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 '이물 발견' 50일 지나 늑장 공개.. 불신 자초한 정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사용돼온 '최소 잔여형(LDS)' 주사기에서 이물질이 발견된 사실을 정부가 신고 후 50일이 지나서야 공개한 것을 두고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K주사기'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꺼려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거진다.
최근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된 공식 자료와 발표에서도 실책을 연발했다. 온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백신 관련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정부가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고 후 50일 지나 발표..."선택적 정보공개" 비판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물질이 나온 LDS 주사기의 수거·교환에 대해 "영업자가 자율적으로 조치한 것"이라며 "우리 처는 의료기기법 제31조의 5 제2항에 따라 이물 혼입 원인 조사와 시정 및 예방 조치 명령을 했고, 이는 행정처분 및 공표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물질 발견으로 일부 LDS 주사기가 수거 조치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백신 관련 정보만큼은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스스로 어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식약처는 "앞으로는 법령상 공개 대상 여부를 떠나 백신 접종과 관련한 사항은 적극 공개토록 하겠다"는 답변을 추가로 내놓았다.
전날 질병관리청은 "LDS 주사기 내에서 이물이 발견됐다는 신고 21건이 들어와 제조사가 선제적으로 수거 조치 중"이라며 "이번 주까지 주사기 70만 개를 수거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LDS 주사기에서 이물질이 발견됐다는 첫 신고는 2월 27일 경북 지역에서 접수됐다. 정부는 이후 약 3주간 신고 내용에 대한 개별 조사를 한 후 3월 18일에야 사용 중지 조치를 내렸다.
정부는 이후에도 조치 사실을 공표하지 않다가 전날 국회 질의에 답하는 형식으로 해당 사실을 공개했다. 첫 신고가 접수된 후 50여 일, 사용 중지 조치 후 한 달 이상 지나서야 공개한 셈이다. 그 사이 이물질이 확인된 주사기 50만 개(제조사 두원메디텍)는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에 쓰였다. 질병청은 "(주사기 이물질과) 관련한 이상반응 사례 접수는 없다"고 밝혔다.
신고된 21건 중 19건은 두원메디텍, 1건은 신아양행, 1건은 풍림파마텍 제품으로 알려졌다. 신아양행 제품은 피스톤 뒷부분에서 섬유질이 나와 품질엔 문제가 없다고 판단됐고, 풍림파마텍 제품은 발견된 이물이 없었다. 두원메디텍 제품에서만 이물 문제가 확인돼 수거 조치됐다. 식약처는 이날 "LSD 주사기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는 풍림파마텍, 신아양행, 용창, 두원메디텍 4곳인데, 이 중 풍림파마텍과 신아양행만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잇따른 실책...방역당국 불신 자초
의료계에선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가 LDS 주사기를 'K방역'의 성과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2월 말께 국내 업체들이 만든 LDS 주사기를 통해 백신 1병당 접종 인원을 1∼2명 늘릴 수 있게 됐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18일 한 LDS 주사기 생산회사를 직접 방문해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의료계 한 전문가는 "정부가 백신 공급이 늦었다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K주사기'를 갑자기 띄웠는데, 이 주사기에서 문제가 생기니 자발적으로 공개하기 꺼려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싸고 정부는 최근 실책을 연발했다. 백신 접종 후 흔히 발생하는 일반적 이상반응으로 신고됐다 상태가 악화해 사망에 이른 사례를 공식 접종 후 사망자 통계에 명확히 반영하지 않다가 언론의 지적을 받고서야 보완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의 이득과 위해를 비교한 수치 자료를 뒤늦게 정정하기도 했다. 접종 재개의 근거가 된 중요한 자료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또 확정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 국내 위탁생산 계약 내용을 갑작스럽게 언론에 일부만 공개하며 혼란을 일으켰다. 방역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K주사기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신고가 접수된 즉시 관련 사실을 알렸어야 했다"며 "정부가 불리한 내용은 제대로 알리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백신에 대한 신뢰가 더욱 추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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