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석열 연관 집요한 질문.. "기억 안난다"는데 "알고 지냈다"로 적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윤중천 면담보고서' 보니..
'윤갑근 골프장' 증거 없는데 그대로 발표
복기한 대화 각색 가능성.. 사실처럼 공개
이른바 '윤중천 면담보고서'는 '윤중천 리스트' '윤석열 접대설' 등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과거사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각종 의혹의 핵심 출처였다. 2019년 5월 '김학의 성접대 사건'을 조사했던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8팀이 작성한 1,249쪽 분량의 최종 결과보고서 중 해당 내용은 6페이지 정도에 불과했지만 파괴력은 상당했다. 수사 의뢰와 언론 보도의 주된 근거로 쓰였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덧붙여져 의혹이 확대 재생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입수한 윤중천 면담보고서는 그간 제기된 의혹의 출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했다. 허풍과 과장이 가득한 윤중천씨와의 사적 대화를 참석자들이 생각나는 대로 복기한 요약본인 데다, 그마저도 질문자 의도대로 각색됐을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8팀 소속의 이규원 검사가 작성한 윤중천 2·3차 면담보고서에는 △윤석열 접대설 △윤갑근 접대설 △김학의·한상대(전 검찰총장) 수천만 원 뇌물설과 관련한 내용이 담겼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전혀 없었다. 면담 참석자들이 작성한 메모, 면담보고서 초안, 참석자 진술 등을 종합해볼 때 당시 윤씨의 전체적인 발언 취지는 면담보고서에 기재된 내용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윤씨는 조사단에 출석한 4차 면담에서 이전에 말했다는 내용마저 모두 부인했다.
'모호한 진술' 한 줄로 터진 윤석열 접대설
김학의 성접대 사건 조사를 맡은 진상조사단 8팀은 윤중천씨와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모두 6차례 만났다. 이 가운데 2018년 12월 26일 '2차 면담'에선 가장 민감한 내용이 나왔다. 이규원 검사와 A검사, 그리고 파견 수사관 B씨가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윤씨를 만나 대화한 뒤 각자 쓴 메모를 토대로 이 검사가 최종 면담보고서를 작성했다. 윤씨 요구에 따라 대화 내용은 녹취되지 않았다.
13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김학의와의 관계 △김학의 외 다른 법조인과의 친교 △김학의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게 된 경위 △성폭력 피해자로 지목된 여성들과의 관계 △원주 별장 △김학의 동영상 및 김학의 성접대 여부 △검찰 수사 관련 내용 등이 적혀 있다. 면담보고서 내용은 문답 형태가 아니라, 윤씨 진술을 요약 정리한 형식으로 적혀 있다. 윤씨가 알고 지낸 법조인을 설명하거나 성폭력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다만 '김학의는 원주 별장에 거의 오지 않았고, 별장에서 여자와 성관계한 적도 없다'는 내용을 비롯해, 이후 검찰 수사로 드러난 진상과는 다른 내용도 많았다.
윤석열 검사장은 OOO소개로 알고 지냈는데, 원주 별장에 온 적이 있는 것도 같다. OOO가 검찰 인맥이 좋아 검사들을 많이 소개해 주었다
윤중천 2차 면담(2018년 12월 26일) 보고서 中
면담보고서 중 가장 논란이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내용은 보고서 5쪽 윤씨가 다른 법조인들과의 친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윤석열 검사장은 OOO 소개로 알고 지냈는데, 원주 별장에 온 적이 있는 것도 같다. OOO가 검찰 인맥이 좋아 검사들을 많이 소개해 주었다.' 검찰은 해당 내용이 이규원 검사가 집요한 유도신문 끝에 끌어낸 윤씨 답변을 왜곡해 적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규원 검사가 '윤석열도 알지 않느냐' '별장에도 오지 않았냐' 'OOO이 윤석열도 소개시켜주지 않았느냐' 등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묻는 것처럼 계속 질문하자, 수차례 "모르는 사람"이라고 일축하던 윤씨가 "그런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답한 것을 이 검사가 "알고 지냈다"고 썼다는 것이다.
이규원 검사는 당시 '윤 총장이 별장에 갔다더라'는 풍문을 듣고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3년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은 물론 진상조사단의 추가 조사과정에서도 윤 전 총장과 윤씨 사이의 관계를 의심할 만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이 경찰 압수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윤씨 다이어리에 윤 전 총장과 비슷한 이름이 등장했지만 다른 사람으로 확인됐다.
진상조사단 활동 종료 후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윤 전 총장과 관련한 면담보고서 내용은 2019년 10월 언론 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당시 보도 내용은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취지로, 면담보고서 내용보다 더 과장돼 있었다. 보도 당시 윤 전 총장은 검찰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로 여권과 대립하던 시기였다. 누군가 윤 전 총장을 공격하기 위해 실체가 불분명한 보고서 내용을 전하면서 의도적으로 과장했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검증 없이 발표된 윤갑근 접대설
2차 면담에서 윤 전 총장 관련 질문 횟수와 윤씨의 답변 수위는 녹취되지 않아 정확한 검증이 어렵고, 이규원 검사와 다른 참석자들의 기억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반면 2019년 1월 25일 파견 수사관 2명이 윤씨와 일식집에서 대화하며 진행된 3차 면담의 경우 윤씨 몰래 녹취가 이뤄졌다.
과천 농장(멤버 중 한 명이 별장으로 쓰는 곳)에서 부부 동반으로 외국인들과 같이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 멤버가 OOO, OOO, OOO, OOO, OOO 등이었다. OOO는 과천 농장에서도 보고 서울 일식집에서도 보고 그랬다. 윤갑근은 OOO가 골프장에 데리고 왔던 것 같다
윤중천 3차 면담(2019년 1월 25일) 보고서 中
이규원 검사가 작성한 3차 면담보고서에 나오는 내용 중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부분('윤갑근은 OOO가 골프장에 데리고 왔던 것 같다')은 검찰이 확보한 녹취록에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 발언이다. 수사관들이 윤 전 고검장과의 관계를 수차례 물었지만 윤씨가 제대로 답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윤 전 고검장의 경우 윤씨와의 관계를 물어볼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과거 경찰 수사기록 중 윤씨의 운전기사가 경찰이 보여준 윤 전 고검장 등 14명의 사진을 본 뒤 '얼굴이 기억난다' '윤씨와 식사했던 분' 등의 진술을 한 적이 있는데다, 김 전 차관과 윤씨 관련 검찰 수사 당시 그가 결재 라인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2차 면담보고서에도 그와 관련한 내용이 등장한다. "윤갑근, OOO도 알고 지내는 사이이나 누구 소개로 만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원주 별장에 왔는지도 기억이 불분명하나 왔더라도 가족 단위로 들렀을 것이다"라고 쓰인 대목에서다.
하지만 다른 참석자들 초안에는 '알고 지내는 사이'라거나 '누구 소개로 만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고검장과 관련한 진술 역시 윤 전 총장의 경우처럼 모호한 답변을 신빙성 있는 진술처럼 각색하고, 이를 토대로 3차 면담 때는 하지도 않은 말을 끼워넣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문제는 윤 전 고검장이 진상조사단에 "윤씨를 전혀 알지 못한다"며 강력히 부인했고, 윤씨 다이어리, 휴대폰, 통화목록, 명함 등 어디에도 윤 전 고검장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확인되지도 않은 윤중천씨의 진술은 언론 보도 및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김학의 사건 담당 김용민 위원(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5월 29일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윤모(윤갑근)씨는 윤중천과 수회 만나서 골프를 하거나 식사하거나 별장에도 온 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씨 및 그의 운전기사는 이후 검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면담 때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다' '경찰 조사 당시 진술이 기억나지 않고 윤 전 고검장을 모르겠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윤 전 고검장이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재판부는 "과거사위가 발표한 의혹은 허위"라고 결론 내렸다.
반대 정황 숨기고 유리한 진술 무검증
김학의 전 차관 전면 재수사라는 강수를 둔 핵심 근거 역시 윤중천씨 면담보고서에서 나왔는데, 하자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2차 면담보고서 중 "김학의와 한상대에게는 수천만 원씩 현금을 준 적도 있는데"라는 내용이다. 이 진술은 2019년 3월 23일 피의자도 아닌 김 전 차관을 긴급 출국금지하고, 재수사 권고에서 핵심 근거로 쓰였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윤씨가 수천만 원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공소시효가 10년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액수를 맞추기 위해 진술을 조작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규원 검사는 당시 과거사위에 해당 진술을 보고하면서 "윤씨가 녹음기를 켜면 입을 안 열어서 녹취는 없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재수사에 제동이 걸리진 않았다. 녹취도 안 된 윤씨 진술 한 줄 말고는 마땅한 근거도 없었지만, 재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일부 위원들은 당시 이를 두고 검찰개혁 명분을 확보하고 대통령 관심사안에 대해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무리수를 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에선 윤중천씨 면담보고서의 문제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윤씨는 녹취에 동의하고 정식으로 진행한 4차 조사에서 "앞선 조사에서 그런 취지로 말하지 않았다"며 2·3차 면담보고서에 담긴 주요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그럼에도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은 최종 결과보고서 및 수사 의뢰 발표문에 이 같은 반대 정황은 넣지 않았다.
허술한 면담보고서 모두가 책임 방기
면담보고서 왜곡이 어느 정도까지 이뤄졌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일부에 불과한 녹취록, 참석자들의 기억과 진술 및 초안에 의지해 조각을 짜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규원 검사는 당시 자신이 작성한 윤중천 면담보고서 최종안을 진상조사단 8팀 구성원들에게 공유했지만, 특별히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향후 검찰 수사 및 재판에서 첨예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면담보고서 왜곡 정도와 별개로, 허술하고 법적 근거도 모호한 면담보고서 내용이 공신력 있는 기구를 통해 확인된 내용처럼 세상에 공개됐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언론 보도와 검찰 재수사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 법원, 조사단, 사건 관계인까지 하나같이 윤씨 발언을 믿을 수 없다고 평가했는데도 말이다.
일각에선 이규원 검사가 의도를 갖고 윤중천씨 진술을 왜곡하고 없는 진술까지 만들어냈다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정확한 내막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 검사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이 검사가 의도적으로 위법 행위를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다.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과도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접대설' 기사의 출처는 이 검사가 아니고 △진상조사단 검사로 파견된 건 검사장 추천으로 검찰총장 허락을 받았다고 들었을 뿐,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영향력 때문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은 뒤늦게 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8팀 팀장을 맡았던 이근우 가천대 법대 교수는 "윤중천씨 언행을 보면 처음부터 믿을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고 그가 다른 이름을 거명하며 물타기 할 수도 있었는데 처음부터 너무 비공식적으로 접촉하며 끌려다닌 면이 있었다"며 "비겁한 말일 수 있지만, 평소 무리한 수사 행태라고 지적한 검찰 수사방식을 진상조사단 조사 과정에서도 심각성을 못 느끼고 답습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론과 특수한 상황에 매몰돼 절차를 가볍게 생각하고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고백이었다.
윤중천ㆍ김학의 백서를 쓰는 이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특별취재팀=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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