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경제 세계사] 미래 노동시장,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까

오형규 2021. 4. 19. 0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제사 이야기
(29) 골든칼라와 실리콘칼라가 이끌어 갈 노동의 미래
4차 산업혁명은 지금은 상상조차 못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사진은 현대자동차의 로봇 개 ‘스팟’. 한경DB


영어권 사람들은 딱딱한 경제 용어를 색깔을 넣은 비유적 표현으로 바꿔 쓰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테면 해고 통지서를 뜻하는 핑크슬립, 행정 편의주의를 비유한 레드테이프, 간단히 점심을 먹으며 하는 브라운백미팅 같은 것이 그런 예다. 이런 언어 습관은 노동 형태를 구분할 때도 널리 이용된다. 흰 셔츠를 입는 사무직을 화이트칼라, 푸른 계통의 작업복을 입는 생산직을 블루칼라로 구분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업에서는 이런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레이칼라다. 공정이 자동화·첨단화되면서 생산직도 반복적인 노동이 아니라 전문 지식과 기술을 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높은 교육 수준과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관리와 생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사람이 필요해졌다. 이들이 그레이칼라다. 보통 엔지니어를 말한다.

 ‘정글의 법칙’과 하루 8시간 근무

TV 프로그램인 ‘정글의 법칙’을 보면 어디를 가나 출연자의 일과가 비슷하다. 하루 종일 먹거리를 찾아 헤매고, 불을 피우고, 잠잘 곳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인류는 대부분 먹고 사는 데 하루를 바쳤다. 수렵·채집시대와 농경시대는 물론 18세기 근대까지도 생산의 원천은 ‘근육’이었다.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사람과 동물의 근육에 의존해 단순재생산을 되풀이했다.

이런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난 것은 19세기 이후 기술문명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이다. 생산의 원천이 인간의 근육에서 기계로 바뀌며 획기적인 확대 재생산이 일어났다. 기계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레저라는 말은 근대까지도 귀족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현대 노동자의 소비 수준은 17세기 베르사유 궁전의 귀족보다 낫다고 할 정도다.

20세기 말 생산수단에 또다시 변혁이 일어났다. 1980년대 이후 컴퓨터 보급,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으로 3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화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골든칼라와 실리콘칼라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노동자는 블루칼라처럼 손에 기름때를 묻히지도 않고 화이트칼라처럼 서류에 파묻혀 살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낸다. 뉴욕타임스는 이처럼 전문 기술직에 종사하는 지식노동자를 골든칼라라 명명했다. 골든칼라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언급한 지식노동자와도 일맥상통한다.

2000년을 전후로 세계적으로 벤처 열풍이 불면서 과거의 노동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소득을 올리는 더욱 고도화된 두뇌 노동자가 출현했다. 이들은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최첨단 기술, 창의적 아이디어로 창업해 거대 기업을 일구면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들을 실리콘칼라라고 부른다.

본래 실리콘칼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미국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대체할 21세기 기계 노동자라는 의미로 만든 신조어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구현하는 핵심 물질인 실리콘처럼 복잡한 계산식을 순식간에 푸는 컴퓨터나 인공지능을 기계 노동자로 칭한 것이다. 그러나 벤처 열풍을 거치면서 실리콘칼라는 컴퓨터처럼 열심히 일하는 두뇌 노동자를 지칭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뛰어난 컴퓨터 실력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21세기형 고급 두뇌 노동자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선전 등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은 골든칼라, 실리콘칼라가 이끌어간다. 미래학자들은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조직이 미래에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노동의 종말인가, 경계의 해체인가?

리프킨은 노동의 미래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기계와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해 21세기 중반에는 블루칼라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18~19세기 산업혁명 이래 생산을 촉진하고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 기계와 무생물의 에너지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최초의 자동화 물결이 블루칼라에 충격을 주었다면 새로운 변화는 기업의 중간층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사무실은 지능 기계(컴퓨터, 인공지능)에 의해 혁신되고, 전문 영역과 교육 및 예술 분야까지 잠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는데 사람들이 일할 일자리는 필요한 딜레마에 접어들었고,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즉 ‘노동의 종말’이 다가오고 가까운 미래에 제2의 러다이트운동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요지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리프킨의 주장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은 일자리 공포를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수년 내에 15개국에서 일자리 500만 개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2개 회원국에서 14% 정도의 일자리만 자동화될 수 있으며 로봇이 일자리를 대폭 잠식할 것이라는 예측은 과장이라고 분석했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로만 구분되던 세상에 그레이칼라, 골든칼라, 실리콘칼라 등 새로운 유형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익숙했던 각종 경계선이 해체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사를 돌이켜보면 생산 수단의 혁신적인 변화는 일자리에 충격을 줬지만 전에 없던 무수한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인간은 항상 변화에 적응하는 존재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 종말이 온다는 무수한 예측이 하나라도 들어맞았다면 지금 인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은 상상조차 못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육체노동자, 사무노동자, 지식노동자 등 산업과 기술 발전에 따라 노동의 형태가 달라지는 이유는 왜일까.

②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등에 밀려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까, 아니면 이들이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만들어질까.

③ 4차에 이어 5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면 이를 이끌 근로자들은 무슨 칼라라 불러야 하며 그들의 근로 형태는 어떠할까.

경제지 네이버 구독 첫 400만, 한국경제 받아보세요
한국경제앱 다운받고 ‘암호화폐’ 받아가세요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