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된 이산가족 재산 100억여원.."처벌할 길 없다"
관리엔 구멍..임의사용해도 처벌 못해
'참고인 불명' 형사처벌도 불가능
법무부 "개인영역..법 개정 논의 중"
당시 윤씨의 ‘북한 주민 권리’ 찾기 노력의 진실성 여부가 소송의 쟁점으로 꼽혔다. 지난 2011년 7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조정이 성립되면서 북한 주민의 남한 내 재산권이 처음으로 인정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2년 ‘남북가족특례법’도 제정됐다. 정부가 법원이 선임한 재산관리인에게 정기 보고를 받으며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하지만 남북가족특례법을 두고 사실상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산의 상속권자가 재산관리인과 짜고 재산을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수사도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재산 보고를 받는 법무부의 선제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윤씨의 북한 남매들이 윤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부당이득금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냈다. 윤씨가 과거 동생들에게 받은 위임장을 토대로 북한 남매 몫의 현금 25억원과 10억5000만원 상당의 상업용 부동산을 윤씨 소유의 17억원짜리 주택과 맞바꾸자는 내용의 계약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위 계약서 인정됐지만 관리엔 구멍
서울중앙지법 민사23부(홍진표 부장판사)는 이 계약은 무효인 데다 불공정하다고 보고 윤씨가 부당하게 얻은 이익을 토해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도 윤씨를 ‘악의의 수익자’로 판단했지만, 북한 남매 몫의 재산은 모두 매각된 상태여서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법 취지와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남북가족특례법은 북한주민이 상속이나 유증 등으로 소유하게 된 남한 내 재산의 효율적인 관리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가정법원에서 재산관리인이 파견되고, 재산관리인들은 매년 2월 법무부에 신고를 하도록 돼 있다.
법에 따라 임명된 북한 남매의 재산관리인인 조종환 변호사는 “북한주민이란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법무부에서) 관리를 단순히 보고서 한 번만 내고 끝일 수밖에 없나'하는 의문이 생긴다”며 “12년도 그 당시에 한 번만 들여다봤어도 재산이 훼손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사사건 처리의 부당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참고인 소환을 해야 수사가 시작될 수 있지만, 북한 주민이어서 현실적으로 소환 자체가 불가능하다. 해당 사건에 대해 지난 2018년 2월 경찰에 고소장이 접수됐지만 ‘참고인 중지’로 검찰에 송치됐다.
조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경찰서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재차 수사를 의뢰했지만, 올해 3월 “참고인 소재불명으로 수사중지 결정한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법무부가 윤씨와 유사한 사건 등에 대해 고소를 하거나 조사를 하도록 협조요청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훼손된 상속 재산을 확보하려는 길을 조금이라도 열기 위해서다.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도 침해한다는 문제도 있다. 법적으로 남한 내 북한 주민의 재산권이 인정되고 또 국가가 보호하겠다는 게 특례법의 취지이지만, 재산을 실질적으로 전혀 사용할 수도 보호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조 변호사는 “상속인들이 자유경제주의 등을 모르기 때문에 국가가 보호하는 것인데 상속권 자체가 박탈돼서는 안된다”며 “이 재산이 북한에 넘어갔을 때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함이라는 건 알겠지만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법무부는 재산권 영역이어서 국가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법무부는 지난 3월부터 남북가족특례법 개정위원회를 꾸리고 논의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률의 시행규칙 별표나 법상 쟁점 등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보완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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