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8세 아들 죽도록 때린 엄마..카메라로 감시한 애인
"시켜서 했다" 억울함 호소..징역 15년 불복해 상고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아들과 딸의 온몸에 피가 묻을 만큼 잔혹하게 학대해 결국 아들은 숨졌고, 딸은 치료를 받더라도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
지난 6일 항소심 재판부가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했을 때, A씨(38·여)는 고개를 숙인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어린 아들과 딸을 약 5개월간 잔혹하게 폭행해 결국 아들을 숨지게 한 사실을 A씨는 재판 내내 인정한다고 했지만, 항소까지 한 이유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억울함이었다.
A씨는 B씨(40)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녀들에게 매를 들지 않았다고 했다. B씨의 말을 거스르지 못한 것이 죄라는 주장인데, 아이들의 방을 피로 물들인 것은 모두 A씨 본인이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8살 아들 C군과 7살 딸 D양을 혼자 돌본던 A씨는 지난 2019년 7월 B씨와 연인관계로 만나기 시작했다.
직장 동료로 만나 이전부터 많은 의지가 됐던 B씨에게 A씨는 이런저런 고민들을 털어놓곤 했는데, 만난 뒤 자녀들 양육 문제를 상의한 일이 화근이 될 것이라곤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들은 B씨를 아빠라고 부를 만큼 믿고 따랐다. B씨는 A씨와 함께 학부모 자격으로 초등학교 선생님과 면담을 할 만큼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러나 2019년 11월 아이들의 생활습관을 바로잡겠다며 B씨가 집에 IP카메라를 설치하고부터 A씨 가정은 지옥으로 변했다.
B씨는 수시로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A씨에게 학대와 폭행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B씨는 "멍이 빠져야 하니 엉덩이와 허벅지를 돌아가며 때리고 줄넘기를 시켜라"라는 등 구체적으로 폭행 방법을 알려줬고, A씨는 그 말을 고스란히 실행에 옮겼다.
B씨의 지시 중에는 '이불정리 10, 5분 안에 밥 다 먹기 10, 정리정돈 50' 등을 적어 놓은 목록도 있었는데, 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적힌 숫자만큼 폭행하라는 의미였다.
A씨는 아이들을 빨랫방망이나 고무호스로 무자비하게 때리곤, 상처를 촬영해 B씨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카메라로는 자세하게 볼 수 없다"며 때리는 척만 한다는 B씨의 핀잔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어린 두 남매는 폭행을 피하기 위해 서로 거짓말을 하기로 말을 맞추거나 카메라 방향을 돌려놓기도 했지만, "확실하게 죽여 놓아라"는 B씨의 말에 폭행의 강도만 거세질 뿐이었다.
이렇게 약 5개월간 이어진 학대 끝에 두 발로 걷지도 못하던 C군은 2020년 3월 12일 오전 9시48분께 집에 방치된 채 외상성 쇼크로 숨을 거뒀고, 숨진 C군을 발견한 A씨가 경찰과 119에 신고하면서 이들의 범행이 드러났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지만, B씨의 지시로 범행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면 B씨는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책임을 모두 A씨에게 떠넘겼다.
A씨는 B씨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고, 이미 한 번 이혼해 B씨와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이 사건 1심을 심리한 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이들의 변론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고, 각각 징역 15년과 17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특히 카메라를 통해 모든 상황을 관찰하면서 학대를 지속 종용하고 지시한 B씨의 죄질이 더욱 나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뒤, 1심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항소심에 이르러 A씨는 B씨와의 재판 분리를 신청해 먼저 재판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B씨와 다르게 죄를 뉘우친 본인은 재판을 더이상 받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이혼한 뒤 만난 애인의 지시로 범행한 점은 참작할만한 사정이나, 도저히 정당화할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하자 A씨는 대법원 상고를 제기해 최후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끝까지 훈육을 돕기 위함이었다며 범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B씨는 오는 20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guse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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