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공기관 '낙하산' 245명, 연봉 182억원 챙겨
(시사저널=조해수·유지만·공성윤 기자)
350개 공공기관 중 140개 기관에 245명의 '낙하산'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연봉(2020년 기준)은 182억원에 이른다. 1인당 약 7400만원의 연봉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방만 경영으로 인한 공공기관 부채(2019년 기준)는 한 해 국가 예산과 맞먹는 525조원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영향력으로 임명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들이 경영 능력과 전문성을 결여한 채 공공기관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낙하산 문제가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올해 전체 공공기관 중 절반 이상의 기관장(197명)이 교체된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권 막바지에도 대규모 낙하산 인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시사저널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기반으로, 350개 공공기관의 기관장·상임이사·비상임이사·상임감사·비상임감사 등 임원급 2795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임기가 올해까지 이어진 모든 임원을 대상으로 했다.알리오에 공시를 올리지 않은 몇몇 기관은 제외했다. 이 중 더불어민주당(민주당)·청와대·대선 캠프·참여정부 출신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참여연대 등 친(親)정부 성향 단체 출신을 분류했다. 이에 따라 공기업 36개 중 28개 기관 63명, 준정부기관 96개 중 45개 기관 76명, 기타 공공기관 218개 중 68개 기관 107명(준정부기관 겸임자 1명 포함)의 낙하산을 확인했다. 이와는 별도로 국책연구기관은 74개 중 21개 기관 28명이다. 이들의 연봉을 지난해 기준으로 계산하면 181억9400만원이다.
낙하산이 낙하산을 임명하는 악순환
'공정'은 시대적 화두다. 낙하산 논란은 공정과 직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삼고초려해서 유능한 인재에게 일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취임 초 여야 4당 대표에게 "공기업 낙하산·보은 인사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낙하산 실태와 그로 인한 문제는 김우남 한국마사회장을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 3선 의원(17~19대) 출신인 김 회장은 19대 국회 때 마사회를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위 위원장을 지냈다. 그랬던 그가 올해 2월 마사회장으로 취임했다. 김 회장은 오자마자 자신의 보좌관을 비서실장으로 특채하라고 지시했다. 인사 담당자가 반대하자, 김 회장은 "이 XX야 내가 12년 국회의원을 그냥 한 줄 알아 이 자식아" "정부 지침이든 나발이든 이 XX야 법적 근거는 이 자식아 저 마사회법이 우선이지, XX야" "내가 책임질 일이지 씨X. 니가 방해할 일은 아니잖아. 천하의 나쁜 놈의 XX야!"라고 폭언을 했다. 김 회장과 함께 정기환 상임감사(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도 낙하산으로 분류된다. 둘 다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
낙하산이 낙하산을 또다시 채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공공기관이 제대로 운영될 리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4월5일 발간한 '공공기관의 부채 현황과 재무건전성 제고 방안'을 통해 "2019년 말 공공기관 부채는 525조1000억원으로 2018년 말(503조7000억원)에 비해 21조4000억원(4.2%)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국가 예산 약 558조원과 맞먹는 규모다.
입법조사처는 부채 증가의 이유로 '방만 경영'을 꼽았다. 방만 경영의 뒤에는 낙하산 인사가 있다. 부채가 가장 빠르게 늘어난 기관은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5개사다. 이들 공기업은 1년 만에 부채가 15조8000억원 급증했다.
5개사의 낙하산 실태를 살펴보면,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최승국 비상임이사(문재인 후보 중앙선대위 시민캠프 공동대표)를 꼽을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에는 채희봉 사장(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남영주 상임이사(참여정부 민정비서관), 전상헌 비상임이사(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오선희 비상임이사(조국 전 장관 법무부 검찰개혁위원), 김의현 비상임이사(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등이 있다. 한국석유공사 김택환 비상임이사(민주당 총선 공천 신청자,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대한석탄공사 김경수 상임감사(민주당 사무부총장) 등도 낙하산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적게는 3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4000여만원을 챙겼다.
금융 공기업에도 곳곳 포진
5개 에너지 공기업과 함께 12개 중점관리 기관에 포함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 예금보험공사, 한국장학재단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12개사는 전체 공공기관 부채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땅 투기와 전관 특혜 의혹 등이 터지면서 해체론까지 대두된 LH에는 허정도 상임감사(문재인 후보 경남선대위 상임공동위원장), 김정호(부산인권센터 운영위원)·윤석인(박원순 선대위 희망캠프 자문위원, 한겨레신문 기자)·전숙희(와이즈건축사무소(노무현 시민센터 설계사 대표)) 비상임이사 등이 눈에 띈다. 지난해 기준 상임감사는 1억원, 비상임이사들은 3000만원씩 받아갔다. 그러나 LH의 부채는 126조6800억원(2019년 기준), 부채비율은 250%를 넘어선 상태다.
한국철도공사에서는 김정근(문재인 후보 노동특보)·이윤정(문재인 후보 부동산정책특위 위원장)·강주언(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박공우(17대 총선 열린우리당 후보) 비상임이사 등이 30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예금보험공사의 경우 위성백 사장(민주당 기획재정위 수석전문위원), 이한규 상임감사(민주당 정책위 정책실장), 선종문(문재인 후보 정무특보)·이성철(한국일보 콘텐츠 본부장) 비상임이사 등이 재직하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에는 이정우 이사장(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이승천 상임감사(정세균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 박병춘(문재인 후보 대구·경북 지역 대학교수 지지선언)·홍태희(광주·전남 지역 교수 시국선언) 비상임이사 등이 포진해 있다.
금융 공공기관의 낙하산 실태도 심각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경우, 이동윤 상임감사(문재인 후보 부산선대위 대외협력단장), 박정배 상임이사(부산광역시 사법경찰과 수사팀장), 손봉상(민주당 부산 사상구의원) 비상임이사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김종철 상임감사(문재인 캠프 법률자문)-나명현 비상임이사(달빛포럼 대표), 한국자산관리공사 박영미(민주당 중구영도구 지역위원장)·박상현(민주당 부산시당 오륙도연구소 부소장) 비상임이사, 한국산업은행 이동걸 회장(문재인 캠프 비상경제대책단)-김남준(법무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비상임이사-이윤(인천 테크노파크 원장)·육동한(민주당 21대 총선 후보) 비상임이사, 중소기업은행 이승재 비상임이사(참여정부 해양경찰청장), 한국예탁결제원 이명호 사장(민주당 정책위 수석전문위원) 등이 낙하산으로 분류된다.
정권의 무리한 정책, 공공기관에 떠맡겨
중장기 정책을 설계하는 '싱크탱크'인 국책연구기관 역시 다르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 최정표 원장(문재인 후보 싱크탱크 국민성장 정책공간 경제분과위원장),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박혜자 원장(민주당 전 국회의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김유찬 원장(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인섭 원장(법무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국토연구원 강현수 원장(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임현진 이사장(참여정부 통일부·국방부·교육부 정책자문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문미옥 원장(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한국노동연구원 황덕순 원장(청와대 일자리 수석) 등이 낙하산 기관장으로 지목된다.
2009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기획재정부 산하에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설치됐고, 공공기관별로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만들어졌다. 임추위가 기관장 등 공공기관 임원 후보자를 공개 모집해 후보자를 추천하면 주무기관장이나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와 관련해 사회진보연대는 "공공기관 임원은 대부분 정치적 영향에 따라 뽑힌다. 전문성도 없으면서 공공기관 임원 자리를 선거 승리의 노획물로 가져가는 것"이라면서 "수천 명의 낙하산 인사가 대선, 총선, 지선 등 선거 시기만 되면 특정 후보의 캠프에 합류해 또 다른 자리를 노린다. '문파' '대깨문' 등으로 불리는 문재인 정권의 열정적 지지자 중 상당수는 이런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낙하산 인사는 정권의 무리한 정책을 공공기관에 떠맡기기 위해서도 사용된다"면서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이다. 공공기관은 40개 프로젝트로 5년간 18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 지원은 40조원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한국판 뉴딜의 핵심 중 하나인 에너지 사업에서 정권과 유착한 인사들의 특혜·비리가 벌써부터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혁주 교수는 "캠프 인사, 코드 인사, 청와대 인사 등과 같이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임용됐다. 이와 같은 낙하산 문제는 과거 정부에 비해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 심화됐다. 이렇게 되면 차기 정부에서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구태의 악습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핵심은 정권이 부당한 개입을 하지 않고 적법 절차에 따라 전문성 있는 적임자를 인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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