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회 흡연자들의 '아지트', 의원회관 4층 비상구는 지금(영상)
'금연' 표시에도 담배 냄새 '풀풀'…국회, 진짜 몰랐을까?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흡연이 필요하신 분들은 6층 야외테라스 및 옥상에 설치된 흡연실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직접흡연 및 간접흡연의 폐해에 관한 국민 인식이 일반화된 가운데 과거 상습적으로 국회 내 흡연자들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자취를 감췄을까. <더팩트>는 지난 16일 오후 흡연자가 자주 출몰하는 곳으로 유명한(?) 국회 의원회관 비상계단을 찾았다.
의원회관 건물 구조는 'ㄷ'자 모양이다. 회관 정문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동편과 서편으로 나뉜다. 양쪽 모두 막다른 복도 끝에 비상구가 있다. 먼저 찾은 동편 비상구 1~10층까지 '금연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3~4층에서 옅은 담배 냄새가 났지만, 누군가가 실내 흡연을 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었다.
서쪽 비상구는 완전히 상황이 달랐다. 맨 위층 비상구 문을 열었을 때 '여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유의 담배 냄새가 마스크를 뚫으며 코끝을 강하게 찔렀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는 통유리로 된 벽에 가로막혀 밖으로 배출되지 않았다.
한층 한층 내려갈 때마다 더 강한 냄새가 났다. 이 과정에서 바닥에 담뱃재는 물론 가끔 침까지 보였다. 5~6층 사이 창문틀에 있는 꽁초가 눈길을 끌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높이를 고려하면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버린 것으로 보였다.
문제의 장소는 4층이었다.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출입구 앞 창문틀에는 먹다 남은 커피잔과 꽁초가 박힌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연초부터 궐련형 전자담배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종이컵이 재떨이인 셈이다. 한 눈으로 봐도 벌써 여러 사람이 다녀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층과 6층, 10층에 마련된 야외 흡연장이 무색해졌다.
특히 새카만 바닥에 붙은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경고! 담뱃재! 바닥에 제발 좀 털지 마세요!'라는 내용이다. 바로 옆 벽에 붙은 '금연' 표시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것인지, 안 된다는 것인지' 글귀를 번갈아가며 보면서도 헷갈렸다. 단속이나 계도를 포기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흡연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무작정 기다렸다. 20여 분쯤 지났을 무렵, 젊은 남성이 나타났다. 누군가 통화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궐련형 전자담배였다.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 모습에 처음은 아닌 듯 보였다.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한 대를 다 태운 뒤 자리를 떴다.
또 다른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10여 분 뒤쯤이다. 그는 기자가 소속을 밝히며 다가가자 곧바로 담배를 껐다. '왜 실내 흡연을 하느냐'는 물음에 "갑자기 전화를 받으러 나왔다가 경황이 없었다. 실수했다.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의원실 보좌진인가, 국회 직원인가'라는 질문에 "국회 직원입니다"라며 급히 자리를 떠났다.
흡연 행렬은 이어졌다. 동시에 남성 2명이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눴다. 곧이어 출입증을 목에 건 남성 1명이 라이터에 불을 댕겼다. 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지난 12일부터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는데, 방역 지침도 어긴 셈이다.
기자를 본 이들은 멋쩍게 웃으며 곧장 담배를 껐다. 보좌진으로 추측되는 인물에게 질문하는 사이 창가 쪽에 있던 두 사람은 눈치를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나머지 한 남성도 "죄송합니다"라면서 뒤따라 나섰다. 이날 1시간 동안 5명이 4층 비상계단에서 흡연했다.
의원회관 청소 근로자 A 씨는 실내 흡연이 지속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치우면 또 담배를 피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여기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는걸) 뻔히 알면서도 (금연을) 지키지 않아요. 흡연 장소로 가면 서로 좋을 텐데, 꽁초나 쓰레기 있으면 그냥 치우는 수밖에 없어요."
'몰래 흡연'이 끊이지 않지만, 국회 사무처는 단속 권한이 없다. 때문에 서로의 건강과 미관을 해치는 일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올해 의원회관 실내 흡연의 건으로 공식 민원이 접수된 것은 없다"며 "민원이 들어오면 방호과 등 직원이 계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는 '몰래 흡연' 알았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기자가 찾은 흡연 장소 바닥에는 '경고!! 담뱃재!! 바닥에 제발 좀 털지마세요!!'라는 문구가 부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흡연자가 위법하게 담배를 피워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 소속 직원들이 아무렇지 않게 위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관할 영등포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민원이나 신고를 접수하면 현장 단속에 나서지만, 최근 신고된 적은 없다. 단속 인원의 부족으로 매번 국가 중요 시설인 국회를 찾아 일일이 단속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전언이다. 구청의 집중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실내 흡연은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실내·금연구역에서 흡연하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입법부인 국회 내에서 법령을 준수하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점은 분명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5층 창에 붙은 경고 문구를 되새겨 보자. '남한테 피해 주는 행동을 얼마나 더 하시겠습니까?'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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