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프간! 엄청난 희생만 낳은 미국의 끔찍한 전쟁

2021. 4. 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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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바이든 선언은 '전쟁 승리' 아닌 '아프간 수렁' 탈출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미국의 가장 긴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가리키는 말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이뤄졌던 베트남 전쟁 개입에서 미국은 세계적인 비난과 더불어 엄청난 전쟁비용과 인명 손실을 겪었다. 막판엔 오로지 '베트남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쓴 끝에, 동맹국이었던 남베트남 사이공 정부를 따돌리고 일방 철수를 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래저래 베트남은 미국의 전쟁사에서 악몽으로 기억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던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아프간 수렁'에 빠졌다. 올해 10월이면 딱 20년을 채우는 긴 시간을 '전쟁 국가'로 보내왔다. 왜 그랬을까를 두고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선 말들이 많지만, 한마디로 너무 쉽게 전쟁을 벌인 탓이다. 2001년 9.11 테러를 겪으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숨어있는 오사마 빈 라덴을 처벌하려 어쩔 수 없이 군사 개입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쳐들어갈 움직임을 보일 무렵 필자는 늦깎이 공부를 하느라 미국 뉴욕에 있었다. 그 무렵 뉴욕 맨해튼에서는 소규모이긴 했지만 반전 평화집회가 열리곤 했다. 집회에 참석한 평화운동가들을 포함한 뉴요커들은 "전쟁보다는 탈레반 정권으로부터 빈 라덴을 넘겨받아, 국제법에 따라 법정에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며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9.11 테러를 당했다고 무조건 복수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수잔 손택과 같은 뉴욕의 지성인은 "더이상 바보가 되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전쟁의 북소리를 둥둥 울려대는 미국의 보수 언론은 그녀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체 했다.

너무 쉽게 일으킨 전쟁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라 일컬어진다. 아프가니스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우디 출신의 빈 라덴을 손님으로 보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압박해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미국의 군수산업체를 비롯해 전쟁으로 이득을 보려는 어둠의 세력과 미국인들의 맹목적인 애국주의 바람은 조지 부시 행정부를 전쟁 선포 쪽으로 이끌었다. 9.11 테러에 대한 복수를 외치는 강경 분위기에 반전 평화의 목소리는 묻혔고, 결국 2001년 10월에 전쟁이 터졌다.

결과는? 단기간에 승리로 끝나리라 여겼던 아프간 전쟁은 지금도 끝나질 않았다. 9.11 테러 10년 뒤인 2011년 파키스탄에 숨어 지내던 빈 라덴을 미군 특수부대가 기습해 죽이긴 했지만, 그 뒤로도 쌓여가는 전쟁비용과 죽고 다치는 미군 병사들로 미국은 멍들어 갔다.

더구나 지난 20년 동안의 전쟁으로 죽고 다친 아프가니스탄 현지인의 숫자는 미국인들보다 훨씬 많다. 절대 다수는 전투원보다는 비전투원들이다. 개중에는 결혼식 잔칫집이나 마을 행사에 모여 있다가 미군의 오폭으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 아프간 사람들은 "우린 전쟁의 신에게 저주받았다"고 말한다. 오랜 전쟁으로 파괴된 카불 Ⓒ김재명

한국 1년 국방비 50배 쏟아부은 '아프간 수렁'

미 왓슨 연구소(브라운대학 부설)는 '전쟁 비용(Cost of War) 프로젝트'라는 이름아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전쟁으로 생겨난 희생자 숫자와 전쟁비용을 집계해왔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왔던 왓슨 연구소의 이 작업은 미 국방부나 국무부에서 필요에 따라 내놓는 자료보다는 훨씬 투명성과 신뢰도가 높다는 평을 받는다.

왓슨 연구소가 내놓은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은 전쟁 비용은 2조 2600억 달러. 이즈음 환율이 1달러에 1116원 정도이므로, 우리 돈으로는 무려 2522조 원이란 천문학적인 액수다. 한국의 2021년 국방비가 52조 원이므로(이것도 예전보다 크게 늘어난 규모!), 미국은 한국의 1년 국방비의 거의 50배를 9.11 뒤 벌인 아프간 전쟁 비용으로 쏟아 부은 셈이다. 이 모두 미국 시민들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돈이다.

달러를 더 찍어내면 문제가 풀린다는 말도 안 되는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다. 하지만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 비용의 부담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쟁으로 얻는 이득은 군수업체, 그리고 국방부에 선을 댄 핼리버튼과 같은 용역업체에게 돌아갈 뿐 미국 경제를 전쟁으로 살린다는 발상은 터무니없을뿐더러 매우 위험하다.

전쟁 없었다면 살았을 24만 명

나간 돈이야 다시 벌어 메우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쟁으로 희생된 생목숨을 되살려낼 수는 없다. 왓슨 연구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아프간 전쟁으로 24만 1000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여기에는 △미군 2442명, △아프간 민간인 7만 1344명, △아프간 군인과 경찰 7만 8314명, △탈레반을 비롯한 반미 무장 게릴라 8만 4191명이 포함돼 있다.

아프간 전쟁에서의 미군 사망자 2442명(참고로, 베트남전쟁 미군 사망자는 5만 8209명, 이라크전쟁 미군 사망자는 4572명)도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절대 다수의 사망자는 아프간 현지 사람들이다. 이들 사망자 숫자는 직접 전투 현장에 가까이 있다가 죽은 이들이다. 오랜 전쟁으로 난민이 된 상태에서 굶주림과 영양실조,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더하면, 그 숫자는 크게 불어날 것이다.

또 하나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왓슨 연구소의 통계 자료를 보면, 끝자리 숫자 하나마저 매우 정확한 듯이 여겨진다. 하지만 이 통계 자료는 매우 보수적으로, 다시 말해 직접 전투의 결과로 확인된 사망자들의 통계이다. 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또 다른 많은 희생자들이 지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들의 죽음은 뭐냐?"

유혈사태가 벌어진 뒤 사망자 통계는 많은 경우 논란거리다.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 거주지역을 포격할 때마다 그런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 한국의 경우 1980년 광주에서의 희생자 숫자를 놓고도 아직껏 찜찜한데, 무려 20년을 끈 아프간 전쟁이니 말할 나위 없다.

미국인 사망자 통계에도 가려진 사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가 죽은 미국 민간인 사망자들이 미군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다. 미국 민간인 사망자 숫자는 3,800명을 넘는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전직 미군 특수부대원 출신이다.

미국이 아프간전쟁을 벌이자, 9.11 전에 군에서 퇴역했던 많은 '전투 기술자'들이 목돈을 벌려고 민간 용역회사의 무장 경비원이나 요원 경호원 등으로 계약을 맺고 아프간으로 떠났다. 그러다가 도로에 사제 폭발물을 심어놓은 반미 게릴라들의 매복 공격을 받아 많이들 죽고 다쳤다.

나름 잘 살아 보려고 위험지역 근무에 나섰다가 불행을 맞이한 이들 민간인 사망자들을 미 국방부는 어떻게 여길까. 미군 사망자보다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훨씬 작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병사 몇 명이 죽으면 그 다음날 미 언론에 보도가 되고, 여론이 술렁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들 민간인 용역들의 죽음은 좀처럼 보도되지 않는다. 그만큼 워싱턴의 전쟁 지도부가 미 유권자들에게 느껴야 할 부담이 덜한 셈이다. 당시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경비 수송 등 위험 업무를 민간 용역회사로 떠넘겼다.

▲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항을 경비중인 미군 병사들 Ⓒ김재명

아프간 평화도 '팍스 아메리카나'만큼 소중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14일 "이제 미국의 가장 긴 전쟁 마무리할 때가 왔다"며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 방침을 밝혔다. 바이든은 "나는 아프간 주둔 미군을 지휘하는 네 번째 미국 대통령이다. 이 책임을 다섯 번째 대통령에게 넘기진 않으련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신고립주의라는 그럴듯한 해석도 나왔지만, 미국으로선 '아프간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는 필사적인 선택일 뿐이다. "희생은 있었지만 아프간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질서 있게 전쟁을 마무리한다"는, 미국 시민들이 듣기에 그럴듯한 정치적 발언은 차라리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미 국방부는 올해 여름 무렵 현재 2500명 규모인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킬 예정이다. 전임자인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2월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간 반미 세력인 탈레반과 맺은 바 있다. 하지만 이 협상은 아프간 카불의 친미 정권을 협상테이블에 앉히지 않고 미국-탈레반 사이에서만 맺어진 것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지난날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기 위해 북베트남 하노이 정권과 맺었던 파리평화협상(1973년)에서 사이공 친미 정권을 소외시킨 것과 닮은꼴이다.

파리협상 2년 뒤 사이공이 함락됐던 것처럼, 카불이 탈레반 세력에게 함락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렇기에 미국이 '아프간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아프간을 버리는 것이란 비판이 따른다. 하지만 여기서 떠올려볼 물음은 무엇이 더 소중하냐는 것이다.

"우린 전쟁의 신에게 저주받았나봐요" 카불에서 탈레반 세력이 쫓겨난 직후인 지난 2002년 1월 아프간 현지 취재 때 그곳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오랜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미국인들에겐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가 소중하지만, 그들에겐 '아프간의 평화'가 더 소중할 것이다. 여성 인권 탄압과 문화재 파괴 등 지난날 여러 논란을 일으켰던 탈레반 정권의 귀환을 바라든 바라지 않든 간에.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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