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워치]탄소 무단투기 이제 막을까
기업 "이중과세..인센티브로 탄소중립 유도해야"
우리나라는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한 나라입니다. 지난 1995년부터 쓰레기를 버리려면 돈을 주고 쓰레기봉투를 사서 쓰레기를 담아 버려야 합니다. 몰래 버리다가 걸리면 봉투 가격보다 훨씬 비싼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쓰레기봉투에 담지 않고 아무 곳에나 버려오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탄소입니다. 최근에는 무분별한 탄소배출이 불러온 기후변화를 막자는 데 전 세계가 공감하고 관련 정책을 도입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제 탄소에도 쓰레기봉투를 씌워야 하는 시대가 될 예정입니다. 탄소세 도입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탄소세는 탄소를 배출하는 석유·석탄 등 각종 화석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 정부·국회, 탄소세 도입 준비
지난 3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탄소세를 도입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1톤당 4만원에서 향후 1톤당 8만원 수준의 탄소세를 도입하는 제안입니다.
탄소세 도입 주장은 생뚱맞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정부는 탄소세 도입을 위해 각계의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보면 탄소세 등을 통해 기후대응기금을 만들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탄소세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제도 시행 과정과 그에 따른 역효과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모델을 구상하겠다는 게 기재부의 발표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 탄소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상황이네요. 도입 가능성이 매우 커 보입니다. 그런데 탄소세를 도입하면서까지 탄소배출을 막아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도무지 탄소가 줄지를 않습니다. 한국은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국제적인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나라입니다.
협약을 맺은 지 5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탄소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6억9250만톤 수준이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2018년 7억2760만톤으로 늘었습니다.
#탄소세 도입은 탄소국경세 대비 위해 필요
늘어나는 탄소배출만 문제가 아닙니다. 탄소세 도입은 탄소국경세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탄소국경세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배출량이 적은 국가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수출할 때 적용하는 무역관세입니다.
탄소국경세의 효과는 탄소 배출원이 환경 규제가 약한 국가로 이전할 때 발생하는 탄소 누출 현상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탄소세만 있고 탄소국경세가 없다면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은 탄소규제가 약한 나라로 설비를 옮길 겁니다. 이런 상황을 막자는 겁니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이미 밝혔습니다. EU는 2018년 발효판 '유럽 그린딜' 전략을 통해 늦어도 2023년부터는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미국마저 탄소국경세 도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파리협약 복귀를 선언한 뒤 다양한 환경분야 정책이 논의되는 데 탄소국경세도 그중 하나입니다.
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은 우리 정부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대비가 필요합니다. 결국 탄소배출을 줄이는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 기업은 반발…대비 없다면 2030년 세부담 1.8조원
당장 기업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최근 EY한영회계법인이 발간한 '기후변화 규제가 한국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EU, 미국 그리고 중국이 모두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2023년 한국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탄소국경세는 약 6100억원 수준입니다. 2030년에는 그 금액이 1조8700억원까지 증가한다고 합니다. 특히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업입장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가 운영되는 상황에서 탄소세까지 도입되면 이중과세란 지적이 나옵니다.
이미 국내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탄소배출에 따른 비용을 내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배출허용총량이 감소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탄소세 도입 부담이 크다는 내용의 자료를 배포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배출이 많은 기업에 세금을 매길 것이 아니라 배출이 적은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미 그럴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탄소배출은 줄지 않는데 해외 주요 국가의 탄소국경세 도입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갈 길이 멉니다. 갈 시간은 없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둘 다 있습니다. 둘 다 쓰는 게 일찍 도착하는 방법입니다. 기업이 탄소세 도입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강현창 (khc@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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