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스토킹 죗값' 10만원..'세모녀 비극' 다음날 형량 강화

김지현 기자 2021. 4.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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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해도 끝까지 순애보?..이젠 '스토킹'(下)
드라마 속 '심쿵'한 직진 짝사랑…현실에선 '스토킹' 입니다
#평소 차은상(여)씨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재력가 남성 최영도씨. 하지만 차씨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것을 안 최씨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면 다니는 학교에 가난한 형편과 어머니의 장애 사실을 알리겠다고 차씨를 협박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가게 앞이나 카페 안에서 기다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문강태씨(남)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동화작가 여성 고문영씨는 자신의 애정표현에도 문씨가 선을 긋자 얼마 전 그의 직장에까지 찾아갔다. “왜 여기왔냐”는 문씨의 물음에 고씨는 “보고 싶어 왔지”라고 답하고, 하루는 문씨가 옷을 갈아입고 있던 탈의실에 들이닥쳐 몸매를 감상한다. “원하는 게 뭐냐”는 물음엔 “너다. 내 눈에 예쁘면 돈으로 사야지, 아님 훔치던가"라고 말한다.

최영도와 고문영의 행동은 ‘스토킹’일까. 정답은 둘 다 ‘맞다’이다. 두 사례는 각각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SBS <상속자들>,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일부로 방영됐을 당시엔 해당 장면이 주인공들의 구애로 그려졌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탈의실 침입 장면은 방영 당시에도 문제가 됐다.

◇마음 안 받아준다고 협박하고…탈의실 무단침입


이처럼 드라마, 영화를 보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일방적인 구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상대가 거절해도 연락하고, 집 앞에 찾아가고, 마음을 표현하는 건 아직까지도 드라마 속 ‘심쿵’ 포인트로 꼽힌다. 극 중에서는 순애보, 짝사랑 등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공포안에 따르면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접근·따라다니거나 △주거지·직장 등에서 기다리거나 △연락 △물건을 보내는 등 불안감과 공포심을 야기하는 행위는 스토킹 범죄로 규정된다.

박성현 법률사무소 유 변호사는 위의 두 사례에 대해 전부 “명백한 스토킹”이라고 평가했다. 최영도의 경우엔 상대의 인적사항까지 알리겠다는 협박을 한 것에 기반해 강요죄 적용도 가능하다. 피해자인 차은상이 재력을 가진 최영도의 협박에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면 민사소송의 대상도 된다.

고문영도 마찬가지다. 특히 직장을 찾아가 상대의 의사와 반하게 접촉하는 것은 대표적인 스토킹이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 처벌법’에 따르면 고문영은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순정 빙자한 스토킹·폭력적 장면들…"왜곡된 인식 심어줄 수 있어"


그동안 스토킹 행위에 관해 사회가 둔감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법적으로도 처벌 규정이 없어 ‘지속적 괴롭힘’ 정도로 분류됐다. 경범죄로 ‘1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의 정도의 처벌에만 그쳤다.

미디어도 스토킹에 무뎠다. 2018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실시한 모니터링에 따르면,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 등 9개 방송사에서 방영된 120개 드라마(총 2946편)에서 ‘강제적 신체 접촉’이 425건으로 가장 많았고 ‘스토킹’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경우도 62건이 있었다.

가령 KBS2TV에서 방영됐던 <란제리 소녀시대>에선 고백하는 학교 선배에게 여주인공이 “이러지 마세요”라며 거절하지만 남주인공은 오히려 다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호소한다. 해당 장면의 끝은 되려 아름다운 음악으로 종결됐다. SBS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도 남주인공이 거절 의사를 밝힌 여주인공의 집에 무단 침입해 “왜 울고 다니냐”고 윽박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이에 대해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토킹을 판단하는 기준은 행위가 벌어진 당시 서로 좋아하고 있었느냐, 한쪽만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냐다”라며 “드라마 속에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현·오진영 기자

22년 늦은 '스토킹처벌법'…"김태현 막을 수 있었다"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태현(25)의 스토킹 관련 처벌은 범칙금 최대 10만원에 불과하다. 형량을 강화한 스토킹처벌법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됐지만 9월부터 시행돼 소급적용이 안되기 때문이다. 여성단체들은 해당 법안이 20여년간 국회서 묵혀있지 않았다면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끝내 살인으로 이어진 '스토킹'…죗값은 10만원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태현의 스토킹 혐의에 대한 처벌 수위는 최대 10만원 이하의 범칙금에 그친다. 2013년부터 스토킹이 범죄로 처벌받기 시작했지만 단순히 쫓아다니는 행위는 경범죄에 분류돼서다.

실제로 경찰이 김태현에 적용한 혐의는 살인 및 절도, 특수 주거침입 등 5개지만 이중 스토킹 관련 죄목은 경범죄처벌법위반(지속적 괴롭힘)이다. 경찰은 브리핑에서 김태현이 스토킹을 한 것은 맞으나, 형량을 강화한 스토킹처벌법이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돼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스토킹이 경범죄로 분류되면서 그 처벌 수위는 장난전화·무전취식·호객행위와 같은 수준이다. 범칙금 20만원 이하인 암표매매와 거짓광고보다 낮은데 피해자가 스토킹 거절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이 범칙금마저도 부과되지 않을 수 있다. '세모녀 사건'처럼 특수 주거침입에 협박, 끝내 살인 등의 범죄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 시작인 스토킹에 대한 처벌은 경미한 셈이다.

제도적 방치 속 스토킹 범죄는 매년 증가한다. 2019년 583건이 검거되면서 201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 평균 10건 이상이 신고되지만 그 중 한 건만 처벌된다.

◇'형량 강화' 스토킹처벌법 9월부터…"너무 늦었다" 비판

국회는 '세모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스토킹처벌법을 통과시켰다. 1999년 첫 발의 이후 22년 만이다. 그동안 '스토킹이 애정표현·구애와 구분하기 어렵다,' '스토킹 횟수 등 처벌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기 어렵다' 등의 이유로 계류됐다.

9월부터 시행되는 이 법안은 스토킹범죄 가해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찰은 피해자·피해자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통신이용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

범칙금 10만원에 비해 형량은 강화되고, 범죄예방 수단도 늘어난 셈이다. 좀 더 빨리 법안이 통과됐더라면 살인으로 번진 스토킹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나오는 부분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스토킹이 범죄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없었다"면서 "스토킹을 과한 애정표현, 구애 행위 정도로 인식하면서 김태현 사건에서도 실제로 피해자가 김태현의 남자친구였다는 등의 기사까지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제도를 통해 이같은 인식을 견인할 수 있는데 1년 전에라도 통과가 됐다면 김태현은 막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변호사)도 스토킹에 대해 "제도적 방치"라며 '10번 찍어서 안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처럼 한국 사회는 스토킹을 연인 관계 등에 있을 수 있는, 용인 가능한 행위로 치부했었다"고 했다. 이어 "최근 스토킹이 범죄의 징표가 되면서 입법이 되긴 했지만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통과된 법안이 여론에 밀려 급조한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죄를 묻지 않는) 조항이 유지되면서다. 또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자가 스토킹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직접 법원에 보호명령을 신청할 수 없는데다가 경찰이 하더라도 너무 오래 걸린다는 분석이다.

장 이사는 "법원을 통하면 더딜 수밖에 없다"면서 "실무를 맡은 경찰이 현장에서 즉각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실효성 있고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윤김 교수도 "(접근금지 조치가)한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한데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분리하고 위반시 과태료 이상의 처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한결 기자

'싫다는데 인스타에 자꾸 댓글·DM'…사이버 스토킹 입니다
집 앞, 직장, 학교 등에 직접 찾아가고 쫓아다니는 것만이 스토킹이 아니다. 애정을 빙자해 SNS나 메일을 통해 지속해서 메시지나 사진, 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전송하는 것도 스토킹이다. '사이버(온라인) 스토킹'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0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성인 중 사이버폭력 중 스토킹을 경험한 비율은 42.3%에 달한다. 전년보다 2.1%P(가해+피해 경험률) 늘어난 수준이다.

해당 조사에서는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반복적으로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이메일이나 문자(쪽지)를 보내는 것 △블로그나 SNS 등에 방문해 댓글 등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를 스토킹으로 봤다.


사이버 스토킹의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디지털기기를 이용해 피해자의 허가 없이 △메시지(글, 영상, 음향 등)를 보내는 행위 △개인정보를 수집이나 이용하는 행위 △앞선 두 행위를 통해 안전·자유를 침해하거나 공포감을 주는 행위 등을 사이버 스토킹 유형으로 만들어 조사했다.

총 10가지의 사이버 스토킹 유형을 만들었는데, 응답자의 10명 중 8명(79.2%)이 스토킹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개인정보를 알아내 저장한 것이 56.8%(복수응답)로 가장 많았고, 이어 △사생활 알아내기(56.8%) △원하지 않은 메시지 보내기(54%) 순이었다.

피해자를 사칭(18.1%)하거나 정보를 다른 범죄에 이용한 경우(14.6%)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사생활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힘든 사이버 스토킹 유형으로 꼽았다. 사이버 스토킹의 피해가 자기 주변 사람에게까지 미쳤다고 답한 사람도 73.5%나 됐다.

과거 사이버 스토킹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서만 처벌이 됐으나 이젠 새롭게 제정된 스토킹 처벌법의 적용을 받는다. 제정안은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물건·글·말·영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도 스토킹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한계점도 있다. 익명의 스토커가 보낸 SNS 메시지를 추적하기 쉽지 않다. 특히 SNS의 서버가 해외에 있으면 가해자를 특정하고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메일, SNS, 카톡 등의 경우 개인 간 주고받는 정보라 실태 파악을 하는 것이 힘든 경우도 적지 않다"며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에 대해 수사기관에 쉽게 알리고, 접수처리가 신속하게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또 "해외 업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수사 공조도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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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flow@mt.co.kr,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정한결 기자 han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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