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 들인 창신동 도시재생.."소방차도 못다녀요"

하지나 2021. 4.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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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도시재생]②서울형 도시재생 1호, 종로 창신
7년째 1100억..인구 줄고 노후도 72% '슬럼화'
동작구 본동, 한쪽은 재개발, 한쪽은 도시재생
△좁은 길을 따라서 노후화된 집들이 즐비해 있다.(사진=이데일리 하지나기자)
[이데일리 하지나 신수정 기자] “여기서 한번 살아보라고 했으면 좋겠어요.”(창신동에 25년째 거주 중인 송 모씨)

서울 1·4호선 환승역인 동대문역을 빠져 나와 북적북적한 골목시장을 지나자 한적한 주택가가 나온다. 2014년 서울시 1호 도시재생사업지구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 창신동이다. 공공이 나서 추진한 마중물 재생사업은 2017년 이미 마무리됐다.

하지만 좁은 길에 차 한대 지나가기 빠듯해 보인다. 머리 위로는 전기줄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져 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모세혈관처럼 펼쳐져 있는 길 위로 슬레이트와 기왓장을 지붕으로 한 낡고 허름한 집들이 빽빽히 줄 지어 있다. 한참 길을 따라 걷다보면 급경사가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다.

길에서 만난 주민 김 모씨(68세)는 “최근에도 불이 났는데 그나마 금방 불을 꺼서 다행이지 큰 일날 뻔 했다”고 말했다. 창신동에는 6m 도로가 없다. 그러다보니 소방차 등 구난차량의 진입이 어렵다.

강대선 창신동 공공재개발추진위원장은 “창신동은 노후도가 72%에 달한다”면서 “주민이 원하는 도로확장과 주차장 건립은 없고 봉제역사관, 산마루놀이터, 백남준기념관, 전망대 등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 전부”라고 지적했다.

창신동에는 마중물사업(200억원)을 비롯해 협력·연계사업(985억원)등 지금까지 1100억원 가량이 투입됐다. △봉제역사관 18억원 △백남준기념관 14억원 △채석장 전망대 7억6000만원 △산마루놀이터 27억원 △원각사도서관 23억6000만원 △주민공동이용시설(4개소) 65억원 등 마중물사업 전체 예산 중 78%를 건축비로 사용했다.

강 위원장은 “비가 온 다음날에 특히 하수구 악취가 올라온다”면서 “지하에 묻힌 배관이 삭아서 오물이 땅속으로 스며든 것인데, 소규모 하수관만 교체하고 말았다”고 답답해 했다. 창신동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237억원을 투입해 노후 하수관을 정비하고 있다.

△18억원을 투입해 건립된 봉제역사관(사진=이데일리 하지나기자)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지는 사이 창신동에는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베트남 사람들이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2016년 2만2845명이던 인구 수는 2020년 2만372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오히려 마을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창신동내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원래 살던 사람들은 불편해서 다 떠나고 70~80%는 세입자들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면서 “최근에는 베트남 사람끼리 싸움이 나서 칼부림까지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창신동 곳곳에는 베트남 음식점과 상점들이 눈길을 끌었다.

창신동 곳곳에 베트남 음식점들이 보인다.(사진=이데일리 하지나기자)
동작구 본동에는 공공재개발과 도시재생사업이 함께 진행 중이다. 한강에서 바라봤을 때 노량진 교회를 중심으로 왼쪽은 도시재생사업, 오른쪽은 공공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다.

2019년 ‘우리동네 살리기’ 유형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 중인 동작구 본동은 1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느끼는 변화는 미미하다. 서울시 최초의 한강변 구릉지형 저층주거지 재생모델을 목표로 한 탓에 후미진 골목과 계단형 통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경사 높은 언덕을 따라 차량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이 나 있다. 키가 작은 낡은 집들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대부분 단독주택인데다 지은 지 오래된 탓에 벽은 갈라지고 세월의 흔적을 담은 시멘트 계단은 곳곳이 부서져 있다.

동작구는 ‘한강과 역사를 품은 River Hill, 본동’을 비전으로 △누구나 살고 싶은 본동 △편안하고 거주하고 싶은 생활환경을 가진 본동 △주민들이 어울려 사는 본동 등 3대 목표를 수립했다.

하지만 낡은 주거지에는 나이든 어르신만이 남았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도시재생 협의체를 작년 4월부터 모집했지만, 거주자 대부분이 초고령인데다 300여명에 불과해 생활권자들도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지금의 도시재생사업에 불만이 많다. 인근 공원에서 만난 주민 신 모씨는 “인근 흑석동에는 재개발로 도로도 넓히고 집도 새로 짓는다고 하는데, 이 동네에 남은 건 낡은 집밖에 없다”며 “도시재생에 동의한 주민들은 몇몇에 불과했는데 이 사업을 누가 끌고 가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노들역 인근 공인중개소에서 만난 주민 박 씨는 “동작 실버타운 건축할 때 재개발을 해준다고 약속해줬었다”며 “재개발이 절실한 곳에 도시재생사업으로 지정할 수 없다고 하니 속이 탄다”고 토로했다.

도시재생사업 취소 요청서도 구청에 제출됐다. 도시재생사업이 주민들의 편의 개선과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어 인근 공공재개발과 묶어서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정재 동작구 본동 도시재생 반대위원회 대표는 “도시재생사업의 공청회는 물론 진행상황 역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며 “주민들의 불편이 개선되는 사업이 아니어서 취소돼야 하는데다 인근 동작구 본동 공공재개발과 함께 진행되지 않으면 개발이 불가능해 구청에 의견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인 서울 동작구 본동(사진=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하지나 (hjin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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