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외할머니를 닮은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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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을 풀어헤치고 허리가 굽어 할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할미꽃.
매일 삼시 세끼에 빨래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외할머니는 우리가 철이 들 무렵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짧은 백발에 대청마루에서 햇볕을 쐬고 있던 어느 봄날이다.
어디선가 여러분의 할머니를 닮은 할미꽃들이 인사를 건네며 정답게 맞아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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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을 풀어헤치고 허리가 굽어 할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할미꽃. 이 꽃은 4, 5월이면 양지바른 언덕이나 무덤가에 자주 피는데 요즘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 주말 홍천의 한 야산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외진 곳에서 외롭게 피는 할미꽃이 이곳에선 군락을 이루고 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꽃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영락없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그 순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은 장사를 하느라 바빠 외할머니가 부산으로 와서 천방지축인 우리 3형제를 보살폈다. 매일 삼시 세끼에 빨래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외할머니는 우리가 철이 들 무렵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짧은 백발에 대청마루에서 햇볕을 쐬고 있던 어느 봄날이다. 외할머니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에게 “누구여”라고 물으며 안 보이는 눈을 비비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몇 번이나 이름을 말하자 정신이 돌아왔는지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바야흐로 봄이 절정이다. 날씨는 포근해졌고 산에는 철쭉을 비롯해 볼거리가 넘쳐난다. 하지만 언덕길을 오를 때 조금만 더 머리를 숙여 찬찬히 둘러보자. 어디선가 여러분의 할머니를 닮은 할미꽃들이 인사를 건네며 정답게 맞아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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