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음'의 시작..'한칼'이 말을 겁니다
임인택 2021. 4. 19. 05:06
한겨레 칼럼니스트 선정
응달의 통찰과 감성도 찾아 연결하겠다는 ‘저널리음’(저널+이음)을 취지로 시작된 ‘한겨레 칼럼니스트’ 공모에 지난 2월 접수된 기획안은 모두 339편(필자군 450여명)이었다. 이 가운데 9개 기획안이 선별돼, 향후 다양한 칼럼으로 전개되며 독자청중과 만날 예정이다. 역량을 갖춘 지원자들이 상당했으나, 첫 공모 취지에 맞춰 제한적으로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1·2차 심사, 3차 실무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이번에 인연을 맺지 못한 분들께도 사안에 따라 청탁, 추가 기획 등을 제안드리며 줄곧 연결을 꾀하려고 한다. 뜨거운 관심과 지원에 깊이 감사드린다.
아래의 내용은 지원서와 인터뷰 등에 기반한 것으로, 제안서 콘셉트를 고려하되 향후 필자와의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칼럼 코너와 방향을 확정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삶들
■ 이름: 램지(필명·31)
- 현재: 부동산 관련 종사자
- 지원 이유: 욕망에 가려져 잘 보지 못하는 삶이 부동산 현장엔 특히 많다. 저명한 이들이 무차별 개발은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 직접 보고 겪은 현장에서 그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아파트나 개발에 몰두하는 사이 잃어버리는 것들, 간과하는 것들을 전하고 싶다.
- 본보기 칼럼의 문장: “오씨와 성씨의 ‘집’은 … ‘더미’에 가까운 형태다. (…) 잘 때도 앉아서 잤다. (…) 소변은 대충, 대변은 우산으로 가리고 본 뒤 삽으로 퍼서 하수도에 버렸다. (…) 악에 받쳐 집을 지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 나는 지난해 10월 그들의 집을 발견했다. (…) 공사장 인부 말고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곳인데….”(‘삼각지 사각지대’)
- 한칼 낙선자에게: 싱글맘,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이 한칼에 응모했다는 소식에 마음을 접었었다. 그들의 희망과 절망에 마이크를 줘야 하지 않나. 제 존재는 덜 시급해 보이기도 했다. 제가 칼럼에 담아낼 삶들을 보고 선발해줬다고 생각한다. 중심에서 조금 비껴간, 우리가 바삐 사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삶들을 전해드리겠다.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주인공들에게
■ 이름: 방혜린(32)
- 현재: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예비역 해병대 대위)
- 지원 이유: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축구 얘기, 군대 얘기, 군대 가서 축구 한 얘기라는데 주변인들은 다들 이상하게 제가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들을 너무 좋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종종 쓴 적 있다. ‘썰’을 풀다가 불현듯 여성으로서 경험하고 목격한 군대 문화, 초남성주의 사회에서의 여성의 생존, ‘문화’로 포장 용인되어 온 폭력에 대해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더 나은 점에 대해 고민하는 주요한 ‘문제’로서 군대가 다루어지기를 희망한다.
- 주특기: (군복무 때) 보병, (전역 후) 인권·성폭력 상담,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부분 중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걸맞은 아이티(IT) 지식 보유, 사회인 야구·농구 경력 정도….
- 흔한 세계에게: 뭇 남성들이 추억하고자 하는 ‘진짜 사나이’와 ‘강철부대’ 이야기가 아닌,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존재들의 이야기가 전해졌으면 한다. 이 사회를 균열 내기 위해 노력 중인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전달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습니다.
집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에게
■ 이름: 송혜현(26)
- 현재: 대학원 석사과정(미디어)
- 지원 이유: 10대 때부터 기숙사와 원룸, 셰어하우스에서 살아왔다. 해외에서 살기도 했었지만 서울에서 사는 일이 그보다 더 힘들다. 매번 집과 싸워서 지고, 집을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일이 반복된다. 집이 곧 방이고 방이 곧 집인 원룸이라도, 집이 있음에 감사하고 아늑함에 굴복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 지금의 공간: 6.5평 월세. 집은 창조의 공간이자 좁은 면적과 소음으로 인한 전쟁터이다.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
- 집을 포기하는 이에게: 월세라도, 방이 곧 집이라도, 1인가구로서 나름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잘 곳이 있는 게 감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만족이라는 게 정말 만족스러워서 느끼는 만족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식이 생기지만 실은 문제 자체를 타파할 능력이 없어서 포기하고 타협하는 대가로 얻은 감정이 아닐까. 지금도 괜찮지만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해요. 함께 읽어주세요.
온라인 커뮤니티와 MZ세대의 세계
■ 이름: 이자연(32)
- 현재: 퇴사자
- 지원 이유: 우리의 몸은 실존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그렇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유의미한 사건을 포착해서 엠제트(MZ)세대 여성들의 문화와 가치관 변화, 사고방식 등을 살펴보고 싶다. 아무도 저장하지도 아카이빙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본보기 칼럼의 문장: “‘커뮤사세’는 민폐녀 공식과 교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의 행동이 민폐인지 아닌지 눈치 보게 하다가 이내 (…) 사고 범위를 좁힌다. (…) 남자들은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데, 여자들은 커뮤사세 알고리즘을 작동시켜서 해도 되는지 하면 안 되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었다.” (‘왜 자꾸 커뮤사세를 말하나요?’)
- 당신과 다른 당신에게: 온라인 커뮤니티 내 논란이 현실로 번지거나, 현실 문제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갈무리되는 걸 보면 두 상반된 세계가 평행이론처럼 복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데칼코마니에서 툭 튀어나온 현상을 찾아내 해석해보고자 한다. 함부로 일반화하거나 재단하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이 기록이 동세대 관점 다양성에 기여하길 바랍니다.
세상의 주변부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 이름: 정나리(42)
- 현재: 대구대 조교수
- 지원 이유: 어디서 영감을 얻어야 할지 모를 때, 사방이 꽉 막혀 답답할 때 일주일째 쌓아두었던 <한겨레>를 한꺼번에 읽으면 어디선가 꼭 물꼬가 트인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힙’한 일들은 서울에서만 일어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내가 연결되어 있고, 결코 중심부의 ‘중요’하거나 ‘훌륭’한 인사들을 떠받치고 있는 황량하고 슬픈 주변부가 아니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데 일조하고 싶다.
- 지금의 위치: (15년여) 살던 동네는 80~90년대 나지막한 주공아파트들이 몇개 단지를 이루는 곳으로, 지척에 낙동강이 흐른다. 해 질 녘이 아름다운 동네였다면 (최근) 이사 온 곳은 해 뜰 때가 좋다. 목요일이면 입주자들 모두 ‘도시’의 집으로 떠나 텅 비어버리는 데지만….
- 거기 독자에게: 일상에서 마주(또는 행)하게 되는 무심한 폭력적 순간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삶의 장면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남루할지언정 결코 존엄을 타협하지 않는 생의 모습을 목격할 때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는데 이리 응답을 받아 기쁩니다.
청년여성이 진보에게
■ 이름: 강도희(26)·최연진(29)
- 현재: 대학원 석·박사 과정(국어국문학)
- 지원 이유: 재작년부터 90년대생 담론이 범람했음에도 정작 당사자의 입으로 말해지지 않는 것이 불편했다. 같은 시대를 다르게 살았던 청년들의 경험 차는 삭제되거나 20대 남성 대 래디컬 페미니즘이라는 구도 안에서만 말해진다. 청년이라는 기표가 사실은 이성애-남성 중심의 논의를 가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 본보기 칼럼 제목: ‘선생님 저희 자살했는데 왜 수업하세요’ ‘‘서연이 시리즈’를 읽고 자란 소녀들은’
- 청년여성이 진보에게: “월 1000만원씩 들어오면 뭘 할 것인가? 꿈이 무엇이냐?” 묻는 30대 후반의 상사에게 20대 여자 직원들이 모여 “월에 1000만원이 어차피 안 생길 텐데 그런 꿈을 왜 꿔야 하는지” 의아해하던 게 인상적이었고 이 삶의 감각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걸까 자주 묻게 된다. 진보 중 특히 청년여성의 문제의식을 단순히 남성만큼 기회를 ‘아직 얻지 못해’ 억울한, 우리 사회 ‘특수한’ 집단의 한 목소리이므로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보편과 특수의 총체적 인식부터 재고해보고 싶다. 그분들이 독자가 되어주시면 좋겠다.
엄마와 아들의 ‘귀농서신’
■ 이름: 선무영(31)·조금숙(63)
- 현재: 서울시립대 로스쿨 졸업, 귀농 10년차
- 지원 이유: 시골에서 모험적인 삶을 살고자 합니다. 막연히 내려가 살면 좋겠다고 생각해 먼저 귀농을 한 어머님과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농촌이 사라진다는 걱정과 도시의 비싼 집값을 어찌 견딜까 하는 걱정…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들을 모두와 나누면 좋을 것 같아 어머님과 저의 편지를 제출합니다.
- 엄마의 말: 멀리서 보기에 꿈꾸던 전원생활을 사는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아들이 시골에 내려와 살겠다고 하는 게 마냥 긍정적인(대책 없는) 남편을 꼭 닮은 것만 같아 걱정이 큽니다.
- 다시 아들의 말: 풍족한 유년기, 누릴 수 있는 (거의) 최고의 사교육, 고등교육…. 그렇게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만큼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숨이 막힙니다. 꼭 도시에서 ‘규격화된 보통’의 삶을 살진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 다시 엄마의 말: 세상살이,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행복하면 제일인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자신의 그릇이라 생각해서 받아들이자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어요.
오늘의 광주가 어제의 광주에게
■ 이름: 광주모더니즘(8명)
- 현재: 독립 연구공동체(김서라 나지수 정유승 정찬혁 최진아 최하얀 한유진 한재섭)
- 지원 이유: 5·18 이후의 5·18엔 혐오·증오세력으로부터 5·18을 지키는 방향만 있지 않다. ‘지키지는 않더라도’ 광주에서 살아가기 위해 5·18의 유산을 동시대적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살아가는 이른바 후속세대가 있어야만, 5·18은 ‘정신’과 ‘유산’을 아끼고 가꿀 수 있다. 5·18을 이미 이야기했던 이들로부터 다시 5·18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동시대적 맥락 안에서 사유하고 진단하는 청년들의 ‘말’ 역시 무척 중요할 것이다.
- 오늘 광주가 어제 광주에게: 5·18 이후의 광주에서 5·18이 거둔 성취를 빌미로 위계와 지배를 반복함으로써 후속세대를 거주가 아니라 탈출하도록 한다면, 5·18의 미래는 기능하더라도 광주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다.
- 약속: 광주 지역 청년들이 겪는 시대적 문제는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와 맞닿지만, 동시에 국지적 문제로 해석될 여지 때문에 기획이 호소력을 가질지 불안했다. 칼럼이 발행되는 주에 매번 낭독회와 모임을 할 예정이다. 세미나에서는 해당 주에 주어진 ‘키워드’를 연결해 광주의 또 다른 사람들을 이을 것이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도 잇고자 한다. 5·18이 요구했던 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부산이 반도에게
■ 이름: 젠더·어펙트연구소(7명)
- 현재: 동아대 소속 연구공동체(강희정 권두현 권영빈 김대성 김만석 박준훈 신민희)
- 지원 이유: 지방대학 위축, 고령화, 청년 이탈, 생산인구 감소로 상징되는 지역의 현실은 지금이야말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역이라는 물리적 조건에서 이에 대응할 실천적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는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 부산이 반도에게: ‘지역’이라는 필터를 거치는 순간, 보편적이 아닌 특수한 것으로 미끄러진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한겨레>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다. 문제의식의 공유만이 아니라 유지하는 것, 해결책이 없더라도 끈질기게 붙들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대안적 사유이자 실천 방식이다.
- 약속: 지역 테마의 칼럼을 ‘그곳에선 뭘 먹고 사나요?’라는 익숙한 방식으로 볼 가능성이 크지만 ‘여기 오면 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식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우리만 아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라고 생각지 않던 영역이 문제적 영역임을 알리고, 왜 발생했는지 설명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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