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21km 돌진' 아내 살해한 남편에 징역 20년 선고, 이유는

고귀한 기자 2021. 4. 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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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거나, 피할줄 알았다..살해 고의 없어" 진술
재판부, 충돌 직전 가속·핸들 각도 등 '미필적 고의'
© News1 DB

(광주=뉴스1) 고귀한 기자 = 지난해 5월19일 오후 6시10분쯤. 전남 해남군 마산면의 한 편도 1차로 도로에서 쏘렌토 승용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모닝을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충격으로 모닝 운전자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고, 모닝을 뒤따르던 쏘나타 운전자와 동승자, 쏘렌토 운전자는 각각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속도를 낼 수 없는 좁은 도로에서의 교통사망사고는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경찰 조사 직후 이 사건은 더 큰 반전을 맞게 된다.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낸 쏘렌토 운전자 A씨(52)는 사망한 모닝 운전자 B씨(41·여)의 남편이었다.

당시 A씨는 B씨와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식사를 차려주지 않는다. 잠자리를 거부한다' 등으로 매일 이어지는 A씨의 폭행과 협박 등이 B씨의 이혼 및 위자료 소송 이유가 됐다.

B씨는 소송 직후 A씨를 피해 타지역에서 생활했지만, A씨의 집착을 피할 수는 없었다.

A씨는 B씨가 사는 곳을 찾아내 우편물을 훔치는가 하면, 집 안 침입도 시도했다.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도 소용없었다. 이후로도 A씨는 B씨에게 접근, 살해 위협과 협박을 지속해 경찰에 신고되기까지 했다.

A씨는 사건 직전에도 B씨의 집을 찾았다가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가던 중이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A씨와 B씨의 관계를 토대로 사고 현장에서의 '스키드 마크', 즉 A씨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A씨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고, 검찰 역시 같은 판단으로 재판에 넘겼다.

법정에 선 A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살해에 고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A씨는 "(자신의)집으로 가던 중 마주 오던 B씨의 차를 우연히 발견했고, 잠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어 차를 멈추려고 했던 것일 뿐"이라며 "차를 막으면 B씨가 당연히 피할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이어 "예상과 달리 B씨가 차를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진행해오자 위험을 느끼고 충돌 직전 급하게 우측으로 핸들을 꺾어 사고를 피하고자 했으나, 피하지 못하고 충돌했을 뿐 B씨를 살해하려는 고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조현호)는 지난 14일 살인 및 교통방해치상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52)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기의 행위로 인해 타인의 사망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는 것만으로도 미필적 고의로 인정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인용한 뒤 A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B씨의 거주지에서 마산면 방향으로 쏘렌토 승용차를 운전해 가던 중 사고 발생 지점으로부터 약 150미터 전 지점에서 반대 차로에서 오던 B씨의 모닝을 발견했다.

A씨는 충돌 1초 전 갑자기 차의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좌측으로 핸들을 꺾어 충돌 0.5초 전에는 가속페달 변위량이 99%, 조향핸들 각도가 35도가 됐다.

충돌 0.5초 전에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다시 우측으로 조향해 121km/h의 속도로 B씨의 모닝을 충돌했다. 충돌 당시 쏘렌토의 조향핸들 각도는 –35도였다.

재판부는 A씨가 주장한 'B씨가 차를 피할 줄 알았다'는 주장에 대해 이러한 증거를 들어 "A씨가 충돌을 피해 원래 차선으로 복귀하고자 했다면 핸들을 더 많이 우측으로 조향했어야 하는 점과 사람은 자동차 충돌 시 본능적으로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A씨가 원래의 차로로 복귀해 충돌을 피하고자 할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사고가 발생한 편도 1차선의 도로 옆으로 배수로와 제방이 있어 B씨가 중앙선을 깊숙이 침범해 다가오는 A씨의 차량을 피할 공간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차를 피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로 "A씨는 차 충돌로 B씨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2차 충돌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피하거나 멈출 겨를 없이 충돌해 중한 상해를 발생시켰음에도, 단순히 피할 줄 알았다식의 책임을 돌리는 태도를 보이며 합의 또한 이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모든 사건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양형 조건을 고려하면 피고인에 대한 중한 형의 선고가 필요해 보인다"면서 "A씨의 모든 범행 혐의에 대해서 유죄로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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