 작업반을 돕고 공장이 공장을 도우며 부문이 부문을 도와 모두가 기적의 창조자, 선구자의 영예를 떨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작업반‧공장‧부문 간의 '협조'가 새 출발의 열쇠가 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정비전략‧보강전략에서 '협조'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는 전원회의에서 첫해 계획의 작성과정에서 빚어진 오류를 냉정하게 지적했다. "내각에서 작성한 올해 인민경제계획이 그전보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올해 경제사업계획에 당대회의 사상과 방침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혁신적인 안목과 똑똑한 책략이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계획에서 변화의 반영, 당대회의 방침, 혁신적인 안목과 책략 등이 중요한데 이런 것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답답함을 토로했던 것이다. 모든 부문‧단위의 경제계획 담당자들은 김 총비서의 발언을 들으며 가슴이 묵직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북한 경제계획의 역사를 돌아보면 당 지도부가 계획화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한 가지 사례를 들면 제5차 당대회(1970년 11월)에서 6개년계획(1971~6년)이 채택된 지 1년 만인 1971년 10월 11일에 김정일 당조직비서는 "국가계획위원회 일군들은 사무실에 들어앉아 설비능력이나 따지면서 올해 공작기계 생산계획을 근로자들의 앙양된 혁명적 열의와 당의 정책적 요구에 맞지 않게 소극적으로 세웠습니다. 당중앙위원회 경제부서 일군들은 경제사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심중한 결함들에 대하여 응당한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라고 비판했다(담화 "인민경제계획화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할 데 대하여"에서).
김 총비서의 계획화사업에 대한 비판은 김일성-김정일시대에 있었던 비판을 연상시키면서도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두 가지 폐단을 지적했다. 첫째, 내각이 주요 경제부문들의 계획을 작성하는 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고, 내각 성(省)들에서 기안한 숫자들을 '기계적으로' 종합했다는 것이다.
둘째, 어떤 부문은 현실 가능성도 없이 계획을 주관적으로 높여놓고 어떤 부문은 '정비보강'의 미명하에 계획을 낮춰 놓는 폐단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계획을 낮게 잡아놓고 연말에 가서 초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는 것은 계획경제의 '고질적인' 폐단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당‧정 지도부는 이 오랜 폐단과의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것인가? 경제전환기의 성공 여부는 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경제계획 수립에서의 부문별 오류
김 총비서는 올해 계획수립에서 특히 잘못된 동향을 부문별로 거론했다. 농업부문에서는 첫해부터 알곡생산목표를 '주관적으로 높이 세워' 계획단계에서부터 관료주의와 '허풍'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과학적인 처방을 내리지 않고 알곡생산목표를 '허풍'으로 높이 세우면 연말에 가서 계획량의 미달을 면피하려는 온갖 수완들이 동원될 것이고 이것은 인민들에 대한 식량수급을 망치는 중대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
알곡생산목표에서 '허풍'(과장‧허위 보고)이 없어야 국가수매계획을 정확히 세울 수 있고 식량부족분에 대해 현실적 대책을 내각이 수립할 수 있다. 농업부문의 생산단위들이 본위주의에 빠지면 국가 차원의 식량대책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일선의 시(구역)‧군(郡)협동농장경영위원회가 중요하며, 시‧군당 책임비서가 협동농장경영위원회에 대한 지도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시‧군당 책임비서들은 자기 지역의 협동농장들이 알곡생산목표를 현실 여건에 맞게 수립하도록 하고, 이를 반드시 달성하도록 온힘을 쏟아야 하는 실정이다.
전력‧건설‧경공업부문에서는 연말에 비판 받지 않을 정도로 기본지표 생산계획을 낮춰서 기안했다고 한다. 계획경제에서는 생산계획을 비현실적으로 올려놓아도 문제이고 낮춰놓아도 문제이다. 부문별 국가생산총량을 근사치로 잡아놓아야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성장의 예상목표를 정밀하게 수립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가의 경제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다.
올해 전력생산계획의 경우 현재의 전력생산수준보다 낮게 세워서 문제가 되었다. 내각 전력공업성 등에서 설비의 정비‧보수에 필요한 부속품 부족 등을 그 이유로 설명할 수 있었겠지만, 전력부족이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수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계획경제의 뒤안길이 낱낱이 공개된 전원회의였다.
그는 특히 자재‧노동력의 조건을 근거로 삼아 '평양시 살림집 건설계획'을 당대회에서 결정한 목표보다 낮게 세운 것에 대해 심각하게 따졌다. 이에 대해 "조건과 환경을 걸고 숨고르기를 하면서 흉내나 내려는 보신과 패배주의의 씨앗"이라 비판함으로써 건설건재부문의 간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는 올해 평양시에 1만세대의 살림집을 무조건 건설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소비품 생산부문에서의 부조리도 이에 못지않았다. 신발생산계획을 '형편없이 낮게' 세우면서 그 탓을 자재보장조건과 선질후량(先質後量)의 원칙에 돌렸다고 한다. 당에서 원가 저하와 질(質) 제고를 중시하는 정책을 제시하자 질을 높이려면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방어논리'를 세웠다가 심하게 비판당하였다. 계획경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부작용들이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차례로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다.
올해 경제사업의 8대 과업
5개년계획의 첫해 계획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지적한 김정은 총비서는 올해 경제사업의 과업을 대략 8가지로 제시했다(그의 보고에 8대 과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고 필자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이 과업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1) 모든 경제부문에서 현행 생산을 전개하면서 앞으로 생산을 장성시킬 수 있게 새로운 생산기지들을 조성해야 한다.
(2) 낙후하고 뒤떨어진 생산 공정들을 현대화하며 필요한 공정들을 보강하여 생산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사업을 병행하여 추진해야 한다.
(3) 5개년계획의 중심과업인 금속‧화학공업을 관건적 고리로 설정하고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4) 농업부문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올해부터 계획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5) 실제로 절실하고 하나의 성과로 열 가지를 얻을 수 있는 대상을 선정해 '첨입식(添入式)'으로 힘을 집중하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6) 내각과 국가계획위원회에서 모든 경제부문과 기업체들의 생산물을 중앙집권적‧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생산-소비적 연계를 맺어주어 수요를 원만히 보장하는 사업체계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7) 기간공업부문의 기업체들과 외아들공장들에게 노동력‧설비‧자재‧자금을 집중적으로 대주고 국가적인 장려‧특혜조치를 취하며 수입지표들을 국내생산으로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8) 모든 부문‧단위에서 장차 나라의 한개 부문을 떠메고나갈 과학기술인재, 행정일군, 당일군을 계획적으로 육성해야 한다(착상력‧조직전개력‧장악력이 우수한 경영인재‧관리인재들을 발굴하고 의도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과업 포함).
8대 과업 중에 지금 당장 집중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은 (3), (4), (6), (7)이라고 할 수 있다. (1), (2), (5), (8)은 장기적인 성격을 지닌 과업들이다.
김 총비서가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부문별 정책 방향은 <표>와 같다(언급 순서대로). 건설건재공업부문, 경공업부문, 지방공업부문, 수산부문 등 인민생활 향상과 직접 관련된 부문, 먹는 문제 해결의 농업부문, 그리고 과학부문 등의 정책 방향은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고 나머지 공업부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건너뛰다시피 했다(실제 보고에는 자세히 나와 있겠지만 조선중앙통신 등의 보도문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은 5개년계획의 첫해 계획과 관련해 인민들에게 '경제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영구 북한연구자]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 경제,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모든 것'과 결별할 수 있을까
- 아, 아프간! 엄청난 희생만 낳은 미국의 끔찍한 전쟁
- 갑자기 아버지 잃은 가족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 소성리 '사드'는 어떻게 '광기'를 불러냈나?
- 청년 모르는 정치권, 페미니즘 탓할 때가 아니다
- 케리 미 특사,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두고 "개입 적절치 않아"
- '사면론' 들고 나온 홍준표..."文대통령, 부메랑 될 것"
- 주말 영향에도 코로나 신규 확진자 나흘째 600명대 이어가
- 투명하지 못한 정부의 '백신 메시지'가 불안감 확산의 원인이다
- 우리집 쓰레기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